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화분
5학년이 된 화분은 친구가 생겼다. 이름은 이지영이었다.
학교에서 끝난 후 집에 가는 길이 같았다. 이지영의 집은 화분의 집과 학교 거리의 딱 중간쯤이긴 했다. 그래도 지영과 친해진 후 화분은 하교길이 즐거워졌다.
화분은 이제껏 친구라 부를 이가 딱히 없었다. 1학년을 지나 2학년때 전학을 갔다 3학년때 전학을 왔는데 그때부터 생활이 불안정해졌다.
가장 친한 사람은 다른 반인데도 여전히 저를 편하게 놀리러 오는 현목호라고 할 정도였다.
4학년의 어느 날, 새로 산 지우개가 없어졌다고 여자애들이 난리가 났다. 분명 예쁜 지우개였을 텐데, 화분은 딱히 궁금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날 등교했을 때 남자 아이들은 화분의 책상 서랍을 뒤졌고 그 안에서 새 지우개를 꺼냈다.
“뭐야아, 송화분이 도둑질을 했네.”
남자 아이들은 입가에 웃음을 달고 있었다. 그 뒤로 평소에 고운 시선을 주지 않던 여자 아이들과 지우개 주인이 섰다.
“거지같은 게 도둑질까지 해.”
“내가… 훔친 게 아니야.”
시선이 무서워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누구 하나 지우개가 없어진 건에 대하여 담임 선생님께 이르지 않았다. 화분은 오전 내내 울었는데도 담임 선생님 역시 화분에게 이유를 묻지도 않았다. 여자 아이들의 비난 어린 시선은 따갑기만 했고 지나가면서 작게 ‘네가 훔쳤잖아.’ 욕지거리를 더했다.
머리는 늘 지저분하고 시험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화분이 됐지만 한번도 다른 사람의 것을 탐내려고 하지 않았다. 혼자여도 고고한 모습이 다른 이들에게 미움을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절절하게 깨달아버린 순간이었다. 그저 여자 아이들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걸 알았다. 예전에는 늘 깔끔한 새옷을 입고 다녔지만 지금은 땟물이 날 만큼 더러워져서인 걸까. 서글펐다.
그리고 그 여름방학, 화분은 이혼 가정의 아이가 되었다. 하지만 엄마 김영희로 인해 다시 회복을 시작했다. 옷이 깔끔해졌고,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5학년이 되어서는 성적만큼은 다시 안정적 수준이 되어 있었다. 거기에 화분은 글씨를 잘 쓰고, 글도 잘 썼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글씨를 중요하게 보시는 분이어서 화분을 여러번 칭찬했다.
더 이상 화분의 책상에 모르는 물건을 집어넣는 일은 사라졌다. 무시하고 경멸하는 시선도 잠잠해졌다. 그래도 여전히 같이 놀아주는 친구는 없었다. 오히려 친구가 필요하다는걸 몰랐다는 게 맞았다.
이지영은 얼굴이 눈처럼 하얀 아이였다. 화려한 차림은 아니어도 늘 단정하고 깨끗한 차림이었고, 딱 봐도 헌옷이 아니었다. 그런 아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얌전한 성격이었는데도 그랬다. 이제 하교길이 되면 둘은 약속한 것처럼 서로를 기다렸다.
돌아가는 길에 친구가 된 둘은 어느새 점심을 함께하기 시작했다. 지영의 도시락에는 종종 계란 말이와 부친 소시지도 올라왔다. 그에 비해 화분의 도시락은 늘 김치볶음이었다. 화분은 자신의 김치볶음을 퍽 좋아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반찬은 필요없었다. 하지만 부친 소시지만큼은 먹어도 질리지 않게 맛있었다.
“너네 김치 볶음 맛있어.”
“…….”
“너도 내 반찬 많이 먹어.”
지영은 조그맣고 하얀 솜털 같았다. 부드럽고 따뜻했다. 이제껏 화분에게 이만큼 다정한 말을 건네는 친구는 없었다. 여전히 종종 현목호가 놀리러 오기는 했지만, 현목호가 복도 끝의 교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놀려도 뛰어가 잡으려 들지 않았다. 그랬더니 현목호는 놀리는 것보다 더 짖궂게 굴었다. 이제 혼자 오는 게 아니라 남자 아이들을 동원해서 놀렸다. 화분이 교실 밖에 나서면 복도엔 화분을 놀리려고 기다리는 남자 아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괜찮아. 화분아. 넌 과학도 잘하고 착하잖아.”
