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 엄마가 우리 집으로 오래.”
“엄마?”
“응 너네 엄마가 우리 엄마랑 친구래.”
같은 학년이었지만 얼굴도 잘 모르는 아이였다. 김영희가 친구를 사귀었던가. 이곳은 잘 모르는 사람밖에 없다고 했었는데…. 그렇다면…. 정순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네 동생 화분이도 우리 집으로 올 거랬어.”
화분은 심장이 쿵 떨어져내리는 기분이었다. 보고 싶다는 그리움이 솟구쳤다. 그러나 머리속 한편에 김영희의 얼굴도 떠올랐다.
수업시간에도 선생님의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쿵쿵쿵쿵, 머릿속을 울리는 건 오늘 거짓말을 하게 될 거라는 점이었다.
[약속하나 해 줄래? 나는 거짓말하는 사람이 너무 싫어.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만 아니면 돼.]
김영희의 말이 스쳤다. 거짓말하는 사람하곤 잘 지내지 못하겠다고 했다. 화분은 정말이지 새엄마와 잘 지내고 싶었다.
5학년이 되기 전, 화분의 집은 할머니 김춘덕과 살림을 합쳤다. 학교에서 30분거리였지만 이제는 온 가족이 함께 살게 됐다. 자주 아빠를 볼 수 있었고, 새엄마 김영희도 함께했다. 화분은 늘 마음에 거리가 있는 김춘덕과 지내는 것보다 무척이나 편안해졌다. 방은 두개였는데, 김영희는 화란과 화웅을 데리고 잤다. 아빠 송준태가 오는 날이면 화란도 김춘덕이 지내는 큰방으로 오긴 했지만, 김영희는 화란을 곁에 끼고 지낼 때가 많았다. 화란은 이제 아침마다 김영희가 묶어주는 머리를 하고 학교에 다니게 됐다. 옷차림은 전보다 수수했지만, 깔끔한 모습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학교 가는 걸 전보다는 싫어하지 않게 되었다.
5학년이 되어 본 첫 시험에서 평균 90점 이상을 맞았다. 4학년 때에 비해 월등하게 높아진 점수였다.
[잘했네. 앞으로는 조금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넌 머리가 좋으니 조금만 노력하면 돼.]
누구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한 직접적인 칭찬이었다. 머리가 좋다는 소리는 어른들끼리 나누는 대화로 어리짐작해서 스스로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4학년 때 사회가 어려워지고, 수학에서 벽을 느낀 이후 자존감이 한참이나 떨어졌을 때 그 늪같은 어두운 구멍에서 화분을 꺼낸 건 김영희였다. 김영희는 꽤 오랫동안 화분의 공부를 살폈는데, 화분은 그러는 사이 점차 예전의 성적을 되찾았다.
성적이 좋게 나오니, 당장 담임 선생님의 태도가 달라졌다. 더구나 5학년 선생님은 글씨를 많이 보곤 했는데 화분은 송준태를 닮아 글씨체가 좋은 편이었다. 그러니 점점 담임의 선호도는 화분도 느낄 만큼 뚜렷하게 올라갔다. 학원같은 곳에 가보지 않은 화분으로선 집에 다정한 선생님이 하나 더 생겼고, 전에는 받아보지 못한 진정어린 칭찬도 받았고, 새엄마는 저주가 아니라 너무나 큰 행운이었다.
때때로 정순녀가 보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정순녀를 떠올릴 때마다 죄책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새엄마는 모두 신데렐라와 콩쥐팥쥐 같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현실에서는 달랐다. 이렇게 다정한 엄마가 있을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지경이었다. 동화책이 잘못되었다.
‘새엄마’라는 단어에서 ‘엄마’라는 단어로 변환된 게 이미 오래됐다. 아마 이 집으로 이사오면서 였을 것이다.
[이제는 엄마라고 불러. 남들 보는 눈도 있는데 새엄마는 무슨….]
살림을 합치자마자 김춘덕이 꺼낸 말이었다. 엄마 라는 단어를 마음 속으로 떠올렸을 때, 정순녀가 생각났었다.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고 화분은 나름의 체념을 했다. 아빠 송준태와 사는 이상, 여기에 적응해야 한다. 적응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본능같은 체념이었다.
하지만 이젠 정순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죄를 짓는 기분이 드는데, 이젠 그녀를 만나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보러 가서는 안 된다. 하지만 화란은 그곳에 있을 테고, 화란이 늦게 오거나 하면 어쩌지. 할머니에게 혼나면… 엄마가 우리에게 실망해버리면 어쩌지…. 화란을 데리러 가야 한다. 아직 뭘 모르는 화란은 분명 거기서 오래 있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제 시간에 화란을 데리고 집으로 가야 한다. 그렇게 되면 화분은 정순녀를 만나게 된다. 화분은 정말이지 갈팡질팡, 도둑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
‘엄마’
라고 부르기도 전에 눈물이 났다. 화분을 끌어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화분도 너무 많이 울었다. 울지 않으려고 했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 되지 않는 일이었다. 만지는 손길엔 전과 다르게 애정이 묻어났다. 손을 꼭 잡고 계속 쓸어내리는 손길에 또 눈물이 났다.
“엄마랑 살래?”
그 말에 진즉 눈물을 그치고 한쪽에서 놀던 화란은 눈을 반짝였다. 화분의 눈동자도 하염없이 흔들렸다. 보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닌데, 같이 있고 싶지 않은 게 아닌데 바로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나중에 엄마가 돈 많이 벌면… 그때는 데리러 갈게.”
