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권한대행도 헌법과 법률의 조문에 따르면 거부권을 사용할 수는 있다. 이를 금지하는 조문은 없기 때문이다.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법률안은 정부로 이송되어 국무회의에서 마지막으로 심의하면서 그 법률안을 그대로 공포, 시행할지 아니면 거부권을 행사할지 결정한다. 국무회의에서 심의하고 대통령 또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최종 결재(재가)를 하는 형식이다.
이번에 국회에서 의결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예전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률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한덕수 총리가 거부권을 행사하기도, 행사하지 않기도 애매해진 것이다.
거부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실무자들의 수 많은 검토와 보고가 이루어진다. 국회가 의결한 법률안을 왜 공포하고 시행할 수 없는지, 페이퍼워크를 엄청나게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국회가 의결한 법률안은 공포, 시행하기 마련인데, 예를 들어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경우는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대통령이 거부를 한 것이다. 물론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논리를 만들고 보고를 한 것은 실무자들의 몫이었다.
예전에 어렵게 어렵게 겨우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할 수 있는 논리를 탄탄하게 만들어놨는데, 이제 와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공포, 시행하도록 국무회의에서 심의, 의결하는 것은 행정부의 "자기부정"이 되는 것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화끈하게 결단하여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고 얘기해주지 않는다면, 그 밑의 수많은 실무자들은 나중에 있을지도 모르는 감사원 감사, 자체 직무감사를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거부권 행사 논리를 뒤집을 신박한 논리를 개발하는 것도 사실 어려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농림축산식품부가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양곡관리법을 거부하도록 건의하는 것이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행정부는 논리와 보고로 굴러간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혼자서 일하는 조직이 아니다. 특검법을 포함한 과거 24건의 법률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기 위해서 나름의 논리와 보고가 있었을 것이다. 이제 행정부 스스로 과거의 논리를 다시 검토해야 하는 자기반성의 시간이 오고 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고 결단을 내릴 수 있을지, 주권자인 국민은 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