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기

송화란

by 조은서리

아빠가 사진기를 샀다. 날은 적당히 풀렸고 흐렸다. 단층이었지만 옥상은 뛰어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제 여섯살 난 화란은 열심히 언니의 뒤를 좇았다. 왜 뛰기 시작했는지, 누가 잡고 누가 잡히는지 기억에 없다. 그저 뛰고 있으면 하늘이 금방 가슴까지 닿을 것처럼 내려왔다. 심장 박동을 따라 쿵쾅쿵쾅 옥상이 울려도 나무라는 사람이 없었다.


언니 송화분은 양갈래 머리를 캔디처럼 묶었다. 언니는 얼굴에 주근깨도 있으니 캔디같은 느낌이 없지 않았다. 더구나 이번에 사 준 새옷은 캔디의 원피스처럼 허리에 새틴 끈까지 달린 옷이었다. 화란은 가슴까지 노란색 물결 무늬에 자수가 놓인 기다란 원피스를 입었다.


공주님같은 옷이라 화란은 자신의 차림이 퍽 맘에 들었다. 아빠는 새로 산 사진기로 사진을 찍었다. 어떻게 나올지 무척 궁금했다.


*


“나갓. 이렇게 속 썩일 거면 집에서 없어져 버렷!”


또 대문 밖으로 쫓겨났다. 그럴때마다 매번 화분은 울었다. 문 앞에서 ‘엄마,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 게요.’ 라고 하면서 질리지 않는 눈물을 계속 흘렸다. 하지만 화란은 시간이 되면 엄마가 문을 열어줄 걸 알았다. 굳이 잘못한다고 비는 대신 그 시간 동안 재미있게 놀고 싶었다. 하지만 언니 화분은 한쪽에서 쭈그려 앉아 땅에 그림을 그리고 노는 화란을 곧잘 나무랐다.


“네가 그러고 있으면 더 안 열어주잖아.”


가을이라고는 했지만 아직 더위가 완연하게 가시지 않은 탓인지 해가 지는 시간에 속옷만 입고 대문 밖에 있어도 하나도 춥지 않았다. 그저 동네의 어른들이 지나가면서 한번 피식 웃기도 했고, 어떤 이는 혀를 차기도 했다. 골목을 두고 마주본 양옥 집이 쭉 늘어선 동네였다. 여섯 살 난 화란이 보기에 가장 좋은 곳에 사는 기분이기도 했다. 어른들이 지나가면서 딱해하는 건 상관없었다. 얼레리 꼴레리. 속옷만 입고 쫓겨났대요. 그렇지만 동네 아이들이 와서 놀리고 가는 건 화가 났다.


화가 난 화분은 철로 된 사각 끝이 조금 녹슨 대문을 쾅쾅 쳐댔다.


그 이후 얼마나 지나서 문을 열어줬는지, 들어간 후 어땠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


화란에게는 비밀이 있었다. 누구에게도 쉽게 말해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자꾸 뭘하든 눈이 가는 갔다. 고등학생들을 보면. 그들이 자신을 예쁘게 보는 지 신경이 쓰였다. 무섭기도 했지만, 무섭지 않기도 했다. 가족들은 늘 화분을 우선시했다. 그게 아니면 화철을 우선시했다. 어느 샌가는 화웅이 되었다.


그런 중에 새엄마는 화란을 귀여워했다. 머리를 기르게 하고 머리를 묶는 걸 해줬다. 사실 새 엄마는 머리 묶는 걸 해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 화란을 위해서 머리 묶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그렇지만 가난한 건 정말 질색이었다.


2학년의 가을 소풍이었다.


소풍 장소는 동물원이었다. 동물원에 입장하기 위해선 각자 100원씩을 가지고 와야 했다.

소풍인데 도시락은 김밥이 아니었다. 계란말이에 김치 볶음이 소풍의 도시락이라는 게 믿을 수가 없었다. 김밥이 아니라니. 다른 아이들은 다 김밥을 싸 올게 틀림없었다.


더구나 가방안에는 과자 대신 과일이 잔뜩 들어갔다. 사과 두개, 삶은 밤, 대추 같은 게 들어갔다. 얼마 전 명절이었던 탓에 할머니 집에서 죄다 싸준 것이었다. 가방은 돌덩이를 넣은 것처럼 너무 무거웠다. 실은 돌덩이가 아닌 과일로 가득 찬 무거운 가방을 메고 동물원까지 가야했다.


