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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쟌 Oct 21. 2020

내가 임신이 되지 않던 이유

괜찮지가 않은데 괜찮다니요

임신은 결혼을 하면 자연스럽게 겪는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신혼기간을 지내고, 아이가 생기면 삶의 변화가 크기 때문에 남편과 꽤 신중히 계획을 했다. 계획하고 결정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지만 그래도 산전검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보건소에서 기본적인 검사를 받고 산부인과에서 추가적인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엽산도 챙겨서 먹었다.(이 정도면 된 건가?) 병원에서 받은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다. 난소 나이가 내 나이보다 조금은 높지만 걱정할 건 아니고 1년 정도 자연스럽게 시도를 해보라는 이야기다. 난소수치(AMH)는 난자의 질과 수를 나타내는 지표인데 나는 그 검사도 일부러 했다. 당연히 좋게 나올줄 알고 얼마나 어리게 나올지 궁금하던 차였다. 그런데....내 나이보다 높게 나왔다고???


'지금 내 나이도 적지 않은데 조금 높은 것이 걱정할게 아닌 게 맞나?'



나는 워낙에 운동도 좋아하고 건강에 있어서 남다른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한방에 가질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다. 부인과 질병도 한 번도 앓아 본 적 없고 생리통마저 나는 없었다. 그래서 몇 달은 자연스럽게(?) 준비를 했지만 아주 정확하고 조금의 오차 없이 매 주기마다 그분이 오셨다. 뭐지??


'주변에서는 정말 계획과 동시에 잘도 생기던데,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걸까??'


잠시 잊고 있던 나의 난소 나이가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난소 기능은 한번 떨어지면 다시 좋아지지 않기 때문에 노화가 되는 것을 최대한 관리해야 한다고 하셨다. 내가 좋아하는 빵도 안 먹고, 튀김도.. 줄였다. (난소야 늙지 마..) 몇 달을 더 기다리다가 회사 언니가 떠올랐다. 아이가 몇 년 동안 생기지 않아서 나팔관 조영술을 받아 보니 한쪽이 막혀있었다고 했다. 희미하게 막혀있었기 때문에 뚫리면서 바로 임신이 됐다. 나도 혹시나 막혀 있을지 모른다. 다시 병원을 찾았다.


"조영술까지는 아직 권하지 않아요.. 일 년 정도 안되면 해보셔도 되는데.."


"저는 한 달이 일 년 같아요.................... 저의 나팔관의 상태를 알고 싶습니다"


결과는 아주 시원하게 잘 뚫려 있어서 아픈 줄도 몰랐다.


'그럼 나의 나팔관도 문제가 없다는 거지??'



그렇게 또 몇 달의 시간이 흘렀다. 눈치 없이 계속 그분이 정확한 날짜에 딱딱 맞춰 오셔서 기대를 해볼 틈도 없었다.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니 배란기를 알려주는 테스트기가 있다고 한다. 그걸로 배란기를 알면 임신에 아주 큰 도움이 된다는 것.

 (임신의 세계는 아주 신기한 것 투성이로구나)

배란테스트기도 내 주기와 너무나 잘 맞았다. 그래서 처음 시도해 봤을 때는 정말 임신이 된 줄 알고 속도 좀 울렁거렸고 배도 콕콕 찌르는 느낌을 받기까지 했다.


'드디어.. 왔구나.. 올 것이 왔어.'


그렇게 나는 이미 임산부가 되어 있었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테스트기를 해볼 참이었다. 그런데 별생각 없이 화장실에 갔는데 반갑지 않은 그분의 까꿍.




지금 생각해도 조금 슬픈데 그때 화장실에서 엉엉 울었다. 그리고 남편의 왜 그러냐는 한마디에 나는 주저앉아 울었다. 매달 어김없이 제날짜에 찾아오는 그분 때문에 나는 초조해 갔다. 아무래도 나에게 다른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다시 병원을 찾아갔다.


"저의 난소 나이가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서야 온갖 노력에도 이렇게 소식이 없을 리가 없어요. "


챙겨 먹어야 하는 영양제도 챙겨 먹고 손발이 찬 나에게 좋은 음식도 먹는데 왜.. 도대체 왜.. 이보다 더 완벽할 수가 없는데. 선생님께서 나에게 되물었다.


