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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쟌 Nov 03. 2020

아이가 안 생기면 딩크인척 하려 했다

새롭게 보이는 그들의 세계

내가 회사를 입사하고 나서 다른 팀과 점심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마흔 정도 되어 보이는 과장님이 계셨는데 주말에 있던 일들을 듣다가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주말에 코스트코에 가서 와이프랑 장을 보고 집에서 고양이 들과 시간을 보냈다는 것. 과장님의 일과에는 아이가 없었고 그걸 묻거나, 궁금해하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그 팀에 친한 동생이 얘기 해준 내용에 의하면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하고 고양이 두 마리와 그들 자신에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 한다고 한다. 그때는 멋지다며 쿨한 척했지만 다른 이유가 있어서 일거라는 자의적 판단에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그 과장님이 내가 아는 첫 번째 딩크였다.



그때에 나는 이십 대 중반이었고 딩크라는 단어가 아직은 낯설었다. 그렇게 서른즈음 되었을 때는 회사에서 만난 친한 언니가 결혼을 했다. 언니는 결혼하고 3년이 흐를 동안에도 아이가 없었고 나는 단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 언니가 결혼하고 5년쯤 내가 결혼을 할 때 자연스럽게 나의 자녀계획 이야기가 나왔고 언니는 그때 나에게 딩크라서 아이를 낳을 계획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두 번째 딩크가 이렇게 가까이 있을 줄이야. 언니는 남편과 지금의 시간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싶어 했다. 남들이 누린다는 우주의 행복을 누릴 수 없을지라도 지금이 언니에게 우주고 충분히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언니에게 자녀 이야기를 묻지 않는 것은 잘 참아 왔지만 딩크를 결심한 이유가 궁금한 나도 아직은 아이를 꼭 낳아야 행복할 줄만 알았나 보다. 그래서 낳지 않는 이유가 너무나 신기하고 궁금했다. 왜냐면 그때의 나는 아이를 가지려고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한동안 임신 시도를 했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지금 임신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쉽게 나오지 않았고 주변에서 아이 계획을 묻는 사람들에게


"천천히 가지려고요. 신혼을 최대한 즐겨야죠~~"

라고 애써 담담하고 태연 한 척했다.



그냥 사실 그렇게 보이고 싶었다. 임신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데도 안돼서 안타깝게 보이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임신이 안 되는 게 아니라 노력하고 있지 않다고 나 자신을 속이고 남들도 속이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 조금씩 내려놓을 때쯤에는 내 마음이 다칠까 봐 딩크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 것 같다. 아직 아이가 없어 봐서 모르지만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고 남들이 누리는 삶을 꼭 따라갈 필요는 없다는 생각들도 해봤다. 비록 나는 자발적 딩크가 아니라 상황이 나를 딩크로 만들었지만 살아가면서 아이가 없음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원래부터 딩크 인척을 해보려고도 했다. 그렇게 누군가가 물을 때마다 내 마음은 아파 오겠지만 적어도 아무렇지 않아 보이고 싶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 그때의 나의 마음을 되돌아보니 정말 한심하기도 하고, 그 상황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아직은 나도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딩크에 대해서도 무지 함을 깨달았다. 여전히 나와 친하게 지내는 언니는 가끔 아이를 보러 오기도 하고, 아이 이야기에 완전히 자유로우며 누군가 아이 계획을 묻는 것에도 귀찮긴 하지만 상처 받지 않는다. 왜냐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선택이고 남들이 하지 않는 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궁금증은 그저 다수가 아닌 소수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 정도라고 여긴다. 언니는 조카나, 친한 주변 사람의 아이들을 보는 것 자체로 만족하고 이쁘다고 한다. 아이들이 이쁘고 좋다고 해서 반드시 내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했다. 길가에 핀 예쁜 꽃처럼 그저 갖지 않아도 지켜보는 것 자체가 자기 나름의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얘기는 나의  짧고도 심플한 생각들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했다.



아이를 낳은 것은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가 원하고 간절했고 아이가 주는 행복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크기 때문이다. 다만 예전에 내가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딩크 인척 하려고 했던 생각은 오만이었다. 나는 언니처럼 그렇게 아이를 보는 것 자체로 만족하기 힘들었을 것 같고, 누군가 아이를 왜 낳지 않냐는 질문에 매번 심장이 쪼이는 고통이 따랐을 것이다.

