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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Nov 17. 2022

최선을 다한 실패는 가치가 있을까, 없을까


(이 글을 쓰기까지 여러 번 주저했다. 글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내게 쉽지 않다.)     


불과 열흘 남짓의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취재를 다녀온 이후 극심한 번아웃 상태에 빠졌다. 2022년 10월은 지옥 같았다. 내가 선택한 것이므로 누가 시킨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는 강박에 시달리며 한 달을 초조하게 보냈다.


5일부터 17일까지 현지 체류기간동안 낮에는 취재를 하고 숙소에 돌아와서는 밤늦도록 그날 취재 내용을 정리하고 통계와 문헌 조사를 했다. 잘 때 빼고는 계속 취재에만 빠져 있었다.


글은 두 개의 버전으로 동시에 작성되었다. 브런치북 버전과 뉴스 기사는 달라야 하므로 나는 취재 원본, 브런치글, 기사 등 세 개의 파일을 펼쳐놓고 글을 썼다. 서둘렀던 이유는 한국에 돌아가면 당장 닥쳐올 일상의 업무가 글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감정이 살아있을 때 그것을 넣어 생생한 글을 쓰고 싶었다.


이스라엘에서 홍콩까지 약 열 시간의 비행시간 동안 나는 한 숨도 자지 못하였다. 현장의 분위기가 떠오르지 않으면 찍어둔 사진을 열어보기를 수차례. 17일 새벽 홍콩공항에서 나는 첫 번째 기사를 올렸다. 기사들은 <2022 팔레스타인 보건인권 리포트> 제하의 기획으로 2022년 10월 17일부터 11월 3일 총 7편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동시에 브런치에 연재하고 있었던 <뜻밖의 세계, 팔레스타인>도 끝내야 했다. 10월 18일부터 30일까지 총 9편의 글을 썼다. A4 석 장 미만인 것이 없을 정도로 매 회 분량은 상당했다. 브런치 독자들에게 현장을 느끼게 하고 싶어 구체적인 묘사를 하거나 자료 조사도 충실히 했다. 삼년 여간 이어온 <뜻밖의 세계, 팔레스타인> 연재는 그렇게 끝이 났다.  


기자상에 공모했지만 모두 미끄러졌다. 브런치북에서도 이렇다 할 반응은 없었다. 그까짓 상이, 독자의 반응이 별것이겠냐 마는 최선을 다한 실패란 것이 과연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속이 상했다. 이 꼴을 곁에서 지켜본 아내는 위로해 주었다. 그녀는 남편의 고군분투가 그저 안쓰러웠을 것이다.


조금 시간이 흘러 스스로에게 왜 고생을 자처하였는지 물어보았다. 좋은 기사와 글을 쓰고 싶었다. 그 결과물로 인정도 받고 싶었다. 그래서 시상식장에서 아내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아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렇게 내가 글로, 온몸으로 전하려 했던 것. 팔레스타인의 보건인권 위기를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느꼈으면 했다.      


세상 참 거지같다고 체념하고 있는데, 지난주에 회사 선배가 간식을 건네며 슬며시 말을 걸었다. 신입기자 면접을 보는데 내가 쓴 기사를 거론하며 그렇게 현장을 뛰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무어라 답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고생을 즐기거나 어떤 보상을 받기위해 그 먼 팔레스타인까지 간 것은 아니었다. 인생은 예상대로 흐르지 않는다. 다시 그곳을 가더라도 나는 10월처럼 하진 못할 것 같았다. 그러다 깨달았다. 두 번 다시 그렇게 하지 못할 정도라면, 내가 얼마나 절실했고, 노력했는지를. 그렇다면 비록 상패는 받지 못해도 그렇게 가치 없는 일은 아니지 않을까.      


나는 새로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실패해도 실망하지 않으려 한다. 질질짜는 글도 이만큼 썼으니 됐다. 이 글의 끝은 기사에는 썼지만 브런치 연재에는 담지 않은 것으로 대신한다.      


2022년 10월 15일(현지시각) 예루살렘의 시온문(Zion gate)을 방문했다. 시온산(Zion Mountain)으로 이어지는 작은 돌문에 불과한 시온문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자는 시오니즘(Zionism)의 태동을 상징하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는 뜻 깊은 장소다.

그렇지만 팔레스타인인에게는 정반대의 감정을 주는 곳일 터다. 

작금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과 죽음, 팔레스타인 인도주의 재앙의 씨앗이 된 시오니즘의 오래된 상징물 앞에서 긴 취재는 끝이 났다.     


by 코드블랙


2022 팔레스타인 보건인권 리포트


①나블루스·제닌, 흙쌓아 도로막고 최루탄 쏴 위협도..이팔충돌 현장을 가다


②"의사 혼자 하루에 250명 진료"..분리장벽만큼 높은 팔레스타인 병원 문턱


③이스라엘의 이동제한 조치, 팔레스타인 의료접근·생존 위협


➃"이-팔 분쟁 여파, 서안지구에 환자 넘쳐나"


⑤팔레스타인 여성들, 점령·젠더 폭력에 정신건강 문제까지 삼중고


➅2022년에도 그들은 동굴에 산다


⑦팔레스타인의 망가진 보건복지는 점령과 무능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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