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7의 확률

(4)

by 조은서리

화분이 담배를 끊은지 6개월 후였다. 정기 검사에서 암이 발견되었다. 초음파를 보던 기사는 곤란한 얼굴로 오후 일정에 긴급 조직검사를 넣겠다고 했다. 이미 그 순간, 화분은 다시 모든 게 시작될 것을 알았다.


검사 결과를 보기 하루 전,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결과가 좋지 못하다. 전에 봐주시던 교수님으로 할 것인지, 다른 교수에게 진료만 받고 서류를 떼서 서울로 갈 것인지를 묻는 전화였다. 병원의 이런 태도는 처음이었던지라 화분은 내심 덜컹하는 걸 감추지 못했다.


“상황이 많이 안 좋은가요?”


한참 말이 없던 간호사는 그렇지는 않아보인다고 답했다. 하지만 일단 정확한 건 교수님께 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원래 교수님으로 해주세요.”


통화를 마친 후 잠깐 한숨이 나왔다. 서울로 항암을 다닐 자신이 없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암환자였더라면, 처음부터 그 제의를 받았더라면 서울로 갔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항암이 얼마나 사람을 고되게 하는지 알아버린 상황에서 3주간격으로 항암을 하러 서울에 가기란 끔찍했다. 운전할 자신도 없을 뿐더러, 연로한 아버지께 운전을 부탁드리는 것도 말이 안됐다. 이미 송준태는 김영희의 방광암으로 여러번 서울을 다니면서 피로를 호소하곤 했다.


세번째의 암이란 그렇게 모든 순리를 흐트리는 거였다. 맨 처음 암이 발견됐을 당시 3기일 경우 3대 7이었고, 그 이후 재발확률도 3대 7이었다. 그리고 그 확률 안에서 이겨내왔다. 하지만 이번엔 뭔가. 그럴 수 있겠거니 하면서도 어딘지 당혹스럽고 답답함이 스멀거리며 올라오는 건 어쩌지 못했다.


“여기로 올래? 나 또 암인 거 같아.”


그 소리에 후배 임미후가 찾아온 건 불과 몇 십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차에 오르자마자 임미후는 욕설을 시작했다.


“사람들 중에 암에 걸릴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아무리 흔하다지만 왜 하필 그게 너한테 또 와? 이게 뭐야 벌써 3번째잖아. 씨발 병신 같아. 대체 왜 자꾸 암이냐고!”


거칠게 운전하던 임미후가 기어이 소리를 질렀다.


“술 마실까? 일단 엄마한테 말해야겠지? 그냥 내일 말할까?”


화분은 임미후가 화를 내든 말든 자신안에서 정리되지 않은 소리들을 자꾸만 꺼냈다. 역시 가장 걸리는 건 김영희였다.


“나는 마실 거야. 언니 너 때문에 진짜 못살겠다.”

“소리 좀 지르지 마. 지른다고 암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넌 왜 괜찮은 척 하는 건데?”

“그런다고 울어? 눈물도 안 나와.”


정말 그랬다. 소리라도 치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암이 사라질 것도 아니었다. 차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뭔가 말을 시작해야 하는데 화분도 딱히 생각나는 게 많지는 않았다.


“이번에 양쪽 다 잘라내버릴까 봐.”

“뭐?”

“아마 가능할거야. 난 이미 양쪽다 암이 있었으니까.”

“그럼 암이 더는 생기지 않아?”

“모르긴해도 좀 덜하지 않을까?”

“가슴 따위가 뭐가 중요해. 생명이 걸린 문젠데. 언니는 가슴이 없어지면 아쉬울 것 같아?”

“내가? 설마… 이미 저번부터 그러고 싶었는데 오바라고 할까 봐 참고 지냈던 거 뿐이야.”


임미후는 회사에서는 조용하고 내성적으로 통하지만 알고보면 꽤 당당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성적이면서도 통찰력이 있었다. 시 외곽의 지점으로 전근했을 때 사귄 인연이 계속되는 중이었다.


