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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플로거 Aug 17. 2022

벌레와 로켓맨

플로깅 65번째 

후텁지근한 날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도 밤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더운 날씨가 시작된 6월 중순부터 쓰레기가 버려진 장소들에 벌레가 많아서, 쓰레기 줍는 양을 대폭 줄였다. 개미, 모기, 청파리, 바퀴벌레 등등. 


이번 겨울에 쓴 플로깅 기록을 보면, 나는 겨울에 쓰레기 줍는 거 별로라는 식으로 썼는데, 아무래도 여름보다는 겨울이 훨씬 나은 것 같다. 사람 마음이 역시 간사하다.     




개미는 주로 씻지 않고 버린 배달음식 플라스틱 용기를 기어 다닌다. 상태를 보면 단짠(달고 짠)에 매운 음식인데 개미가 어찌 이리 배달음식 플라스틱 용기를 좋아하는지 신기하다. 얼마 전에는 동네 주차장 입구에 누군가 컵라면을 먹으려다가 그대로 놔두고 갔는데, 불어터진 면발 컵라면에 늘어선 개미들을 보았다. 개미가 단 음식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짠 라면도 이렇게 좋아할 수 있나? 나무젓가락까지 꽂아둔 걸 보면, 먹으려다가 간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나?     


사람은 자기 체중 정도의 무게도 들어 올릴 수 없는데(최대 0.9배 정도만 들어 올림), 개미는 자기 몸무게 30~50배를 들어 올린다. 천하장사 개미에 대해서는 일종의 경외심을 갖고 있지만, 쓰레기를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자꾸 손 위로 기어 오는데, 따끔거린다. 모기는 몸에 미리 퇴치제를 뿌리면 그만인데, 개미는 물릴 때도 있다.     


누가 먹으려다가 두고 간 컵라면. 치우려 보니 천하장사 개미가 한가득했지만 치웠다 ㅎㅎ(좌). 플라스틱 배달음식 용기 쓰레기에 붙은 개미들(우)


동네 쓰레기터에 대충 닦아서 배출한 컵라면 용기를 재활용한다고 집어가시는 어르신. “잘 안 닦여서 지저분한데 이것도 가져가시는 거예요? 너무 가벼워서 돈도 안 될 것 같고 댁에 냄새도 나고 벌레 꼬일 것 같아요.”하고 내가 말을 건네니까 “괜찮아요. 이건 깨끗한 편이지” 하신다. 어르신이 대충 닦은 용기에 붙어 있는 개미를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털어버린다.     

 

청파리는 주로 개똥 위를 어지러이 날아다닌다. (의인화한 파리 시각에서는 매우 신나게^^.) 

낮에 잠깐 집근처 은행에서 볼일을 보고 돌아오는데, 앞집 빌라 골목에 푸짐한 강아지똥. 그위로 청파리가 반짝반짝 날고 있었다. 그걸 보고 왜 ‘똥파리=청파리=금파리’라고 하는 줄 알게 됐다. 햇빛에 비추니까 몸통이 파랗기도 하고 금처럼 빛도 난다.      


2초 정도 아주 잠깐 넋을 잃고 보다가, 구수한? 냄새가 심해서 줍기를 단념하고 밤에 나가서 치웠다. 낮에 여름에 작열하는 열기로 수분이 빠져나가서 줍기가 수월했다. 


청파리를 본 밤에 개똥 치우기. 청파리는 햇빛에 보니 은근 멋집니다.


     

6월까지는 플로깅용으로 옆으로 메는 가방을 메고 다녔는데, 가방을 어깨에 메는 걸로 바꾸었다. 쓰레기를 주으려고 몸을 낮추면 옆으로 메는 가방이 바닥 가까이 떨어지는데, 그래서인지 동네 쓰레기터에서 가방에 바퀴벌레가 딸려 왔다. 두 번. 쓰레기를 줍고 나간 김에 공원서 스트레칭과 가벼운 운동을 하고 돌아와서 씻고 거실에 대자로 누워 쉬고 있는데...

   

쓰레기 가방에서 까만 바퀴가 부스럭거리며 나왔다. 이얏! 뛰어난 운동신경으로^^ 바퀴가 질주할 틈도 주지 않고 옆에 있던 벽돌책을 던졌는데, 생각해보니 바퀴벌레가 몸집이 커서 워낙 느릿느릿했던 것도 같다.     


플로깅용 비닐이랑 소독액을 넣고 다니는 가방을 바꾼 후부터는 바퀴벌레가 나를 따라올 일은 없어졌다. 바퀴벌레는 서울에 대체 몇 마리나 몇 종류가 살까? 쥐는 얼마나 살까? 서울 인구보다 적을까 많을까? 가끔 가다가 추정치가 못내 궁금한데 계산법을 잘 모르겠다. 음식물쓰레기를 배달 포장 그대로, 심지어 비닐을 묶지도 않고 버리니까 바퀴벌레며 쥐며 들끓어도 하는 수 없다.  


