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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플로거 Sep 15. 2022

봉숭아꽃이 피었어요

플로깅 68번째 

추석 연휴 동안, 동네 쓰레기터에 쓰레기가 하나둘 쌓여간다. 연휴 때 수거업체가 쉬는데, 이 사실을 몰라서인지 알아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인지. 아마도 전을 부치고 남은 듯한 밀가루가 묻어 있는 플라스틱 용기, 긴 휴일 동안 여름옷을 정리하고 내놓은 듯한 반팔티셔츠와 옷걸이 등이 널부러져 있고, 그 위로 덩달아 아무렇게나 버려진 맥주페트병들, 플라스틱 완충재가 깔린 선물용 각종 과일 상자들…….

    

티셔츠 몇 장을 집어 들고 성큼성큼 몇 걸음 더 걸어가서 옷재활용함에 넣었다. (쓰레기터에서 딱 여섯걸음만 더 가면 옷재활용함이 있다.) 옷걸이 두 개는 쓸만하여 내가 또^^ 집어오고, 밀가루를 털어낸 플라스틱 용기와 페트병 등은 큰 비닐에 분류해서 넣고, 과일 상자들을 한곳으로 모아놓고. 후다~닥! 몇 분 안 걸렸다. 


이번 연휴 때 동네 쓰레기터(왼쪽 사진- 올 신정, 구정 설 연휴 때보다 마구잡이 배출량이 훨씬 줄었다),  큰 흰 비닐을 펼쳐 플라스틱 용기 등을 내 손길로 정리하고 한 컷(우)


그래도 이렇게나 연휴 때 쓰레기가 줄어들다니! 구청에서 이번 연휴 전에 쓰레기 배출 안내 알림톡을 해준 덕분에 연휴 동안 동네 쓰레기터 사정이 한결 나아진 것 같다. 추석, 설날 연휴 때는 쓰레기 수거업체가 쉰다. 다른 휴일은 쉬지 않으니까 정말 격무이고 그래서 쉬어야 마땅하고, 나를 포함해 주민들이 연휴 때는 배출을 자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집이 좀 지저분하더라도 며칠만 참으면 되는데.  




올 설 연휴(1월 1일 신정 설날)때에 여기저기 동네 곳곳에 쓰레기가 배출되어 있었다. 수거업체가 쉬는 연휴 동안, SUV차량 높이만큼 마구잡이로 쌓인 동네 쓰레기터 근처에서 쥐를 봤다. 위생상 큰 문제라고 생각이 들어서, 신정 연휴가 끝나고 구청에 전화를 했다. 


앞으로 연휴가 오면, 쓰레기 수거업체가 쉬는 걸 연휴 전에 미리 널리 홍보해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전화를 한 때가 1월인데, 그 시점에서 곧 다가오는 2월 1일이 구정 설날 연휴니까, 구청 홍보과에 전화를 얼른 한 것이었다. 예전처럼(코로나 이전에 그리 했듯) ‘연휴 때 쓰레기 수거업체가 쉬니까 쓰레기 배출을 하지 말아달라’는 공지를 곳곳에 벽보로 좀 붙여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그건 주민센터로 연락해보라"고 한다. 


알겠다고 하고서, 당시 내가 갖고 있는 아이디어가 하나 있어서 바로 구청 홍보 담당자한테 이야기를 했다.  아이디어는 간단했다. 구청에서 카톡 채널로 알림톡을 운영하니까 알림톡으로 연휴 전에 배출요일 안내를 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구청 홍보 담당자가 “그걸(연휴 때 쓰레기 배출 공지 알림톡 안내) 결정하려면 절차상 시간이 걸린다.”고 답한다. 


내가 "아, 알림톡 운영에 구의 예산이 들어가고 구의 결정도 필요하니까 당연히 그렇겠지요. 알겠습니다. 그래도 곧 구정 연휴니까 좀 서둘러 주시면 어떤가요?"라고 하자, 담당자가 “그 알림톡을 한다고 대체 누가 봅니까? 얼마나 보겠어요?”하고 톡 쏘아붙인다.       


물론 담당자의 말처럼 구청 알림톡을 친구로 추가한 구민들만 안내를 볼 수 있는 건 맞다. 그렇지만 담당자가 간과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알림톡으로 구민을 한 명이라도 더 추가해야 할 구정 홍보 업무를 하는 홍보 담당자가 알림톡 구독 구민 수조차 알려주지 않으면서 이리 나오니까, 나는 할 말이 더 많아진다.^^ 조리있고 정중하게. 나는 대도시 생활인이니까 이 문제를 잘 풀고 싶다. 