*


[의사가 뭐래?]


병원을 나서는 순간 전화가 울렸고 김영희는 다짜고짜 따져물었다.


“암이 맞대요.”


정적이 흘렀다. 김영희는 자신의 방광암의 재발이 이어지는 걸 겪은 터라서인지 생각보다 덤덤한 상태같았다. 그녀의 숨소리만 듣고도 화분은 그렇게 안심했다.


“엄마…?”

“그래서 수술은? 크기는? 상태는?”

“양쪽 다 떼내고 싶다고 했어요. 그런데 교수가…”


교수는 운이 좋은 건지 어쩐지, 맨 처음 암이 생겼던 자리에 고스란히 다시 암이 나왔다. 그러니 더는 칼집을 내지 않아도 괜찮아 보인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 화분이 양쪽 전절제를 요구하자 교수는 머리를 갸우뚱했다.


[살릴 수 있는데 왜 죽이겠다는 거지?]

[또 나올지 모르니까 귀찮아서요.]

[양쪽을 다 없앤다고 안 나온다는 보장이 100은 아니야.]

[…….]

[일단 우리는 환자의 의견에 따르겠지만, 수술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결정을 내리면 되니, 여유를 가지고 생각했으면 해.]


수술은 일주일만에 이루어졌다. 세번째 유방암이 흔한 게 아니어서일까. 병원에서는 서둘러 수술날짜를 잡았다. 쇄골 근처에서도 암으로 추정되는 종양이 발견된 만큼 이번엔 전이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양쪽 전절제로 하지 않은 건, 김영희의 불안한 눈동자 때문이었다.


“양쪽 다 잘라내면 나중에 암이 내장으로 먼저 간대. 엄마 친구가 그런 경우를 봤대.”


그럴거면 진즉에 전이가 먼저 됐겠지. 엄마. 화분은 하고 싶은 말을 꿀꺽 삼켰다. 김영희가 다른 때보다 훨씬 불안해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김영희는 아픔에 약했다. 쇼고렌 진단을 받은 후에는 감기만 걸려도 폐렴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너처럼 참고 못살아. 어떻게 아픈 걸 참고 이 지경까지 와.]


어떤 경우에도 늘 이렇게 말했다. 화분은 김영희가 가슴이 없는 저를 보기 괴로워하는 것도 없잖다고 생각했다. 김영희는 선천적으로 살결이 희고 고왔다. 더구나 가슴은 누가봐도 탐스러울 만큼 컸다. 더구나 마른 체질이라 가슴이 커서 부담스러운 정도가 아닌 '미'를 드러내기에 딱 보기 좋은 모양이었다.


“엄마.”


내가 누군가를 만나고 그 상대가 내 가슴을 만질 수 없게 된다는 게 불안한 거지?


화분은 다시 말을 삼켰다. 어쩌면 화분이 결혼을 하지 않고 누구도 만나지 않은 채 살고 있는 삶에 가장 힘든 건 김영희였을지도 몰랐다.


[나 때문이니?]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몇 번이고 김영희가 물은 말이었다.


[엄마 때문이 아니라고는 못하지. 결혼으로 맺어지는 여러 관계들이 서로의 욕심에 의해 일그러지고 험담하는 걸 누구보다 내가 봤잖아. 엄마를 통해서.]

[다 그런 사람만 있는 건 아냐.]

[다 그렇지는 않다고 해도 높은 확률로 다 그런 관계를 감안하고 받아들이고 살아. 난 그런 삶이 싫을 뿐이야. 누가 남자가 싫대.]


혹시나 싶어서 화분은 남자 얘기도 덧붙였다. 남자를 만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간혹 성 정체성을 오해받는 상황에도 이르렀으니까.


[근데 왜 안 만나?]