“미안해. 입장료 밖에는 못 주겠구나. 돈이 없어. 과일은… 혹시 친구들과 나눠서… 과자랑 같이 나눠 먹으면….”


새엄마는 창피한 것처럼 하얀 얼굴이 붉어진 상태였다. 어쩌면 좀 미안해 하는 것 같긴 했다. 그렇다고 과자 사 먹을 돈을 하나도 주지 않는다는 게 서러웠다. 화란은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보아하니 화분도 이 상황만큼은 꽤 견디기 어려운 듯 낯빛이 무척 어두웠다.


출발은 학교에서 같이 했다. 점심 시간이 되어 친구들이 도시락을 꺼내들었다. 다들 김밥이었는데, 화란은 볶은 김치의 국물이 흘러 계란말이에 스며든 상태였다. 누구도 화란의 도시락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물며 누구도 과일과 과자를 바꿔 먹으려 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가는 길은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지름길을 간다고 산길로 들어섰는데, 다행히 화분을 만난 상태였다.


“너무 가방이 무거워.”


화란은 흙이 탄탄하게 다져진 산 길에 주저 앉았다. 가방을 열고 주섬주섬 사과와 배를 꺼냈다.

“다 버릴 거야.”


몇 개를 땅에 내려놓았을 때, 화분의 손바닥이 등을 세게 때렸다.


“그러는 거 아냐!”


화란이 내려놓으면 화분은 그걸 다시 가방에 집어넣는 일이 반복됐다. 성질이 난 화란은 산에서 아아악 하고 소리를 지른 후 울기 시작했다. 놀이기구는 그렇다하더라도 과자 한봉지 먹지 못하는 소풍을 왔다는 게 짜증스러웠다. 거기다 여전히 가방은 무거웠다.


“가자. 응? 여기 산이라 금방 어두워진다고 했어. 엄마가 걱정할 거야.”


화분이 이번엔 달래기 시작했다. 화란은 일부러 조금 뒤에 떨어져 느리게 걸었다. 화분은 앞서 가다가도 몇 번이나 뒤돌아 보고 빨리 오라고 재촉했다.


“진짜 엄마도 아닌데….”


그때 화분이 휙 뒤돌아본 탓에 화란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 이후는 자연스레 입술을 빠는 습관으로 이어졌다.


“얼른 와. 가자.”


화분은 여전히 제 속은 모른 채 재촉만 했다. 언니라면서, 화란에게 친절하지도 않았고, 제 맘을 잘 알아주지 않았다. 어른들은 화분을 늘 칭찬했지만, 화란은 그게 거짓이라고 생각했다. 화분은 어른들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중일 뿐이다. 사실은 착한 척 하고 있을 뿐인데, 세상은 화분이 너무 착하다고만 했다.


*


같이 놀자고 했는데 자꾸 책만 봤다. 놀 사람이 없는데 언니라면서 맨날 책만 읽었다.


“너랑 놀면 재미없어.”


누군 재미 있어서 언니랑 놀고 싶은 줄 아냐고. 놀 사람이 없잖아. 심술이 났다. 화분은 자신보다 책을 더 좋아한다. 동생인데 챙겨주기 보단 늘 탓을 했다.


[네 심보가 못됐어서 그렇잖아.]


자기가 재판관인가. 왜 다 판결을 내려! 왜 나랑 놀아주지는 않으면서 내 편은 안 들어주는 거냐고!

물론 새엄마가 화분이 아닌 자신을 데리고 자는 건 기뻤다. 누군가 화분보다 화란을 우선해주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그래도 화란은 화분이 자신을 더 잘 챙겨주길 바랐다. 그래서 화분의 책을 찢었다.

화가 난 화분이 건넛방과 집 사이의 커다란 복도에서 소리를 질렀다.


“가만 안 둘 거야!!”


건넛방은 화란의 집과는 다르게 방이 길게 하나로 이어졌다. 그곳에서 7식구가 살았다. 그 집의 아버지는 술을 마셨고, 엄마는 딸들과 만두를 빚었다. 딸은 스무살이나 된 언니부터 화란이보다 어린 아이까지 많았다.

그래서 복도에는 전에 집에 있었던 소파를 밀어서 쌓아뒀다. 사람들을 대접할 수 있도록 정리해둔 게 아니고 건넛방과 이쪽을 반으로 갈라 벽을 만든 것처럼 소파를 따닥따닥 붙여서 길게 이었다. 그곳에서 가끔 화철과 화웅이랑 소파를 넘어다니며 놀기도 했었는데 엄청 화가 난 화분은 그곳까지 쫓아나와 화란을 잡으려는 중이었다.