“아뇨. 주무관님, 그렇지 않습니다. 알림톡 예상보다 많이 볼 겁니다.  코로나 초기 유행 때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가 나오면서 지역화폐 발행날 공지를 알림톡으로 하니까, 하나라도 절약하려는 사람들이 알림톡을 친구 추가 꽤 했거든요. ”      


그러고나서 구정 연휴가 다가왔다. 쓰레기 배출 안내 구청 알림톡은 오지 않았다. 나는 주민센터에 전화를 해서, 구정 연휴 쓰레기 배출을 하지 않는다는 벽보 공지를 여러 장 붙여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구정 연휴가 끝나고서 주민센터에서 붙인 여러 장의 벽보 공지를 떼는 데에 협력했다.      


그리고 이번 추석 연휴. 이래저래 바빠서 이제 쓰레기 배출 안내 공지에 대해서도, 저번에 구청과 옥신각신한 것에 대해서도 완전히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랬는데, 이게 웬일인가! 이번 추석 연휴 전에 구청에서 알림톡으로 연휴기간 생활폐기물 수거안내가 왔다. 또 구청장이 구민에게 보내는 SMS문자(한가위 인사)로도 같은 공지가 왔다. 아마도 이번 연휴 때 마구잡이 쓰레기 배출이 적은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저와 설왕설래한 주무관님, 감사합니다.




추석 연휴 때 나온 동네쓰레기터의 쓰레기를 정리하고 나서 근처 화단 식물의 누런 잎을 떼는데, 와. 이거 왠떡이냐. 


드디어 꽃이 피었다. 딱 한 송이. 


마,침,내. 


잎 떼던 동작을 멈추고, “이야! 꽃 폈다! 꽃!” "보라색 꽃 한 송이가 폈다!" 골목이 떠나가라 나도 모르게 외치고, 흥겨워 탄성을 질렀다. 휴대폰을 꺼내 얼른 꽃 사진을 찍어 검색해 확인한다. "이 꽃은 봉숭아일 확률이 96%입니다." 아! 봉숭아였어! 봉숭아! 


이파리가 가장 싱그러웠던 7월에 한 컷(좌), 9월 이번 추석 연휴에 단 한 송이 핀 봉숭아꽃 발견(우)


꽃이 피니 확실히 알게 됐다. 분명 나는 맨드라미 씨앗을 심었는데, 실은 봉숭아였다. 그간 싹이 나고 자랄 때 '잎이 아무래도 맨드라미가 아닌데?' 싶긴 했다. (봄에 내가 꽃씨를 샀을 때 판매봉투에 인쇄된 글자를 잘못 본 것 같기도 하고, 판매업체서 실수한 것 같기도 하다. 모르겠다.)   


여튼 꽃을 심었고 꽃이 피었다. 이 단순하고도 명명백백한 사실이 내게 중요하고 기쁘다. 


봉숭아는 한해살이라는데, 이렇게 단 한 송이 피고 지고 사라지려나? 봉숭아야, 미안하다. 1년밖에 못 사는데, 내가 무지해서 네가 맨드라미인 줄로만 착각하고 맨드라미로 대접했네. 맞는 이름으로 불러줬어야 하는데. 하하.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얼마전 세상을 떠난 친구가 하늘에서 안부인사를 전한 것 같다. 친구 생전에 명절 전후로 안부 전화를 나누곤 했었다. 아무래도 이 봉숭아 꽃은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추억통장 저축!




올 4월 중순에 씨앗을 심었다. (혹시 이 과정이 궁금하시면 자세한 건 지난 글 <맨드라미 힘내!>를 참조해주세요.)


싹이 잘 안 터서 마음을 졸이다가, 싹이 나고서 매일같이 들여다보는 사이에 이파리가 무성해지고 파래졌다. 그득한 이파리 아래로 먹다 남은 사과꽁다리를 버리고 간 이도 있었고, 아이스크림(하드) 포장용지를 버리고 간 이도 있었고, 사이다 캔을 버리고 간 이도 있었다. 


그러면 나는 숨바꼭질 하듯 이파리 밑에 감춰놓은 걸 찾아내서 치웠다. 이런 종류의 숨바꼭질은 은근히 쏠쏠한 재미가 있다.


언젠가는 뿌리째로 봉숭아 옆에 있는 옥잠화와 매꽃을 뽑아가고서는(=도둑질)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불필요한 이파리를 화단 밑바닥에 내동댕이 치고 간 이도 있었다. 아 이건 뭐, 화도 더 이상 안 나고, 이런 수준의 공공의식에 왠지 서글픈 마음만 들었다. 


봉숭아가 자라는 동안에 틈틈히 찍은 사진들. 2022년 4월, 5월 (맨드라미인 줄 알고 키웠다.ㅋㅋ)


봉숭아는 물을 아주아주 좋아한다. 올 여름 폭우 속에서도 가뭄은 이어져서 물을 줘도 줘도 꽃이 피지 않았다. 하도 꽃이 피지 않길래 '내가 덕이 부족한가?' 하는 생각이 올 여름 끝무렵 잠깐 뇌리를 스쳤다. 7월에 친구가 세상을 떠나고, 갑작스런 소식에 내 마음 한켠에 뭐라 할 수 없는 약간의 자책감과 후회가 천천히, 하지만 예상보다는 좀 더 세게 밀려들었던 것 같다. 