[엄마! 서른 일곱에 암을 만나서 내가 이제 사십대 중반이야. 이 암이 또 얼마나 갈지는 모르고. 항암하면 성욕같은 건 나와 관련이 없는 일이야. 나 애인 있었던 것도 알잖아.]


아직 삼십대가 되지 않았을 때였다. 겉멋만 든 남자를 만났고 원나잇 상대에서 섹파로 발전했고 어느 날 그를 사랑하게 됐었다. 결혼하자고 여러차례 제안을 받았지만 사랑하는 것과 결혼은 화분에게 별개의 문제였다.


결국 남자와 헤어진 후 한동안 상대를 만나지 않은 건, 그 나이 대에 누군가와 관계를 가진다는 건 곧 결혼으로 이어진다는 피로감 때문이었다.


[그래도 아직 나이가….]


김영희는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말고 혼자 살라면서도 솔로를 택한 화분을 안쓰럽게 여겼다.

결국 화분은 예전에 칼자국이 남은 그곳에만 한정해 수술을 하는 쪽을 택했다.


*


수술 경과는 여전히 좋았다. 다만 무통 주사가 듣지 않게 된 건 새로운 일이었다. 무통주사액이 들어갈수록 구토가 심해졌고 결국 떼어냈다. 무통이 없으면 견디지 못할 만큼 수술 상처가 아픈 것도 아니었다.


“이번엔 암이 달라.”


교수의 표정이 어두웠다. 삼중음성이 가장 안 좋은데 어떻게 다른다는 거지?


“삼중양성이야.”


교수는 여러차례의 암 덕분에 기본 지식이 생긴 화분에게 거침없이 전문적인 단어를 써가면서 말했다. 삼중양성이란 성 호르몬을 나타내는 에스트로겐 수용체, 프로게스트론 수용체, her2인자가 모두 플러스(+)를 나타내는 경우였다. 즉 예전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her2인자가 나타났고 거기에 호르몬에 수용성이라는 말이었다. 일반적으로 호르몬성 암은 순한암으로도 분류되는데 대신 재발이 잦았다. 그에 비해 her2관련 암은 공격적이고 전이가 빠르지만 약에 대한 반응성이 가장 좋다고 알려져있었다.


“호르몬이 불안정해지는 나이는 됐고, 이제까지 숨어있던 her2가 발현된 거 뿐이야. 다만 이제까지 중 가장 공격적이고 성질이 더러운 녀석으로 나타난거고.”

“치료 어떻게 해요?”


담담했다. 유방암 쪽으로 반 박사라고 할만큼 이것저것 알아본 게 많았던 송화분은 당황스럽지도 않았다. 기껏해야 항암과 표적치료겠지. 아니나다를까 교수도 같은 의견이었다.


“이미 첫 수술에서 AC항암은 했어서 의미가 없을 것 같아.”


근육계열에 작용하는 도세탁셀이라는 약을 사용한 항암과 표적치료가 이루어진다고 했다. 방사선은 예방을 위한 치료인데 이미 두쪽 다 해서 더이상 할 수가 없다고도 했다. 전이로 예상했던 쇄골쪽 종양은 양성이었던 걸로 결론이 났다. 덕분에 탁셀치료도 4회만 해도 되겠다고 했다.


다만 교수가 전하지 않았던 말은 [이정도로 강하고 공격적인 암은 드물다]는 거였다. 암의 성질은 암환자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암의 기수를 놓고 대부분 생존확률을 따지니까. 그렇게 볼때 화분은 여전히 1기암이었다. 다만 암의 성질은 항암 여부를 결정하는데 중요할 뿐이지만 수치적으로만 봤을 때 드문 케이스라고도 수술간호사가 말했다.


화분 역시 암의 성질이 못된 것은 김영희나 송준태에게 전하지 않았다. 이제 구토와는 다른 종류의 항암이 시작될 터였고, 전보다는 수월하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아직은 그렇게 길고 험한 항암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던 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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