나는 딩크가 아니라 그저 난임의 고통을 겪지만 표현하지 않으려는 사람일 뿐이다. 아이를 낳고 나서 새롭게 보이는 딩크의 세계는 내가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고, 나오고 싶으면 나오는 그런 세계가 아니었다. 그들의 행복과 나의 행복의 결이 달랐고, 그 안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우주가 있는 것이다. 아이를 낳지 않고 자신들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과 아이가 생기지 않아 우리의 시간을 어떻게든 행복하게 보내야만 하는 나와는 결과만 같고 의미는 달랐다.



남들은 아이를 갖지 않는 딩크에게 아이를 낳아 보지 않아서 그 행복을 모른다고 할지도 모른다. 대부분 아이를 낳아본 기성세대들이 그런 말들을 많이 한다. 딩크족들이 아이를 낳고 길러보지 않아 그것만의 행복을 모르듯이, 아이 없이 보내는 시간을 경험해 보지 않는다면 그것만의 행복 또한 알 수가 없다. 아이를 낳고 길러보니 아이로부터 오는 행복과 감사함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에 따른 책임감이 나를 짓누를 때가 있다.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에는 나 자신은 잠시 잊힐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히려 출산 후에 아이를 낳는 것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됐다. 그들은 아이를 낳고서야 내가 알게 된 많은 것들이 이미 알고 있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딩크의 길을 앞장서서 가고 있는 언니가 과연 맞는 선택인지, 지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시도라도 해보라고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언니가 가고 있는 그 길을 아직 많은 사람들이 가보지 않아서 모르는 것뿐 시간이 지나면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납득시킬 만한 설명 따위는 붙이지 않을 날이 머지않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간다고 해서 다른 길을 가는 사람에게 함부로 그쪽이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 사람마다 각자가 선택한 길이 있을 것이고 그 선택은 어느 누구도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딩크가 아이를 낳은 사람들에게 왜 아이를 낳으려고 하는지 묻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아이를 낳지 않은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사연이 있을 거라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저출산의 책임을 딩크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에게 화살이 향할 때마다 조금 웃긴 사실은 나도 그렇고 아이를 둘, 셋 낳은 사람들이 출산율에 이 한 몸 받치려는 목적으로 출산을 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아이를 키우면서도 과연 지금 이사회가 아이들을 키우기 안전한 사회인지 나조차도 불안할 때가 많고

경제적인 면이나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변하는 부분들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어릴 때야 대부분 잡초처럼  형제들끼리 투닥거리며 자랐지만 나도 요즘 엄마들 사이에 끼면 겉돌 때가 많다. 수많은 교육정보부터 아이에 관해 엄마들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아낌없는 지원을 쏟아붓는다. 그저 건강하게 잘 뛰어놀고 주변 사람들을 한번씩 살피길 바라는 나의 바람은 요즘 엄마들과 뒤섞이기에 뭔가 어색하기만 하다.



나도 아이를 낳기 전에는 내가 원하는 건 다른 사람도 원할 것이라는 일차원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 중에 하나였다. 왠지 내가 놀이공원에 가고 있을 때 차가 막히면 그 도로 위에 모든 차가 다 놀이공원을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수많은 차들 중에는 바다를 가는 사람들도, 산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었을 텐데.. 내가 산과, 바다를 가고 싶은 게 아니라서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아이를 결과적으로 안 낳게 되면 딩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들만의 확실한 행복의 세계가 따로 있었다는 것을 나는 아이를 낳고서야 온전히 이해했다. 여전히 언니는 자신만의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남편과 매일매일 추억을 쌓아가고 있다. 아이가 없는 부부만의 시간을 십 년 가까이 잘 이어나가고 있다. 나는 10년, 20년이 흐른 뒤에 나만의 시간이 주어 질 때 다시 언니와 결혼 전 함께 했던 수많은 취미들을 함께 하려고 한다. 그때의 언니가 여전히 행복하고 멋진 사람으로 육아를 마친 나를 반갑게 맞아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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