착한 건 너야. 화분은 늘 지영에게 말하고 싶었다. 너라는 친구가 없어지면 어쩌지. 불안하기도 했다. 지영이는 내가 착해서 친구를 해주는 걸까? 그렇다면 더욱 착해질 수 있다고 화분은 생각했다.
늘 지영에게 잘보이고 싶었다. 뭐든 편들어주고, 그래서 절대 이지영이라는 친구를 잃어버리는 일은 만들지 않고 싶었다.
*
그날은 지영이 실과의 납땜을 도와달라고 집에 초대한 날이었다. 정확히는 집에 가는 도중에 지영의 집에 들른 정도긴 했다. 지영의 동네는 10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동네였는데 집이 다 양옥이었다. 하얀 벽돌도 많았고, 반짝거리고 미끌거리는 돌이 베란다에도 깔렸다. 방도 4개나 됐다. 지영은 피아노를 잘 쳤는데 방에 피아노가 있었다. 더구나 피아노를 만져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가끔은 피아노가 싫어.”
“나는 네가 너무 멋있는데….”
“진짜야, 너무 힘들어. 이제 체르니 40번에 들어가자고 하시는데 그만 다니고 싶어.”
그러면서도 지영은 몇 번인가 근사한 클래식 곡을 연주해주곤 했다. 새까맣게 윤기가 흐르는 피아노에 앉은 지영은 곁으로 난 창에서 들어오는 햇빛으로 눈부셨다. 한 번도 잘살아 본적이 없는 것처럼 화분은 지영이 엄청나게 부잣집 딸 같았다.
배가 아픈 건, 지영의 집에서 돌아가려 할 때쯤이었다.
화분은 어른없이 다른 집에서 배변을 보는 경험이 처음이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사실 화분의 집 변소는 공용으로 주택에서 200미터 가량 떨어져 있었다. 더구나 주변은 두엄으로 냄새도 심했고, 한창 구더기가 기어나오는 때라 화장실 가는 걸 참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화장실에 가면 쉽게 변을 보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니 지영의 실내에 있는 화장실을 가자니 무언가 석연찮은 게 사실이었다.
결국, 마당 뒤꼍에 있는 화장실로 갔다.
역시나 변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바깥에서 갑자기 ‘뱀이다.’ 라는 고함이 들렸다. 주택이긴 해도 그 밖은 밭이 있었기 때문에 뱀이 나오지 말란 법은 없었다.
‘뱀 잡아라.’ 소리가 자꾸 화장실 옆에서 들려오자, 화분은 뱀이 화장실로 들어올까 봐 덜컥 겁이 났다. 나오던 변을 끊고라도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똥이 항문에 끼인 채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화분은 뱀이 무서웠다. 할머니 김춘덕의 마을에서는 화란도 화철도 동네 아이들과 뱀을 잡아 나무 꼬챙이에 걸고 빙빙 돌리며 놀고 다녔다. 하지만 정작 그 애들은 뱀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거라고 화분은 생각했다.
“뱀이 뒤꼍으로 사라졌어.”
소리가 나자 화분은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화장실 문 아래로 틈이 있었는데 뱀이 들어오려면 거기로도 충분했다. 더구나 위쪽에도 냄새를 빼는 창이 있었고 열린 상태였다. 뱀은 기어오르니 어디에서 어떻게 들어올 지 알 수 없었다. 온 몸에 소름이 돋고 식은 땀이 흘렀다.
급기야 항문에 붙은 똥을 떼내기로 했다. 구겨진 화장실 신문지로 항문을 닦아봤지만 더럽고 냄새나는 것만 묻어날 뿐 덩어리는 떨어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삼십분이 넘게 흘렀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한시간일지도 몰랐다. 쭈그리고 앉은 다리는 아팠지만 일어나 서기도 할 수 없었다.
“화분아 괜찮아?”
지영의 소리가 밖에서 났다.
