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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법은 조변 Oct 16. 2023

판례를 줄줄 읽어주는 강의는 스토리텔링이 아니다.

고객이 원하는 법률교육은 변호사가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

맛있지만 열량은 낮고 자극적이지도 않으면서 질리지 않고 매일 먹어도 맛있는 음식을 알고 있는가? 다이어트를 하면서도 매일 맛있게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그런 음식이 있기는 한가?


한편, 이해가 쏙쏙 되면서 재미있고 졸릴 틈조차 없어 매일 찾아서 듣고 싶은 법률강의를 알고 있는가? 법률 규정부터 최신 판례 동향까지 이해가 바로바로 되는 그런 강의가 있기는 한가?


변호사에게 또 다른 숙명이 있다면, 그것은 '법률강의'이다. 수험생활을 제외하고 법률강의를 찾아서 들은 적이 있는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법률강의는 강사에게도 청중(이하 "그분들")에게도 참 부담스러운 시간이다. 그리고 그분들은 이미 알고 있다. 재미가 없어도 너무 없을 것이라는 것을. 자신의 눈꺼풀이 곧 무거워질 것이라는 것을.



나의 법제처 첫 근무부서는 법제교육과였다. 법제교육 교수요원으로서 3년 간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을 대상으로 약 400회 법률강의를 하였다. 헌법, 행정기본법, 행정절차법, 행정대집행법, 행정소송법, 국가배상법, 청탁금지법, 국가계약법, 지방계약법, 민법, 의료법, 국민건강보험법, 연명의료결정법, 정보공개법, 개인정보보호법, 법령체계와 입법절차, 법령해석방법론 등 꽤 많은 과목을 담당했었다(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나의 MBTI 결과는 항상 ISTJ이다. 내향적이고, 무대에 올라가서 무언가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3년 간 400회의 강의를 하고 나니, 법률강의만큼은 익숙해진 탓인지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강의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90분 간 독백의 연극을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그분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어떻게 대단원의 막을 내려야 할지 매번 고민했다. 덕분인지 2020년 말에 법제처장님이 우수공무원 표창도 주셨다. 그렇게 쌓인 노하우를 조금 공유하고자 한다.


1. 그분들이 원하는 '사례' 강의는 판결요지 소개가 아니다.


법제교육과에서는 강의 후에 그분들로부터 설문조사를 받는다. 강의만족도와 함께 여러 의견을 받는데, 항상 가장 많은 의견이 사례 중심으로 쉽게 설명해 달라는 것이다. 변호사들은 '사례 = 판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판례를 신선하게 날 것 그대로 소개하는 것은 '사례' 중심의 강의가 아니다.


그분들이 원하는 것은 그럴싸한 배경이 있고, 인물이 등장하여 갈등이 발생하며, 분쟁이 초래된 후 선과 악의 판단에 따른 합당한 정의구현이다. 즉 서사가 있는 스토리텔링을 기대하는 것이다. 법률강의를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운 지점이다. 배경과 사실관계를 모두 파악하기 위해서는 1심, 2심 판결문을 모두 읽어봐야 하고, 날짜순으로 찬찬히 사실관계를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우 귀찮다. 그래도 그들은 그것을 기대한다.



위 이미지와 같이 배경, 사실관계, 소송경과를 함께 살펴보면서 눈높이를 맞춘 후, 1심부터 3심(또는 환송심)까지의 판결문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분들께서 편안하게 강의를 따라와 주신다. '스토리텔링'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3심 대법원 판결문만 보여주면서 '판시사항'이나 '판결요지'만 소개하는 것은 그분들에게 스토리텔링이 아니다. 강사는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모든 것을 실감 나게 말해야 스토리텔링이 되는 것이다.

 

2. 그분들은 참고 동영상과 업무 매뉴얼의 등장을 좋아하신다.  



대한민국헌법 제12조 제2항은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관련 내용을 상세히 설명할 수 있지만, 영화 1987 예고편을 보여줄 수도 있다. 정말로 조사관이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겠는가? 고문받지 않을 권리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보다 더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같이 법률강의를 반드시 강사 혼자 외롭게 진행할 필요는 없다. 강의 중간에 영화 예고편을 보거나, 관련 뉴스 영상을 보면서 그분들이 집중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동영상만큼 그분들이 주목하는 것이 있다. 업무 매뉴얼이다. 누구든 1~2시간의 강의를 듣는다고 그 법을 다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그분들께 업무 매뉴얼의 존재를 알려드리면, 마음 편히 미소를 지으면서 강의를 들어주신다.



강사가 강의자료를 직접 만드는 것바람직하지만, 강의자료를 모두 창의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저작권 문제만 없다면, 잘 만들어진 동영상과 업무 매뉴얼도 법률강의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3. 비대면 강의라면, 더 자주 물어보고, 더 자주 쉬어야 한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비대면 방식의 강의나 회의를 경험해 봤을 것이다. 비대면 방식에서는 모두가 외롭다. 강사도 외롭고 그분들도 외롭다. 그래서 강사는 채팅창을 활용하여 그분들께 더 자주 물어보고, 잘 듣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비대면 강의의 경우, 강사는 강의환경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비대면 회의 플랫폼이 '줌(zoom)'인지, '구루미(gooroomee)'인지 아니면 다른 플랫폼인지를 사전에 확인하고, 각 플랫폼에서 강의화면에 필기하는 방법, 채팅창을 사용하는 방법, 동영상이나 이미지를 같이 보는 방법 등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또한, 비대면 강의는 대면 강의에 비해 자주 쉬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분들비대면 방식이라하여 더 편하지는 않다고 한다. 오히려 강의에 집중하는 것이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조금 더 자주 쉴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30분마다 5~10분의 휴식 시간을 갖는 것을 추천한다.





400회가 넘는 강의를 하면서, 가장 부러웠던 사람은 교수가 아니라 가수였다. 법률강의를 아무리 재미있게, 유익하게 진행한다고 해도 그 강의에서 감동을 주기는 어렵다. 그런데 가수는 라이브로 첫 소절만 노래해도 청중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렇게 5분 만에 청중에게 감동을 주는 가수가 무척이나 부러웠다. 더 쉽고, 더 직관적인 강의를 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감동까지는 모르더라도 그 흉내는 낼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해 본다.  




1. 그분들이 원하는 '사례' 강의는 판결요지 소개가 아니다. 배경과 서사가 있는 스토리텔링을 원하신다.

2. 그분들은 참고 동영상과 업무 매뉴얼의 등장을 좋아하신다. 강의가 반드시 독창적일 필요는 없다.

3. 비대면 강의라면, 더 자주 물어보고, 더 자주 쉬어야 한다. 강의환경도 미리 잘 챙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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