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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자훈련소장 Feb 15. 2021

당신의 한계는 누가 정하는가?

한계란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또 글을 쓰다 보면 자꾸 반복하게 되는 내용이 있습니다. 같은 말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같은 내용을 중복해서 계속 작성하고. '지난번에도 했던 말인데,, 왜 또..?'


같은 말, 했던 말을 하고 또 하는 것은 그 내용이 반복하는 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내용, 상대방에게 반드시 전달하고 싶은 내용인 것이죠. 그렇습니다. 제가 지금 여러분께 전달드리고 싶은 내용이 그렇습니다. 


한계는 누가 정하는가. 

여러분의 한계는 누가 정합니까?

자기 자신? 부모? 친구? 직장 상사?


주변에서 여러분의 한계를 규정하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끊임없이 여러분의 한계를 규정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 시도는 여러분을 위한 것으로 가장하고 있습니다. 이성적 또는 감성적으로 접근하여 여러분의 한계를 규정합니다. 이런 시도는 여러분의 사고에 매우 위험한 영향을 끼칩니다. 


상대방의 말을 인정하는 순간, 없던 한계가 생기고, 조금씩 자라나고 있던 한계는 더욱더 확고하게 강화됩니다.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할 수 없을 거 같아'로 변하고,


'할 수 없을 거 같아'라는 생각이 '할 수 없어'로 변하게 되죠. 


가능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작은 확률, 매우 작고 희박한 확률이라고 성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치는 희박성에 비례하여 올라가게 됩니다. 하지만,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0, 제로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죠.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면 시작조차 없게 되는 것입니다. 


저의 학창 시절엔 모의고사를 보면 담임선생님께서 낮은 점수부터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낮은 점수를 받은 학생들은 매를 맞고, 꾸중을 함께 받았죠. 진로희망 및 희망 대학을 적어내면 담임선생님은 '네 점수로는 턱도 없다'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격려였을까요? 




저는 퇴사를 몇 번 경험했습니다. 사표를 내면 선임(선배) 직원이 항상 불러서 개별 면담을 하며 이야기했습니다. '요즘 취업이 얼마나 어려운데, 나가면 고생이다. 후회할 거다.' 여러 사람들이 퇴사를 앞둔 저를 부르고 돌려 까기 하듯 불러서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생각했습니다. '퇴사 후 어려움을 이야기하기 전에 왜 퇴사하려는지부터 듣고 그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게 먼저 아닌가..' 어렵게 들어온 회사인 만큼 당사자가 퇴사를 결정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그들은 진정 모르는 것일까요? 


제가 들은 이야기를 퇴사를 고민하는 여러 직원들에게 했을 것이라 감히 확신합니다. 그때마다 많은 직원들이 용기를 잃거나 또는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다시 생겨(?) 퇴사 결심을 접었을 것입니다. 저의 경우 퇴사 후 원하는 것을 이루기까지 쉽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을지 모르겠지만, 정말 많은 후회를 했죠.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이미 각오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확실한 미래는 지옥과 같았습니다. 단 한 가지 변한 게 있다면 정말 열심히 살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려운 현실을 탈출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살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현실을 바꿀 수 없었기 때문이죠. 결국 원하는 목표를 이루었고 삶은 180도 변화했습니다. 주위의 반응도 180도 바뀌었죠. '세상 물정 모른다'라고 말하던 사람들이 '넌 역시 될 줄 알았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타인의 과정에 크게 관심 없습니다. 타인의 결과물에만 집중합니다. 그리고 일부는 두려워합니다. 내가 하지 못한 것을 상대방이 해낼까 봐. 퇴사를 꿈꾸지만 두려워 퇴사를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아닌 누군가 퇴사를 하고 원하는 바를 이룰까 두려워합니다. 그게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 두려움은 커지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삶을 내가 살지 못했지만,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을 가까이에서 직접 목격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일까요? 물론 모두가 그러진 않겠죠. 


여러분의 가능성을 진정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여러분 자기 자신입니다. 내 삶의 주인은 나이기 때문이죠. 내가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면, 절대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시작하면 그때부터 한계는 사라집니다. 가능성이 시작되는 것이죠. 




쉬움과 어려움은 분명하게 구분됩니다. 여러분 삶에 있어 쉬운 길과 어려운 길이 있겠죠. 누구나 쉬운 길을 택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많은 이가 쉬운 길을 택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 안주하는 것. 성공했다면 그 한 번의 성공에 안주하는 것. 실패했다면 그 한 번의 실패에 포기하는 것. 


여러분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일부는 겸손을 오해하여 자신의 한계를 규정하고, 가능성을 제거합니다. 


'할 수 없다' 말하지 마십시오.

모두가 '할 수 없다' 이야기하면, '그만큼 쉽지 않겠지만 난 해보겠다'라고 이야기하십시오. 

여러분 삶의 주인공은 여러분입니다. 

그 누구도 여러분을 대신하여 여러분의 삶과 그 한계를 규정할 수 없습니다. 


부자가 되고 싶으시면 '부자가 되겠다' 이야기하십시오. 

건물주를 원하시면 '건물주가 되겠다' 이야기하십시오. 

그리고 시작하십시오. 


부자가 되는 길, 건물주가 되는 길. 

그 시작은 지금부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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