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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Oct 06. 2024

95. 엄마는 쉴 틈이 없다

― 장석남 시인의 ‘숨의 사랑’

                   숨의 사랑

                                              장석남    

 

어제는 창경궁 후원에 많은 키 큰 나무들이

꽃피는 걸 보았습니다

담장들은 지붕을 얹은 채 키를 낮추고

내 숨이 분홍빛으로

그 큰 나무들에게 올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람이 불거나 바람 속에 초생달이 걸린 때면

내 숨의 사랑은 

그곳으로도 가리라     


숨결들

다시 돌아와

꽃핀 창경궁 후원이 몸에 가득했습니다          <시 전문>       


   

엄마가 떠난 이후 내 마음에도, 겉모습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마음의 변화는 하고 싶은 건 미루지 말고 하자는 거였다. IMF 때 부산에서 다니던 회사가 휴업하면서 소식이 끊긴 직장동료 A가 그전부터 너무 그리웠다. 긴 세월 그리워만 하다가 찾겠다고 작정한 지 일주일도 안 돼 A와 연락이 닿았다. 26년 만의 첫 만남은 지난 8월 말, 일 때문에 상경한 A와 점심을 하고 차담을 나눈 6시간 동안 이어졌다. 9월의 두 번째 만남에선 서울 인사동에서 1박 2일을 함께하며 서로의 엄마와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워하기만 하고 찾지 않았다면 그런 영화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운도 따라주었기에 빨리 찾을 수 있었다. 나는 그 행운조차도 엄마가 내게 주고 간 선물이라고 믿는다. 어린 시절 외출하는 엄마를 따라가겠다고 울며 떼쓸 때 내가 좋아하는 간식거리를 챙겨주고 갔던 것처럼.


겉모습의 변화는 8년 가까이 직접 자르고 손질해온 커트 머리를 중단발로 기른 거였다. 처음부터 기르려고 한 건 아니었다. 엄마를 떠나보내고 한동안은 내 손으로 머리를 자를 경황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머리는 거지 존에 들어섰다. 매주 머리를 다듬을 땐 거울 앞에서 미용가위만 있으면 단정한 커트가 가능했다. 그러나 삐죽삐죽 자란 머리를 몇 개월 전의 커트 스타일로 되돌릴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새삼 돈을 들여 머리를 자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는 사이 머리는 목덜미를 다 덮을 만큼 자랐다. 그새 살도 빠진데다 머리모양까지 달라지니 눈썰미도, 눈치도 없는 누군가는 성형했냐고 묻기도 했다.

   

큰일을 겪으며 철든 어른인 듯 보이는 나도 꽤 오랫동안 철없는 ‘어른아이’로 살았다. 그럴 수 있었던 건 알뜰한 엄마와 성실하고 정직한 아버지가 내 뒤를 든든하게 받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를 떠나보낸 뒤에야 예전의 ‘어른아이’는 철이 든 것 같다. 지난날의 교만과 철없음이 부끄럽고 뒤늦게 어른이 된 나 자신이 쑥스럽다. 자식들에게 기댈 언덕이 돼 주느라 우리 부모님 세대 어른들이 얼마나 오래 가시밭길을 걸어왔는지 이제야 눈에 보인다. 요즘 아이들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혀를 찰 자격이 있는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장석남 시인은 ‘숨의 사랑’에서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을 조용히 일러 준다. 깊은 사랑이 숨이 되어 꽃을 피우고, 초승달을 둥글게 키운다고 말이다. 시류에 휩쓸려 탁해진 우리 눈엔 보이지 않아도 ‘숨의 사랑’은 지치지도 않고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는 걸 믿게 된다. 허약한 몸과 부실한 가슴을 가진 우리에게 돌아온 ‘숨의 사랑’은 우리 몸을 가득 채우고 가슴을 데운다.

      

지난 몇 개월 쉬다가 복귀한 요가 수업은 따라가기가 벅찰 정도로 내 체력은 바닥이었다. 초급반으로 옮긴 뒤에야 버벅대지 않게 됐다. 요가든, 필라테스든 거의 쉬지 않고 해온 세월이 20년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떠나고 몇 개월 운동을 중단한 사이에 내 체력은 수직으로 떨어졌다. 비록 나를 알아보지 못해도 엄마가 계실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 엄마를 만지고 귀에 대고 속삭일 수라도 있었으니까. 다시 요가와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마치 이제 막 시작한 초보자의 마음으로 내 몸을 돌보고 마음을 챙긴다.


오래전 읽고 오랫동안 책꽂이에 꽂아 뒀던 장석남 시인의 시집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을 아주 오랜만에 꺼내 읽었다. ‘숨의 사랑’을 읽으면서 다시 엄마를 느낀다. 엄마의 숨이 아파트 단지 안의 꽃들을 물들여 내가 다니는 그 길에 꽃향기를 풀어 놓는다는 걸. 그래서 그 나무들 곁을 지나온 내 온몸에 꽃의 기운이, 엄마의 숨결이 가득하다. 엄마는 이곳을 떠나서도 쉴 틈이 없다. 내 안에 분홍빛 숨결이 채워지니 이제 시를 쓸 수도 있겠다. 보이지 않아도 나를 감싸고 도는 ‘숨의 사랑’을 믿으니까. 그래서 바쁜 엄마가 꿈길에 찾아오지 않아도 더는 애달파하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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