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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법은 조변 Oct 17. 2023

로스쿨 후배님을 위한 메모 (+ 에필로그)

마지막 부분에 에필로그가 함께 있습니다.

나는 매번 로스쿨 인턴십을 마무리할 때쯤 마지막 강의자료로 '후배님들을 위한 메모'를 작성했다. 잔소리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후배님들과 2주 동안 신뢰가 쌓여서 그런지 진지하게 들어주셨던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또 다른 로스쿨 후배님들을 위하여, 죄송하게도 그 잔소리 같은 글을 다시 언급하고자 한다.

(부디 좋은 의도로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 '합격'이 아닌 '가치관'을, '경쟁'이 아닌 '협력'을 추구하는 변호사가 되어 주세요. 

 

시험은 합격으로 끝나고, 경쟁은 승리의 순간으로 끝나지만, 변호사의 삶은 긴 여정임을 기억해 주세요. 변호사로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로스쿨에서 미리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변호사가 없는 직장, 변호사가 없는 분야라고 겁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1호 변호사'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변호사님께서 가고 싶은 길을 가세요. 그래도 다 먹고 살 방법이 있습니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가깝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변호사가 되어주세요. 변호사가 많다 많다 하지만, 여전히 법적인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분들의 고민과 걱정을 외면하지는 말아 주세요. 일단 들어주세요.


시간이 지나면 당연하게 갖추어지는 지위가 있습니다. '10년 차' 변호사 같은 것이지요. 그렇지 않은 지위와 역할도 많이 있습니다. 스스로 부족한 점이 있으면, 채워가는 변호사가 되어 주세요.


2. 결론이 없는 법적 쟁점은 없습니다. 끝까지 검토하고 검토해서 결론을 내리세요.


법적인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재량행위'와 같이 법적인 문제가 숨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실관계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나면 비로소 법적인 쟁점이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귀찮더라도 팩트를 조금 더 파보세요.


법 규정도 없고, 판례가 없다고 멈추지 마세요. 유권해석이나 논문이라도 찾아야 합니다. 변호사님의 생각을 뒷받침할 근거가 필요합니다. 몰라서 물어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그것이 변호사의 일입니다. 타 기관에 유사사례도 물어보고, 행정부 사무관에게도 물어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면 유능함을 인정받게 됩니다.


사내변호사라면 외부 고문변호사, 정부법무공단의 자문 의견을 가급적 받아보세요. 매우 번거로운 일이지만, 변호사마다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꽤 많이 다릅니다. 언제나 내 의견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객은 날카로운 의견보다 탄탄한 의견을 더 좋아합니다.


때로는 법적인 결론이 불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이성적인 이슈가 아니라 감정적인 분쟁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본격적인 검토를 하기 전에 사안의 본질을 파악하세요. 20장짜리 고소장이 아니라 2장짜리 화풀이용 내용증명이면 충분할 때가 있습니다.


3. 변호사가 아닌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자주 이야기를 나누세요. 


변호사를 처음 만나본다고 말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굉장히 많습니다. 그들에게 변호사의 첫인상을 심어준다고 생각하여야 합니다. 언제나 변호사로서의 품위를 지켜주세요. 무례해서는 안됩니다.


돈과 무관하고, 업무과 무관하더라도 일단 들어보세요. 정말 급하지 않다면 들어보고 변호사님의 생각을 말해주세요. 들어보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법적인 문제가 아닌 경우도 꽤 있습니다.


로스쿨에 합격했을 때의 그 마음을 기억하나요? 법학전문대학원의 취지를 잊지 말고, 가끔씩은 후배에게 도움이 되는 선배가 되어 주세요. 저보다 잘하실 겁니다.





(브런치북으로 편집하니, 작성한 글이 30개만 수록이 되네요. 마지막 에필로그를 여기에 옮겼습니다.) 


에필로그를 작성하기 전에 이번 책을 준비하면서 끄적였던 종이들을 다시 찬찬히 봤습니다.

깜빡한 소재가 있었는지, 애초의 기획 의도대로 잘 썼는지 살펴보니, 얼추 다 들어간 것 같습니다.


제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면서, 저에게는 두 가지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우선, 저는 아주 사소한 것을 굉장히 있어 보이게 잘 포장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변호사라면 누구나 다 겪는 일, 누구나 고민하는 일, 다 그렇게 살아가는 삶을 뭔가 있어 보이게 잘 포장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제가 겪은 순간들은 그렇지 않았는데, 잘 포장한 것 같아서 조금 뿌듯하기도 합니다. 매우 평범한 변호사의 일상을 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변호사가 되실 분들의 미래는 저보다 훨씬 더 밝고 있어 보일 것입니다. 저의 시행착오를 잘 참고하시어 더 멋진 변호사 라이프를 살아가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로스쿨과 변호사와 직접 관련이 없는 분들께도 조금 더 진솔한 변호사의 일상을 보여드릴 수 있어 참 좋았고 감사했습니다.


또한, 저는 어려운 것을 쉽게 잘 설명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특히 실무적으로 매우 중요한데, 학문적으로 잘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사항도 잘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자소서를 쓸 때, 면접을 볼 때, 첫 출근을 했을 때, 이직을 할 때 등등 아무도 알려주지 않지만, 꼭 알아야 하는 것들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로스쿨 후배님들 앞에서 조금 더 생생한 저의 경험을 전하고 싶습니다.

갓 변호사가 된 후배님들께는 직접 뵙고 도움이 되는 '잔소리'를 할 기회가 오길 희망해 봅니다.


한편, 이 책을 마무리하면서 아쉬운 점도 제법 많이 있었습니다.


성공한 변호사의 필요조건은 무엇인가?

변호사의 전문성을 어떻게 갖추어지는가?

변호사에게 특정 산업과 마주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변호사에게 '정치'란 어떤 의미인가?


제가 쓰고 싶었지만, 도저히 쓸 수 없었던 주제입니다. 감히 논하기에는 10년의 경력이 짧게 느껴졌습니다.

나중에 다시금 '로스쿨 1기의 변호사 20년'을 쓰게 된다면, 깊이 고민하여 잘 써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국민의 다양한 기대와 요청에 부응하는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풍부한 교양, 인간 및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유ㆍ평등ㆍ정의를 지향하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건전한 직업윤리관과 복잡다기한 법적 분쟁을 전문적ㆍ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식 및 능력을 갖춘 법조인의 양성에 있다.


로스쿨의 교육이념입니다(법학전문대학원법 제2조). 국민의 다양한 기대와 요청에 부응하는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풍부한 교양과 인간 및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추라고 합니다. 그것이 로스쿨 도입의 목적입니다. 환자 없이는 의사가 있을 수 없듯이, 고객 없이는 변호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고객을 위한 변호사, 그런 변호사를 양성하는 로스쿨이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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