 "온갖 노력이라는 게 뭘까요??"


그렇다. 내가 간 병원은 우리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산부인과였는데 그 병원은 난임 병원이었다. 나는 그 날 알았다. 생각해보니 산부인과에 아기들도 보이지 않았고 지나치리만큼 차분한 분위기에 조심스러움이 느껴졌다.


"여기 오시는 분들 중에 자기 배에 주사 놓고, 매달 피검사하고 울고 가는 분들이 많거든요.. 그리고 시술이라는  한다고 반드시 임신이 되는  아니라서 심적으로 많이 힘든 거예요.. 근데 아직은 뭔가 노력을 해봤다고 하기엔 얼마 지나지 않았어요. 조금  여유를 갖고 기다리셔도 돼요. 아직까진 괜찮아요~!"


'아... 괜찮다니.. 난 안 괜찮은데....'


아직까진 괜찮다고 해도 나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나이는 먹어가고 난소 나이까지 많은데 야속하게 흐르는 시간이 아까웠다. 게다가 결혼하고 어느정도가지나니 주변에서 임신소식을 묻기도 했고 시댁에서도 많이 기다리셨다. 언제 될지도 모르는 임신을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럽게 느껴지는지..



나는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노력은 하고 있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임신이 안되고 있고 시간이 좀 걸릴 거라는 말씀을 드렸다. 너무 기다리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괜찮다고 하셨지만 한동안 어머님의

누구누구가 한약을 먹고 한동안 아이가 안 생기다가 생겼더라, 내 친구 딸이 몇 번 유산도 했는데 결국 애가 생겼다더라....


분명히 위로해주시려는 얘긴데 어째 나는 듣기가 불편했다. 들추고 싶지 않은 나의 고민들이 누군가에 입에 오르내린다는 사실이 부담스럽고 내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그쯤에 경부암 검사를 위해 다시 병원을 찾았다. 스트레스받는 나에게 선생님이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마음을 조금 비우세요~!"


하...... 난 정말이지 저런 말이 제일 싫다. 비워서 되는 거면 진작에 비우고도 남았지만 내 안에 있는 건데도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안 되는 걸 어쩌라는 건지. 비우라는 말을 쉽게 하는 것 같고 안 되는걸 자꾸 하라는 게 속터졌다. 서울대 가기 위해서 교과서에만 충실하면 된다는 뻔하고 진부한 대답에 실망을 했다. 그러면서 선생님께서 본인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나도 의사지만 어렵게 임신이 됐어요. 나는 내가 누구보다 먼저 알잖아요. 임신이 됐는데 화학적 유산으로 그친 경우도 여러 번 있고요. 근데 나는 남편과 여행하고 즐기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어요. 그렇게 마음먹고 해외에 가서 남편과 와인 하잔도 하고 쉬고 왔는데 몸이 이상한 거예요. 임신 이더라고요? 하지만 이번에도 잘 유지가 될지는 모르기 때문에 마음을 완전히 비웠어요. 와인도 마셨는데 어쩌겠어요.

그 아이가.. 벌써 5살이에요.. 웃기죠?? 나는 그래서 환자분들이 임신을 얼마나 기다리는 지도 잘 알고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도 잘 알아요. 임신이라는 건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부분도 있어요. 이유 없이 안 되는 경우도 있고, 안될 이유가 많은데 되는 사람도 있고요. 그건 완벽하게 준비해도 어쩔 수 없는 신의 영역이니까 안되더라도 마음을 조금 비우고 쉬었다가 다시 시작해 보세요."

    

나는 이런 얘기가 듣고 싶었나 보다.



'내 탓이 아니라고..'

