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두 아줌마 Jan 28. 2021

용서

용서는 누가 하는가


“경찰에서 수사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구역질이 난다. 

하지만 그들을 용서하지 못하면 결국 죽을 때까지 이 분노를 짊어지고 가야 한다. 

지나간 세월은 어떻게 할 수 없는데,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 (화성 연쇄 살인 누명을 쓰고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윤성여님      



어떻게 그들을 용서할 수 있었을까.

속물인 나로서는 그 깊이를 헤아려 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용서’라는 게 가능한 걸까.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는 자신을 위해 그에게 고통 줬던 사람들을 용서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죽을 때까지 증오로 불타오르며 살고 싶지는 않다고...

그의 말이 맞다. 

누군가를 향한 증오와 분노는 결국 내 몸뚱어리를 화르륵 태워버린다. 내 발등, 내가 찍는 거다.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그랬다.

상처를 준다고 받니? 왜 받아!

그 말이 내게 도움이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누가 상처를 주면 언제나 그걸 덥석 받아 가슴에 품고는 그 상처가 쓰라려 혼자 울고 욕하고 화내고,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다 켜켜이 상처가 쌓이면 그제서야 마음의 문을 철커덩 소리 나게 닫았다. 두껍고 육중한 쇠문이라 절대 열릴 것 같지 않았다.     


용서할 수 없었다. 그 사람들을.

그러나, 가끔 그들을 향한 분노로 숨쉬기조차 힘들 때면 스스로 느꼈다. 

이 증오가 날 삼켜버리고 있다는 걸. 

그들을 향해 하얗게 타오르는 불길의 갈라진 혀가 지금 날 감아올려 태우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용서는 내 것이 아닌 신의 영역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용서는 더 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미움의 대상보다 더 크기 때문에, 더 성숙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어떤 것.

상처 준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고귀하고 신성한 어떤 세계 말이다.      


억지로 용서하고 싶지는 않다. 아마 그런 게 가능하지도 않을 거고.

하지만 어쩐지 아주 조금 빼꼼히 열린 문틈으로 살짝 신의 세계를 엿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나간 세월을 원망만 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제게는 되돌릴 수 없는 과거보다 다가올 미래가 더 중요하거든요.”  - 윤성여님     


자신을 위해, 미래를 위해 그는 상처 준 이들을 용서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이제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는 큰 사람이다. 

내가 고개를 쳐들고 까치발을 서도 그 얼굴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웅장한, 

산 같은 거인이다.          

작가의 이전글 당신이 그립습니다 (I Miss You)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