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덕
살던 마을에 갔다가 정순녀의 소식을 듣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형님, 오늘 정순녀가 집에 들렀다는데요?”
달갑지는 않았지만 제 집을 온다는데 뭐라할 구실은 없었다.
“정순녀가 학교 근처에서 애들 만날 거라고 떠들었다네요.”
그때부터였다. 가슴에 시멘트를 부은 것처럼 턱 막히고 부아가 끊이지 않게 된 것은.
가뜩이나 혈압약을 먹는 김춘덕은 가쁜 숨을 쌕쌕거리며 집에 들어섰다.
“어머니, 마을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어요? 표정이 안 좋은세요.”
며느리 김영희가 물었다.
“애들 친어미가 학교 근처서 애들을 만나려고 기다린다고 하더라.”
“아, 네.”
김영희는 단박에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그렇다고 별달리 받아치지 않았다.
“넌 가만 있거라. 내 이것들을 단단히 잡아놓을 거니까.”
“네.”
“화분이 그게 생각이 있으면 동생을 데리고 가질 말아야지. 분명히 화분이 그게 지 친애미 보고 싶다고 갔을 겨. 화란이는 아직 어려서 언니가 가자면 졸래졸래 따라갈 게 아녀.”
“…….”
“머리끄댕이라도 잡아서 혼쭐을 내놓을테니 넌 가만히 보기만 하면 된다.”
김춘덕은 자신이 모든 걸 알아서 하겠노라 여러번 엄포를 놓았다. 어차피 계모라 애들 구박한다는 소리가 밖으로 나서 좋을 게 없었다.
화분이 태어나지만 않았어도 모든 게 괜찮았다. 물론 화분 전에 낙태 한 아이가 있다고는 쳐도, 결국 정순녀와 아들 송준태를 엮은 건 화분이었다. 칠삭으로 태어나기까지 한 아이는 체질이 약했다. 그래서인지 정순녀네 집에서는 애지중지하면서 아이를 돌봤다. 온 마을에 오뉴월에 태어난 칠삭을 키우느라 가족들이 땀띠로 고생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들도 아닌 계집애를 그리 애지중지해봤자 뭐 좋을 게 있다고. 정순녀는 그때부터 이미 심드렁했다. 시어미의 말에 순종이라는 걸 몰랐다.
새가슴이 나와서 옷 태도 나지 않고 얼굴에 뿌려진 주근깨며 새까만 살성, 찢어져 가느다란 눈매, 사나운 심성 무엇하나 맘에 드는 게 없었다. 마을에서는 정순녀가 손이 빠르다고 칭찬도 했지만 손이 빠른 건 정순녀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런 정순녀를 송준태같이 영리한 녀석이 왜 만났을까. 그렇게 따지고 보면 결국 이유는 정순녀가 아들을 꼬드겨냈다는 결론에 이른다. 조금 더 잘 살기 위해서 아들은 노력을 했는데, 정순녀는 송준태가 벌어다 준 돈을 제 친정 사촌에게 홀라당 갖다 바쳤다.
그걸 마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건만, 그 가족들은 다들 모른다는 착각을 했다.
겨우 방 세칸 단독 주택을 얻을 찰나에 그들은 다시 방한칸짜리 옮겨야 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두고 김춘덕을 나무랄 사람은 없었야 했다. 다만 김춘덕이 스스로 정순녀 욕을 너무 했던 탓일까. 사람들은 어느새 김춘덕이 까탈을 부려 정순녀가 못되게 된 거라는 험한 소문까지 만들어냈다. 김춘덕은 그게 너무 분하고 억울했다. 딱히 남에게 해를 끼치며 살지 않았는데, 며느리 잘못이 어느새 저가 못된 시어미인 탓이 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딱히 송화분이 싫었던 건 아니다. 물론 태생부터 예쁜 짓이라곤 없었지만, 그렇다고 할미 노릇을 못한 것도 아니었다.
아직 화분이 여덟살 때 일이었다. 그날도 저녁까지 단단하게 먹여서 제 외할머니 집으로 보냈다. 뭘 잘못먹었던 걸까. 화란도 먹고 화철도 먹었는데 왜 혼자만 그 난리가 난 걸까.
아침에 일어나니 온 동네가 다 알만큼 시끌벅적했다. 간밤에 화분이 마을 입구의 이선생 댁에 업혀갔다는 거였다. 이선생은 대대로 침술을 놓는 곳이었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토하고 숨을 못쉴 지경이었다고 했다. 아이는 발에 침을 수없이 맞고서야 진정이 되서 집으로 돌아왔다고도 했다. 원래 칠삭이 모자란 데가 있다. 제 아비를 힘들게 하려고 기어이 일곱달만에 세상에 나와 제 어미와 짝을 이루게 하더니 번번히 발목을 잡는다.
역시나 정순녀의 어미가 씩씩거리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내 금쪽같은 새끼한테 뭘 먹인거여.”
“그 새끼가 그집 새끼만 된대?”
“애가 지난 밤에 명 놓는 줄 알았어.”
“다른 애들도 똑같은 걸 먹었는데 왜 갸만 그런대. 저 혼자 흙이라도 퍼 먹었단 말이여?”
“이 여편네야. 애가 칠삭이라 원체 몸이 약하면 그런 거 저런거 생각해줘야 할 거 아녀. 할미가 되갖고 그런 것도 못챙겨.”
“난 손주새끼들 하도 많아서 그런 거 못챙겨. 그러니 너네가 알아서 챙겨. 그럼 되잖아.”
