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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플로거 Sep 07. 2022

생애 최초 비닐봉지 재활용률 100% 달성

플로깅 66, 67번째 

8월 말에 오랜만에 남쪽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좋은 경치도 보고 한 사찰에 들렀는데, 대웅전 뒤편에 마니차 비슷한 도구가 있었다. 마니차를 한 번 돌리면 자신에게 맞는 불경 말씀이 나온다고 해서 회전시켜 보았다.      


마니차는 불자가 불경을 쓴 축을 한 바퀴 돌리면 경전의 공덕이 세상에 퍼진다고 하는 경통인데, 몽골과 인도 북부, 티벳 등에 마니차가 있다. 세계테마기행이라는 EBS 여행프로그램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다. 내게 무슨 말이 나올까 궁금했는데, 법구경의 한 대목이 나왔다.      


“악한 일을 하지 말고 선한 일을 널리 행하고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하라.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아니 좋은 문구 받아들고 왜 반발심이 드나. ‘엉? 나 선한 일 좀 하고 있다고 자부하는데? 평소에 쓰레기 이것저것 많이 줍고 있잖아?’ 이건 필시 자만, 교만하지 말라는 하늘의 가르침이렷다.      

집에 돌아와서 현관에 붙여 두었다. 




태풍이 온다고 하고 비가 오는데 동네 여기저기에 종이상자가 나와 있다. 비에 박스가 젖으면 박스가 찢어져서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도 가져가질 않는다. 비가 개고 해가 나더라도 몹시 난감한 상태가 된다. (축축한 찢긴 박스에 모기, 파리가 바글바글) 


집 앞 쓰레기터에도 큰비 오는 와중에 박스가 나와 있다. 그간 모아둔 큰 비닐을 한 장 갖고 나와서, 일단 찢어진 상자를 넣어 두었다.     

 

비가 오는, 배출요일도 아닌 날에 나와 있는 종이상자들. (우측 사진 뒤 배경: 누가 여행지 택도 안 떼고 버린 여행가방- 여행가방은 대형폐기물 스티커를 부착해서 버려야 함 )


종량제 봉투에 넣어두고 싶지만, 종량제 봉투만 달랑 자꾸 도둑맞는다. 쓰레기 배출일이 아닌 날 플로깅을 할 때 종량제 봉투에 쓰레기를 넣어두면 누가 종량제 봉투만 홀랑 갖고 간다. 엥? ^^ 종량제 봉투는 그리 안 비싸니까 가져가도 괜찮은데, 기껏 모아둔 쓰레기를 와르르 주변에 쏟아 놓고 가니까, 다시 줍기를 해야 해서 번거롭다. 그래서 배출일이 아닌 날 줍는 쓰레기는 비닐봉지에 모아두고 있다. 


덕분에 나는 비닐봉지 부자가 됐다. 게다가 생애 최초로 비닐봉지 재활용률 100% 달성. 


오, 나름 뿌듯하다.

 

처음에 몇 번은 종량제 봉투째로 집에 들고 왔는데, 매번 그렇게 바깥 쓰레기를 집으로 가져올 수는 없어서(악취+벌레 때문에) 지금은 이렇게 안 하고 있다. 쓰레기 배출일이 아닌 날에 쓰레기를 모아서 어쩔 수 없이 비닐봉지에 넣어 사람들 눈에 안 띄는 구석에 두었다가, 하루가 지나 쓰레기 배출일에 종량제 봉투에 담아서 버린다.      


이런 과정이 나의 동네 플로깅의 일정한 루틴이 되었다. 비슷한 쓰레기를 또 줍고 또 줍고 반복이다. 반복을 계속해보니까 세상의 모든 낯선 만사처럼, 예상보다는 할 만하다. 


큰비든 작은비든 비가 오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뒤집힌 우산 쓰레기들. 우측처럼 잘 개킨 후에 종량제 봉투에 끼워넣으면 된다.


우리 동네 골목 입구 집에 사시는 여자분께서(지난 글 <살며시>에 등장하신 분) 골목의 갖은 쓰레기를 줍고 치워주셔서, 그 덕분에 내가 동네 어귀에서 줍는 쓰레기양이 엄청나게 줄어들어서 너무 감사하다. 자주 마주치지는 못하는데, 주로 해질 무렵 가끔 뵙고 있다. 


어제는 석양이 질 때 잠깐 뵈니, 원래 사용하시던 쓰레기집게 대신에 대형 빗자루와 대형 쓰레받기를 마련하셔서 동네 바닥을 구석구석 깔끔히 쓸고 계셨다. 리스펙트!!!(존경!!) 그리 큰 빗자루와 쓰레받이를 장만하시다니. 깜짝 놀랐다. 나는 생각도 못 해봤다.


지난 6월 어느 (쓰레기배출일이 아닌) 휴일. 이 여성의 댁 근처에 난데없이 수북한 먼지 쌓인 바둑알 쓰레기가 나와 있었다. 아니, 이런 방식으로 바둑알을 버릴 수가 있나? 워낙 사람들이 오가며 이것저것 쓰레기를 길에 버리는 골목이라서, 바둑알이 행여 흩어지기라도 하면, 그걸 줍거나 쓸어 담기가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아서, 얼른 치웠다.      


바둑판까지 있었더라면 내가 집에 갖고 와서 시간날 때 바둑이나 배워서 둘까 하는 생각이 잠시 뇌리를 스쳤다. 그러나 바둑판은 없고 더군다나 바둑알에 (왠 벌레 사체까지 담겨 있어서) 너무 지저분하다. 바둑알을 일일이 닦아 재활용하기에도 몹시 난감해서 버리기로 했다.


덩그러니 버린 바둑알 쓰레기. 살펴보니 플라스틱인 듯 하여 비닐봉지에 넣어 정리. 동네 쓰레기를 치워주시는 이웃 여성의 댁 근처에 나와 있던 걸, 몰래 치우니까 진짜 기뻤다.


오늘의 정리 

쓰레기 분리수거에 도움을 주는 ‘내손안에분리배출’앱에서 찾아보니, 바둑알이 유리나 사기일 때는 마대에 분리수거해야 하고 바둑알이 플라스틱일 경우는 플라스틱으로 분리배출한다고.   


잘 알지 못하고 인사 한 번 제대로 나누지 못한 분이시지만, 나와 함께 평소 동네를 치우고 계신 여성의 댁 근처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으니까, 마음이 참으로 즐겁고 좋았다. 나 스스로에게 무한존경심도 들었다? (잘난 척 하지 말아야 하는데?^^)     


오늘도 허리를 굽히거나 자세를 낮춰 한 개든 두 개든 쓰레기를 줍는 다정다감한 마음들, 또 이런 마음들을 격려하고 응원해주는 고맙고도 더할 나위 없는 다정한 마음들을 생각한다. 오늘은 며칠 전 우연히 책에서 본 레이첼 카슨의 명문을 나누고 싶다.      


“대지의 아름다움을 응시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생명이 있는 한 견뎌 나갈 여분의 힘이 들어온다. Those who contemplate the beauty of the earth find reserves of strength that will endure as long as life lasts” by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 1907~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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