그러다 둘 데가 없어 한쪽에 세워뒀던 커다란 화병을 넘어뜨렸다. 화분은 차분해보이지만 실은 무척 털털했는데, 결국 사고를 친 건 화분이 된 셈이었다.


할머니가 쫓아나온 건 그때였다. 할머니는 화분의 머리채를 손으로 움켜쥐어 흔들었다. 그리고 바닥에 던지듯 밀었다. 손에 들고 있는 파리채로 화분을 때리기 시작했다.


“이 못난 게 또 사고를 치네. 여기 우리만 살아? 왜 이렇게 시끄럽게 굴어. 화란이는 뛰어다녀도 말썽한 번 안 부리는데 넌 어째서 하는 일마다 사고야! 이거 예전에 네 아빠가 공들여 사놓은 거, 언젠가 우리 잘 살게 되면 장식해두려고 여기 세워둔 꽃병인데 이걸 또 깨버려! 이런 정신 없는 년! 매번 동생에게 너그럽게도 굴지 않고. 못된 년이 미운 짓만 해. 생긴 것도 꼴보기 싫은 게….”


라며 할머니는 구석으로 화분을 몰아가며 때렸다. 화분은 겁에 질려 잘못했다고 빌지 않았다. 맨날 잘못했다고 빌던 화분이었는데 할머니가 때릴 때는 어쩐 일로 그냥 맞았다. 화란은 소파에 기대어 한쪽에 섰다. 이번엔 모른 척 딴 짓을 할 수는 없었다. 무언가 불안했다. 화분은 빌어야하는데, 울며 불며 잘못했다고 해야 하는데 그걸 인정하지 않았다.


“화란이가 먼저 시작했어요.”


화분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소리내지 않았고,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게 할머니의 화를 부른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할머니는 손으로 머리채를 뽑을 듯 흔들며 매를 휘둘렀다.


그때 할머니를 말리기 시작한 건 새엄마, 아니 엄마였다.


“어머니, 화란이 먼저 화분이 책 보는데 성질을 건드렸어요. 그만 하세요.”


“언니라는 년이 동생을 알아서 돌봐야지. 원래 첫째는 그러는 거여. 사람들이 몰라서 저게 속이 깊다 착하다 하지만 사실은 하나도 안 그래. 지 생각밖에는 안하는 그년이랑 똑같아.”

“어머니. 화란이가 먼저 잘못한 거예요.”


엄마는 흘깃 화란을 쳐다봤다. 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라는 뜻이라는 걸 화란은 어렴풋이 눈치챘다. 하지만 할머니가 화분을 때리는 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화란은 보란듯이 모른 척했다.

“어머니 그만하세요.”


엄마가 할머니를 막아서고 서야 할머니는 매를 들었던 팔을 내렸다. 엄마의 눈빛이 어쩐 일로 싸늘했다. 그때부터였다.


“엄마.”


하고 화란이 불렀을 때, 답이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

“화란아, 너 오늘부터 할머니랑 자.”

“…….”

“그게 좋겠어.”


화란은 눈으로 눈물이 모이는 걸 꾹 참았다. 왜 내가 엄마랑 같이 못자는데? 엄마도 이젠 언니만 좋은 거야? 억울하고 서러웠다. 하지만 울면 안될 것만 같았다. 할머니는 왜 엄마방에서 안 자냐고 한번 물었다가 화란이 구석에 홱 이불을 덮고 돌아눕자 군소리를 더는 하지 않고 이불을 덮어줬다.


화란이 돌린 방향에는 화분이 누워있었다. 화란은 입술을 빨았다. 화분의 손가락이 입술 끝을 지그시 내렸다. 화란은 그걸로 성질을 부리지 않았다. 대신 화분의 귓불을 만졌다. 화분은 화란의 나머지 손을 하나 다 펴게 해서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더니 그 위에 제 손을 얹었다.


그렇게 잠든 밤 이후로, 누구도 화란이 큰 방에서 자게 된 건에 대하여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엄마는 예전만큼 화란에게 온화하지만은 않았다. 그게 그 이후로도 늘 맘에 걸렸지만 화란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화분과의 사이는 늘 그렇듯, 싸움과 화해의 연속인데 그걸 그만두는 방법을 도무지 알 수도 없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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