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두 아줌마 Feb 08. 2021

신이 당신에게 주신 것? 안 주신 것?


“신이 당신에게 주신 것과 주시지 않은 것은?”    



모 인터뷰 관련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했던 질문이다. 

이런 질문에 답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어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보았을 문제니까.     



“긍정적인 거요. 그런데 외모는 좀 덜 넣으신 것 같아요.”

“주신 건 ’성실‘이고 안 주신 건 ’용기‘에요.”     



그런데, 어느 고운 꼬마 아가씨는 조용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신께서는 저한테 남김없이 전부 다 주신 것 같아요.”     



순간, “아!” 하는 탄성이 절로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렇게 한동안 촉촉한 감동에 젖어 있다가 

문득 그런 의문이 떠올랐다. 

왜 (나 포함) 모두들 이렇게까지 

가슴 깊숙한 곳에서 ‘아!’ 하는 소리를 끌어 올리며 감탄했던 걸까?     



꼬마 아가씨처럼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있었는지는 모르나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조차 희미하다.

자신이 가진 강점과 약점을 철저히 분석한 다음 

적재적소에 잘 활용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자란, 

일명 사회화된 우리 어른들에게 

마치 이제 막 하늘에서 도착한 조그맣고 하얀 천사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동화책을 읽어준 느낌이랄까. 



성경에는 '내게 필요한 건 이미 신이 다 주셨다'고 나와 있는데, 

정작 필요할 때 찾으면 내게는 없는 느낌, 

아마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었을 거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에게서 

'어떤 그리움'을 발견했던 건 아닐까. 

마음만 먹으면 모든 걸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꿈꾸면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순수해서 눈부신 우리네 어린 시절 작은 한 조각을 

아주 잠시나마 들여다본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치 ‘소나기’ 소설에 등장하는, 

이게 뭔지 몰라 ‘사랑’이라고도 이름 붙일 수 없었던 

수줍은 어린 소년, 소녀를 다시 만난 기분이랄까. 

우리는 오랜만에 마음속 아주 깊숙이 숨겨져 있던, 

모든 가능성을 향해 열려있는 것처럼 보이던 

빛나는 어린 시절 서투른 글씨체의 그림 일기장과 

우연히 맞닥트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감동이 깨지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중2병 아들이 이렇게 중얼거리는 걸 들었기 때문이다.     



“신은 나한테 아무것도 안 준 거 같은데?”     


        헐......



‘남김없이 다 주신’ 신과 ‘아무것도 안 준’ 신.

그 양극단의 차이는 뭘까?

과연 어느 신이 진짜일까?     



어느 쪽이건 신은 ‘신’인가 보다.

날 마법의 세계로 이끌었다.

‘소나기’ 속 어린 주인공들과 

‘호밀밭의 파수꾼’ 속 홀든 콜필드를 

한꺼번에 만나본 기분.     



하기야, 나도 ‘제인 에어와 ’안나 카레니나‘를 지나 

<노인과 바다> 속 어부 ’산티아고‘로 향하는 

인생 어디 즈음에 있을 거니까. 



작가의 이전글 죽음, 미리 아는 게 좋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