“나 똥이 붙어서 안 떨어져.”
울음 섞인 화분의 소리에 지영은 안에 들어가 그녀의 할머니를 모시고 나왔다. 화분은 너무 창피해서 입술을 깨물고 울음을 참았다. 화분을 쭈그린 채 밖으로 데리고 나온 할머니는 화분의 뒤를 보겠다고 하셨다.
“아이고 이거 안 떨어진다.”
그러더니 안에 들어가 고무장갑을 낀 채로 나왔다. 그때부터 고무장갑으로 화분의 항문을 후비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했음에도 변은 여전히 항문에 꽉 끼인 채였다.
“아무래도 집에서 누가 와야 할 거 같으다.”
화분은 앞이 깜깜해졌다. 할머니가 알면 분명히 가만 두지 않으실 거다. 남의 집에서 무슨 짓을 한거냐고 할 게 분명했다. 그게 두려워진 화분은 더 큰 소리로 울었다.
지영의 할머니는 겨우 화분에게서 전화번호를 듣고 집으로 전화를 걸러 갔다. 김영희가 도착한 건 10분 후였다.
*
“흑흑 엄마….”
김영희가 자신을 얼마나 창피해할까? 집에서도 아니고 여기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화분은 지금의 자신이 수치스러워서 사라지고만 싶었다.
“뱀이 나온대서… 무서워서….”
“괜찮아. 집으로 가자. 다행하게 친척분이 와 계셔서 차로 금방 올 수 있었어.”
화분은 바지를 어정쩡하게 걸친 채 김영희를 따라 지영의 집을 나섰다. 지영에게 미안하다고 전하는 것도 잊을 만큼 분주했다.
지영의 집에서 나왔을 때는 몇 가구 되지 않는 주택의 주민들이 죄다 나와서 구경을 했다. 어느새 모인 것인지, 어떻게 모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아무리 계모라도 라면이라도 제대로 먹여서 기름기가 돌게 하면 똥이 나올 텐데. 라면도 안 먹이나. 애가 어떻게 저렇게 똥을 못싸.”
“저이가 계모야?”
“저기 김창수 댁 아랫채에 세들어 사는 그 집이잖아. 왜에 그 버스 회사 막내 아들…. 바람 나서 이혼하고 계모가 들어앉았다더니 애가 저렇게 되버리네.”
“아이고, 애들이 고기를 좀 먹어야 기름이 돌아 똥이 나올 건데….”
“저기 애들 라면이라도 좀 먹이시오. 그거 어디 애가 불쌍해서 살겠나.”
화분은 입술을 깨물었다. 우리 엄마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요. 우리 엄마는 우리에게 참 잘해주는데요. 라고 소리라도 치고 싶었지만 열려야 할 입술을 굳게 닫힌 채였다. 자신이 싫어서 자꾸만 눈물이 났다.
“엄마 미안해.”
“그러니까 변소가 멀고 무서워도 배 아프면 바로바로 가야 해.”
화분은 울면서 고개만 끄덕였다. 좋은 반찬을 먹고 사는 건 아니었지만, 밥을 굶기거나 때를 놓친 적 없이 늘 잘 챙겨주는 엄마였다. 라면도 종종 먹었는데… 왜 라면을 못 먹어서 똥이 안 나온다고 하는 걸까. 사람들은 그게 왜 엄마 탓인 것처럼 말하는 걸까. 화분은 쥐구멍에 숨고만 싶었다.
“저 사람들 말 믿으면 안 돼.”
“…….”
“라면 많이 먹으면 똥 나올 거라는 말… 그거 아니야.”
화분은 흑흑 거리면서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앞으로는 라면 적게 먹게 할 거야. 넌 제 때 변소에 가지 않아서 이렇게 된 거야. 더구나 라면 같은 거 많이 먹으면 더 딱딱해져.”
엄마 김영희의 말은 정말 혼을 내는 것처럼 딱딱했다.
애 똥꼬를 고무장갑으로 후벼놨으니 힘들지 안 힘들어.
김영희의 혼잣물이 바람결에 들렸다.
화분은 절대,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가 다른 사람에게 욕 먹을 짓은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열 두살 화분의 안에 새로운 무언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