거리에서 간간히 주은 쓰레기들을 쓰레기통에. 배달 온 그대로 먹고 버린 음식물쓰레기는 음식물쓰레기봉투로 치움. 내가 생각해도 너무 수고스러움. (우)


오늘의 정리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시간이 길어도 너무 길다는 생각이 든다. 밤에 서너 시간 정도만 쓰레기를 버릴 수 있도록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면 위생상 아주 좋을 텐데, 쓰레기양도 줄어들고. 하지만 사람들의 저항이 심하려나?      


우리 동네 같은 경우 월수금 일몰 후부터 새벽까지 쓰레기를 계속 내놓을 수 있다. (옆동네는 화목토 역시 일몰 후부터 새벽까지) 즉 일주일에 세 번 밤새 내내 쓰레기를 버릴 수 있다.     

  

어떤 때 보면, 쓰레기 수거날은 곧 환경미화원이 쓰레기를 치울 거라는 생각이 있어서인지, 음식물쓰레기가 배달 포장 그대로, 먹고 남은 그대로 쓰레기 더미 위로 던져져 있다.      


골목의 경우 작은 차량(탑승식 청소차)을 탄 환경미화원이 와서 월수금 야간에 두 번 쓰레기를 정리정돈한다. 저녁 9~10시, 새벽 1~2시 경 두 번이다. 그러면 그 이후에 큰 차량(압축진개차)이 와서 쓰레기를 수거한다. 폐기물 관리 중 쓰레기 수거 노선 설정법을 보면, 지대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가능한 한 시계방향으로 한다. 수거 효율을 위해서라고. 그간 오다가다 보면 환경미화원 분들은 정말로 열심히 일을 하시는 것 같다. 골목에서도 뛰어다니다시피 하면서(아니 실제로 거의 뛰어다니거나 종종걸음-노동강도가 장난이 아닌 듯), 쓰레기를 차량에 적재한다.      


동네에 마지막으로 남은 단독주택들이며, 허름한 상가건물이 속속 헐리고 그 자리에 새 빌라가 들어서고 또 들어서고 하는 재개발 서울. 2022년 여름의 풍경. 아무리 환경미화원 분들이 열심히 뛰어다닌다고 해도, 다수가 현재 누리는 편리함을 포기하지 않는 한,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조금은 편리함을 포기하고서 살아갈 수 있으려나? 쓰레기를 주은 지 9개월째가 되고, 기록으로 남긴 지 65번째 되어가는 오늘, 내게 물어보았다.  



플로깅 가방을 어깨에 메는 걸로 바꾸니 바퀴벌레가 따라올 일이 없어짐. 10리터 종량제 봉투를 다 주을만큼 채우지는 못하고 절반쯤은 집안쓰레기에 나머지 쓰레기만 채우고 있음

   

나의 사랑벌레 관찰기록  

한달 전 쯤에 사랑벌레(러브버그)란 걸 알게 됐다. 7월 초에 서울 경기 일부 지역에 나타난 외래종 파리인데, 내가 사는 곳에도 나타났다. 우리 구청에서는 인체에 무해한 익충이라고 홍보를 했다가 구민들한테 질타를 받았고, 이후 긴급방역에 따라 요새는 볼 수 없게 됐다.      


사랑벌레란 게 난생 처음 보는 형상인데, 유심히 보니까, 습한 곳을 매우 좋아하는 벌레인 듯하다. 동네 쓰레기터에 투기된 눅눅한 여름이불에 달라붙은 사랑벌레가 엄청 많았다. 치우려 했으나 요녀석들이 떼로 달려들어 물려 해서(사랑벌레는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는데, 진짜야? 싶었음) 도저히 안 되겠어서 포기했는데, 나중에 환경미화원이 수거해가셨다. 대체 어찌 사랑벌레를 감당하셨을지, 두고두고 생각이 난다.      


7월 초에 옥상에 널어놓은 빨래를 깜빡했다가 동 트자마자 빨래 걷으러 옥상에 올라갔다. 그런데 사랑벌레가 하늘로 날아가고 있었다. 앗. 수직으로 하늘을 향해 똑바로 비상. 전날밤 쓰레기터 이불에 다닥다닥 그토록 더럽게 보이던 사랑벌레였는데, 그 짧은 순간의 한 10m 되려나 위로, 또 위로 수직 비상이 엄청나게 멋있었다. 우와. 이걸 보려고 아침에 일찍 눈이 뜨인 건가!!     


지저분한 도심의 쓰레기터로 몰려올 수밖에 없는 사랑벌레도 이런 비상을 보여줄 수 있다니. 이 광경은 글로는 표현을 못 하겠고, 그림을 잘 그린다면 정말 좋을텐데 그림도 못 그리니^^... 순간 엘튼존의 노래 로켓맨의 선율이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했다는 비유 정도가 적당하려나.      


I'm a rocket man 나는 로켓맨

Rocket man, burning out his fuse up here alone 여기서 혼자서 퓨즈를 끝까지 다 태우는 로켓맨


수직으로 똑바로 비상하는 사랑벌레는 찍지 못했다. 마음 속에 고이고이 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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