정순녀의 어미는 더 말을 않고 나가면서 대야를 발로 쾅 찼다. 땡그르르렁 쇳대야가 발가락이라도 뿌러뜨려버리지는. 애먼 대야 구르는 소리가 마당을 울렸다.
*
“왜 이제 와?”
화란은 입술을 빨았다. 김춘덕이 화를 내도 별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화란은 혼을 낸다고 뭔가를 알아들을 만한 나이가 아니었다. 이제 열살이 되긴 했지만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가는 편은 아니었다. 그러니 야단을 쳐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모든 건 화분의 탓이다. 언니라는 게, 장녀라면서. 큰 아이답게 굴었어야 맞지.
김춘덕은 다짜고짜 빗자루를 찾아들었다.
“어디서 오냐고 묻잖아!”
“잘못했어요.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화분이 울먹이며 말했다. 말하려고 했을 리가 없다. 지 어미를 몰래 만나고 와서 말할 속셈이었다니, 그럴 리 없잖은가. 김춘덕은 으스닥닥 하게 거짓말을 하는 화분이 미웠다.
“진…진짜로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움츠리는 게 더 얄미웠다. 매는 협박용이었을 뿐, 진짜로 때리려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윽박지른다고 움츠려드는 꼴이 김춘덕의 화를 불렀다. 김춘덕은 오냐, 기다렸다는 듯이 몇 번인가 빗자루를 내리쳤다.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만날게요. 제가 만나자고 한 게 아니라 기다린다고 해서… 화란이도 가 있다고 해서….”
이번에는 애꿎은 동생탓을 한다. 머리가 좋은 아이라 빠져나갈 구멍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동생은 아직 철도 안 들었어. 니 년이 동생을 앞세워 어디서 핑계를 대고!”
몇번인가 빗자루를 더 내리쳤다. 빨갛게 눈이 부은 화분은 이제 포기한 것처럼 빗자루를 피하지 않았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습니다.”
체념한 듯 되풀이하는 말에 김춘덕은 김이 빠졌다. 잘못했다고 입으로는 말해도 딱히 잘못한 사람의 행동이 아니었다. 그게 너무 괘씸했다. 유독 제게만 그랬다. 착하고 속 깊은 장녀라 어린 나이에 떠받들지만 김춘덕에게 송화분은 악에 받친 어린 애에 지나지 않았다. 진짜 속이 깊다면, 제 아비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자신이 왜 정순녀를 미워하는지 이해해야만 했다.
“니 에미한테 보내달라고 하면, 보내줄거니까 말만 해. 니 애비가 못보낸다고 해도 나는 보낼 수 있어. 넌 그년이랑 똑같이 생겼으니 더 정이 있겠지. 어떻게 생긴 게 울면서도 잘못했다는 눈빛이 아니고….”
김춘덕은 토기가 올라와서 방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화란은 어느새 방구석의 모서리 부분에 몸을 끼운 채 입술을 빨고만 있었다. 기가 죽은 화철도 화란의 곁으로 앉아서 딱지를 만지작거렸다.
“하미….”
품안으로 화웅이 기어들었다. 김춘덕은 안겨드는 화웅을 들어 품안에 두고 다독거렸다. 화웅이 방긋거리자 김춘덕은 그나마 화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이 작은 아이마저 없었으면 삶의 낙이 사라졌을 지도 모른다. 김춘덕은 몇번이가 가슴을 두들기다가 다시 화웅을 향해 웃어보였다.
“냉큼 부엌에 나가 저녁을 돕지 못해?”
김춘덕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화분은 울어 지저분해진 얼굴로 뒤편의 부엌으로 나갔다. 부엌에서 쭈뼛거리며 며느리 김영희 곁으로 다가서지 못하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엄마.”
화분이 작게 불렀다. 김영희는 화분쪽을 향하지 않은 채로도 몸을 움찔거렸다.
“엄마. 미안해요. 다시는 친엄마 안 만날게요.”
“…….”
“엄마 너무너무 미안해요.”
화분이 부엌에서 그대로 주저앉는게 문틈으로 살짝 보였다. 그러더니 아예 대놓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아주 큰 소리였다. 제 앞에서는 끝까지 소리내어 울지도 않더니 어쩐 일로 김영희 앞에서는 소리내어 울었다.
“그만 울어.”
“엄마, 미안해.”
“알았어. 그만 울어.”
하지만 화분은 한동안 멈출 생각도 없이 울기만 했다. 김춘덕은 부엌에서 들리는 소리에 짜증이 나 다시 매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같이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김영희였다.
“나는 네 엄마가 되고 싶어.”
흑흑흑, 대답도 없이 화분은 계속 울었다.
“그래서 네 생모를 안 만났으면 좋겠어.”
화분이 그말에 어깨를 들썩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만나게 되면 말해주고.”
“네. 네… 그렇게 할게요.”
김춘덕은 그 꼴을 보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화란은 분위기가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지 금세 방 중앙으로 나와서 화철과 공기놀이를 시작했다. 공깃돌을 만지려는 화웅을 몇번인가 밀어내며 짜증을 부렸다. 화웅은 졸린 지, 그런 상황에 곧 칭얼거렸다.
김춘덕은 화웅을 낚아채듯 안아서 등에 업었다. 곰곰이 생각하니 준태가 좋아할 리가 없었다. 더구나 화분에게 손찌검을 한 걸 알면…. 저 여우같은 화분이 일러받치진 않겠지. 은근히 조바심도 일었다. 하지만 아들도 크게 뭐라고 하지는 못하리라. 어미가 손녀 교육을 한다는데, 그걸 가지고 따지고들 만큼 어리석은 녀석은 아니리라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