이상했다. 당장이 아니었다. 지금 송준태와 사는 삶도 예전만큼은 커녕 작년 여름 정순녀와 살던 슬래브 집 한칸에서 두칸으로 늘어난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정순녀는 그때만도 못 살 거라서 이렇게 말하는 걸까?
하지만 화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책에서 데리러 오겠다는 사람은 데리러 온 적이 없다. 그 이야기를 믿는 화분이었다. 이미 동화책 속의 계모는 없다는 걸 알았음에도.
“계모가 해주는 게 그렇지. 잘해주겠어?”
어쩌다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아마 정순녀와 친구가 대화를 하던 중이었을 터다.
“우리 애들 구박하면 가만 두지 않을 거야.”
화분의 마음속에 슬그머니 죄책감이 또 찾아드는 순간이었다. 깜박하고 잊고 있던 김영희가 생각났다. 엄마 얼굴을 어떻게 보나. 할머니가 알면 가만있지 않을 건데…. 어린 화란이 이 일을 다 말해버리면 어쩌지. 갑자기 두려움이 검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행여 그년이 찾아와서 만나기라도 해 봐. 당장 짐싸서 쫓아내버릴 줄 알아.]
화분은 김춘덕이 무서웠다. 김춘덕은 화분이 하는 일을 늘 탐탁치 않아했다.
[젓가락질도 제대로 못 해? 공부만 잘하면 다여? 사람으로 났으면 기본으로 잘하는 것은 따로 있어야 할 거 아녀?]
[은정이는 밥도 해먹고 설거지도 한다고 하더만. 넌 밥도 제대로 못먹어서 흘리고 먹냐. 나이가 몇 인데 아직도 이 지랄이여.]
[넌 어째 벗겨서 씻겨놔도 살색이 이 모양이냐. 딱 그년 집안 꼴이지. 새가슴 나온거부터.]
[내 아들 힘들게 벗겨 먹고 살아놓고 지년이 잘한 게 뭐가 있다고. 그년 딸인데 이쁘다는 소리가 나와?]
그러게 왜 젓가락질은 잘 못하는 걸까? 김영희는 곁애서 젓가락 잡는 법을 새로 가르쳐줬지만 십이년간 배워온 버릇이 쉽게 고쳐질리 없었다. 은정이는 밥도 해 먹는다고 하지만, 화분은 밥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화분은 제 몸의 살색은 다 없애버리고 싶기도 했다. 그년, 정순녀의 딸은 자신과 동생 화란이었는데 화분은 늘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화란이 저것은 막내 승희하고 똑 닮아서. 생긴 것부터 하는 짓까지 다 닮았어. 저게 내 새끼지.]
그랬다. 그년의 딸은 화분에게만 적용되는 게 틀림 없었다. 왜 자신은 화란처럼 고모를 닮지 않았나도 원망스러웠다.
“새엄마가 잘 해 줘요.”
“새엄마?”
날카로운 음성이 되돌아오자 화분은 풀이 죽어서 대답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새엄마가 아닌 건 아니니까.
“새엄마라고 부르래?”
정순녀는 그 말이 몹시도 언짢아진 듯 미간을 찌푸렸다. 예전에 이렇게 짜증스러워하면 항상 매를 찾곤 했었다.
“나쁜 새끼. 내가 지 놈 안 만났으면 더 잘 살았을 걸. 지가 내 인생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날 나쁜 년을 만들어. 개새끼. 씨팔. 잊지 마. 화분아. 우리가 이렇게 떨어져 사는 건 모두 아빠와 그년 탓이야. 그 사람들이 나빠서 엄마랑 헤어져야 하는 거야. 잊으면 안 돼.”
귀를 막고 싶었다. 누군가 엄마가 뭐라고 말했냐고 물으면 그런 말 했다고 말해야잖아. 그러니까 더는 그런 소리 하지 마.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 바람들은 소리가 되지 않았다.
“이제 우리 갈게요.”
화분이 가방을 끌어다니며 몸을 일으키자 정순녀가 잡아 앉혔다.
“좀 더 놀다 가. 밤에 엄마가 데려다 줄게.”
그말에 화분은 겁에 질려서 고개를 내저었다.
“아냐, 집에 가야 해요. 늦게 가면 뭐라고 해.”
“친구네 집에서 놀다 왔다고 하면 되지.”
“그건… 거짓말이잖아.”
“엄마를 위해서, 이럴 때는 거짓말 좀 해도 돼.”
그런 사람이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책의 내용과 늘 다른 사람, 어렴풋이 화분은 그걸 깨닫고 있었지만 이 순간 확실하게 알았다.
“할머니한테 혼나.”
엄마를 닮은 내가 더 혼나. 그것도 모르면서…. 화분은 정순녀와 떨어지려니 다시 눈물이 글썽해진 화란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화란은 몇 번인가는 뒤를 돌아다봤다. 하지만 화분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집에 가서 해야 할 말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뭐라고 해야하지. 이미 알고 있는 건 아닐까? 할머니가 내쫓으면 어디로 가야 하나? 엄마가 실망해서 앞으로 구박하면 어떡하지. 할머니가 내쫓으면 다시 진짜 엄마한테 가야 하나. 하지만 그건 싫다. 다시 공부 못하고 도둑 누명을 쓰고 더러워서 무시당하고 싶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길이 어둑어둑했다. 하지만 화분의 마음은 그에 비할 바 없이 어두워 집으로 가는 길은 몇 배나 멀게 느껴지는 초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