남편은 술도 거의 먹지 않고 담배도 피워본 적이 없다. 운동도 꾸준히 하기 때문에 임신이 되지 않는 이유를 나 자신에게서 찾기 바빴고, 모두 내 잘못 같았다. 근데 어디가 잘못된 건지는 알 수가 없으니 그 시간 동안 죄책감에 사로잡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도를 했다가 결국에 집착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아기천사. 뭐 이런 마인드였나. 완벽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임신이라는 게 쉽게 되는 것도 아니고 사람마다 되는 시기도 다르다. 언제 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보내는 시간들에 덜컥 겁이 났다. 3년이 될지... 5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모르는 시간들을 이렇게 보낼 순 없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 언젠가를 위해 잠시 멈추기로 했다. 먹던 영양제들도 엽산 빼고는 안 먹었고, 먹고 싶었던 음식을 와구와구 먹었다. 그리고 임신 준비로 쉬었던 일도 시작하면서 글도 쓰고, 운동도 등록했다. 남편과 해외여행 비행기 표도 끊었다.


잠시 임신에서 벗어 나니 잊고 있던 소소한 행복들을 다시 찾게 되었다. 한 번에 마음이 비워지고 괜찮아지는건 아니었지만 아이가 없어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었고 아이가 있어야만 행복하다면 지금도 행복한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모두에게 반드시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니 기다려보자.

 


"그런데 이상하다.. 속이 왜 이렇게 매스껍지.... 별거 아니겠지??"



그때는 임신을 하면 안 될 만큼 몸이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면역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었고 기립성 저혈압으로 몇 번이나 쓰러졌기 때문이다.


'임신이었다... '


남편과 나는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극초기였고 유지가 힘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담당 선생님께서도 축하보단 걱정을 더 하셨다.


"몸을 더 회복하고 생겼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우리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죠!!"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매주 면역력 주사도 맞고 하던 일도 계속했고 일상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엄청 신이 나서 온 동네를 뛰어다닐 줄 알았는데 입덧이 심해서 몇 달을 좀비처럼 보내면서 굴러 다녔던 것 같다. 그리고 임신사실을 만삭이 되서야 조금씩 알렸다. sns는 원래도 하지 않지만 내사정을 모르는 누군가도 나의 임신소식에 자신을 탓할지 모른다는 조금 유별난 걱정에서였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아이계획이나 가족 계획을 묻지 않으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안정기를 맞이 했고 그 아이는 큰 이벤트 없이 건강하게 세상 밖으로 나왔다.



내가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생각보다 임신이 쉽지 않은 사람들이 꽤 많았다. 몇 년을 여러 가지 시술을 동원해서 노력도 하고 누구보다 하루하루를 간절하게 살아간다. 임신 계획 전에는 금방 생겼던 사람들 얘기만 들렸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내가 같은 마음이 생기니 보였다. 준비하면서 알게 모르게 심적 고생이 있기 때문에 드러내기도 어려운 일이다. 함께 고민을 하고 있던 친구가 나보다 먼저 임신이 됐을 때 진심으로 축하를 못해줬던 것 같다. 하고 싶고, 묻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는데 입 밖으로 나오지가 않아서 그냥 너무 축하한다는 말만 전하고 말았다. 그날 그 소식을 듣고 운동을 하는데 땀인지 눈물인지 눈이 정말 따가웠다. 내 마음이 그 정도로 퍽퍽하고 못났었다.



괜찮지가 않은데 괜찮다는 위로도 싫었고, 비우라는 말도 싫었다. 자꾸 기다리고 기대하는 내가 미웠고 안타까웠다. 지나가는 아기들이나 임산부만 봐도 눈가가 시큰했다. 내가 살면서 가장 내려놓기 힘들 때가 아니었나 싶다. 차라리 어디에 문제가 있다면 치료하고 시도해보고 싶을 만큼 답답했다. 그렇게 완벽하게 준비하고 기다렸던 선물을 당장 받을 생각에 벌을 받았던 것 같다. 임신을 준비했던 시간들이 십 년 같았는데 아이를 낳고 보니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이었다. 선물을 달라고 하도 보채서 받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나보다. 같은 고민을 하는 누군가에게 내려놓고 적당히 비우라는 말은 못 하겠다. 그러나 완전한 준비는 불가능하고 나의 노력과는 별개인 부분을 인정한다면 마음의 짐이 조금은 가벼워질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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