괜찮은 사람인데. 그저 숨쉬고 밥 잘 먹고 살아 있어만 있어도 좋은데. 존재 자체로 아주아주 괜찮고, 존재 자체로 두루두루 도움이 되는데. 아, 나는 친구가 살아 있을 때 이 이야기를 꼭 전했어야 했다. 내 마음은 무너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터이지만, 그래도 뭔가 약간 이상하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어릴 적에 매해 마당에 봉숭아꽃씨를 심고 꽃이 피면 꽃잎을 곱게 빻아서 백반과 섞어서 손톱에 물을 들여주곤 했는데. 어느 해던가는 귀찮아 죽겠어서(움직이면 봉숭아 물이 잘 안 드는데, 좀이 쑤심) 봉숭아물 안들여도 된다고 도망을 갔다. 할머니도 짜증났는지 그 다음부터는 손주 치장(돌보기) 대신에 아주 바람직하게 자신의 인생을 찾아, 본인의 고구마 농사에만 골몰하셨다. 나도 고구마 캐기를 거들면서 신나게 움직이며 놀았다. 


그 시절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긴 사소하고 지루한 생활, 작은 일상의 한 장면 한 장면이 오늘의 나를 지탱해준다.   



꽃을 기다리던 어느날엔가는 나름대로 과학적인 의문도 품었었다. ‘내가 단돈 500원에 사 와서 심은 이 맨드라미는 씨앗이 터미네이터 종자(terminator, 유전자 조작으로 다음 씨앗을 쓸 수 없게 한 종자)인가?’하고. 그러다가 '그런데 맨드라미는 관상용인데, 아니 관상용 식물도 터미네이터를 만드나?'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참고로, 터미네이터는 거대한 식량기업에서 이윤을 내기 위해 만들어 내는 종자이고, 식량위기 지구에 위협을 준다. 2021년 세계 기아 인구는 약 8억, 전체 인구 중 9.8%로 추정된다. 유엔이 전에 세운 ‘2030년 세계 기아 종식’ 목표는 가뭄이나 폭염 등 기상이변(기후변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달성이 불가능할 것이란 예측이 나왔다. 


추석 직전에 배추3포기에 4만원이었다. 최근의 물가오름세(올해 한국 소비자물가상승율 약6%, 기축통화 달러 찍는 통화정책으로 코로나19 후 침체된 경기부양해온 미쿡 약8%)에 한숨쉬다가, 이렇게 부유한 세계에서 아직도 굶주림 인구가 이렇게나 많다니. 가끔 가다 생각한다. 이런 되먹지못한 비교 따위로 내 삶을 위안받는다는 게 참 몹쓸 노릇이라고. 어쨌거나 소멸되는 그날까지 하루하루 폭넓은 시야로 고민해서, 좀 더 나은 언행과 사고로 내게 주어진 시간을 채우고 싶다.        

6월, 7월에 찍은 봉숭아 사진

 

물을 좋아하는 봉숭아, 가뭄 속 뙤약볕에 픽픽 쓰러져 있거나 이파리가 축 쳐져 있다.(좌, 중앙) 누가 뿌리째 매꽃을 도둑질하고서 화단 밑에 뽑다만 화초를 버리고 갔다.(우)


오늘의 정리 

가뭄 속 뙤약볕에 픽픽 쓰러진 봉숭아에 물을 주고, 산책 후 돌아오면 몹시 신기하게도 봉숭아는 어김없이 다시 꼿꼿이 일어나 있었다. 30분~1시간 후면 언제 내가 쳐져 있었냐는 듯 생기를 다시 찾은 봉숭아. 수돗물만 줘도 극적인 변화를 보이며 소생하는 봉숭아의 모습이 사랑스러웠고, 자랑스러웠다.


그렇지만 나는 내년에는 동네 화단에 봉숭아를 다시 심지 않을 것이다. 봉숭아는 물을 많이 주어야 하고,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이 계속되느니만큼 물 주기가 너무나도 수고스럽다. 아, 1년생 식물도 스스로 씨앗을 떨어뜨려 자라나기도 한다니까, ㅋㅋ 혼자서 저절로 싹이 튼다면 그럼 또 하는 수 없이 잘 키워봐야겠죠?! 주렁주렁 보라색 봉숭아꽃 한가득 꽃피우게.  


물을 주면 되살아나는 봉숭아(좌), 불볕 더위에 봉숭아 무성한 이파리 그늘에서 쉬어가는 우리 동네 냥이(우). 멀리서 줌으로 찍어서 화질이 엉망이다. 얼마 전 중성화 수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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