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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대여성 Oct 28. 2020

낯설기 위해 노력하기






사람을 바꾸는 방법은 크게 3가지가 있다고 한다.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환경)을 바꾸는 것,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익숙하게 반복되는 일상들에 감정까지 메말라가던 어느 날, 문득 이 세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방법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 떠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당장 필요한 옷가지들과 세면도구, 그리고 카메라와 핸드폰만을 챙겨 태국으로 떠났다. 첫 도착지는 태국 북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인 치앙라이였다. 작고 정겹지만 아늑한 느낌은 없는 힙한 동네. 맛있는 음식이 많은 만큼 맛없는 음식들도 많은 곳이었다.


그곳에 머물던 둘째 날에는 태국에서만 열리는 트레일 러닝 대회(산을 달리는 대회)에 참여를 했다. 내가 뛰었던 20km 종목에는 한국인이 오로지 나 한 명뿐이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외국인만 있는 곳을 달리려니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가 된 것만 같은 착각에 잠시나마 짜릿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교통, 먹거리, 놀거리, 볼거리 등 다방면으로 그곳의 문화를 접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고 흥미로웠다. 하루하루 무언가를 해내지 않아도 마음이 충만하게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여러 명이 함께 자는 도미토리 숙소에 작은 침대 하나가 오롯한 내 공간이었지만 늘 좋은 기분으로 잠에 들었다.


최선을 다해 게으름을 피운 뒤 배가 고파질 무렵 활동을 시작했다. 꼭 가야 하는 곳도 없었고 내가 꼭 무언가를 시작해야 하는 시간대도 없었다. 그렇게 치앙라이에서의 일주일을 시작으로 치앙마이, 빠이, 끄라비, 피피섬, 푸켓, 방콕을 여행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태국 일주를 하게 된 것이다.


공항에서의 첫 노숙,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숙소 근처 재즈바에 가서 와인 한잔 마시며 공연 보기, 매일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영어로 대화하기, 운동복을 입고 발길 닿는 대로 동네 달리기, 온천물에 삶아먹던 계란, 7천 원 주고 마셨던 한국 막걸리, 난생처음 해본 별똥별 구경, 큰 개들이 돌아다니고 모닥불이 있는 클럽에서 놀기, 현지인들만 아는 숨은 맛집과 카페 가보기, 갑작스레 내리는 폭우를 온몸으로 맞기, 섬 투어를 하며 했던 스노클링, 빛깔이 아름답던 바다에서 전세 내고 수영하기, 태국 명절 행사 참여, 식중독에 걸려 다녀왔던 응급실, 비행기 안에서 보던 일출 등등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새로운 일상들이 나를 채웠다. 


안정감을 주는 반복되는 일상은 없었지만 예상되지 않는 하루들이 주는 즐거움들이 많았다.


3개월간의 긴 무계획 여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으로 착륙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한마디로 정돈하고 형용하기 힘든 감정들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북적이는 인천공항,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한국말. 오랜만에 마주한 한국은 익숙하고도 낯선 풍경이었다. 동네의 신축 아파트 공사는 끝나 있었고 키우던 강아지는 포동포동 살이 올라 있고 엄마는 내 걱정에 살이 쪽 빠져 말 그대로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태어나 처음 해본 긴 여행에서 현실로 돌아오기까지는 단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여행 중간중간 말썽이던 핸드폰을 바꾸고 집에서 해주는 밥을 먹으며 평생을 지내던 온도와 습도에 다시 살게 되었다. 그렇게 낯설었던 곳과 헤어지고 익숙한 곳을 마주했다.


나를 채워주기도 하고 비워주기도 했던 여행 속 수많은 첫 만남과 이별들이 있었기에 다시금 돌아온 익숙한 삶 속에서 평범한 나날들을 보낼 수 있었다.


십여 년의 삶이 응집된 듯한 3개월간의 배낭여행을 떠올릴 때마다 누군가에겐 익숙해서 지겨운 곳도 어느 누군가에겐 매일이 새로운 자리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각자가 있는 그 자리는 언제든 사람을 바꿀 수 있는 곳이었다.


국내여행도 해외여행도 비교적 어려워진 2020년. 때때로 낯설기 위해 노력을 하고 시간을 달리 쓰며 어제보다 나아진 나를 만나는 걸로 여행을 대신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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