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들 프로젝트
2013년 11월 당시 필리핀은 유래없는 태풍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당시 나는 사회부 기자였는데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당시 몸담고 있던 회사는 그 꼴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블로그에 기사에 살을 붙여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회사를 옮겨 의학분야의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할때까지 몇 년간 이중생활을 이어나갔다.
당시 블로그에 기치로 내건 것은 ‘누블롱 라 베리테 (Nous voulons la vérité)’라는 것이었는데, 우리 말로 '우리는 진실을 원한다'라는 좀 낯간지러운 것이었다. 굳이 이 말을 사용했던 이유까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소위 '뽕삘'이지 않았을까 싶다. 의학기자가 되고 나서는 그러한 이중생활은 끝났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2018년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헤브론에서 시작된다. 나는 헤브론 도심을 걷다가 뒷골목의 더러운 돌벽에 붙어있는 포스터 한 장을 보게 된다. 선글라스를 반쯤 내리고 도발적인 눈빛을 보내고 있는 한 팔레스타인 여성의 모습은 내게 꽤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022년 10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나블루스에서 현지 여성들을 만나 그들의 사연을 자세히 들을 기회가 있었다. 처한 상황은 대체로 좋지 않았는데, 이스라엘의 점령폭력(Occupation-Related Violence), 가정폭력과 같은 젠더 기반 폭력(Gender-Based Violence), 이로인한 우울증과 불안감 등의 정신건강 문제 등이 공통적으로 발견됐다. 그들의 사정을 글로 써서 전하기는 하였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줄곧 하게 되었다.
2023년 4월 한 시민단체와 팔레스타인 여성 문제에 대해 몇 번 이야기를 나누긴 하였지만 이렇다 할 프로젝트로 이어지진 못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기획기사 공모에 참가하자는 당초 계산은 있었지만 끝내 여러 이유로 성사되진 않았다.
당초 시민단체와 함께 구상하던 것은 팔레스타인 여성 독립 언론인 양성 프로젝트였다.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삼중고 상황에 놓인 약자인 여성들에게 저널리즘 훈련을 시켜 그들의 시선으로 현지의 생생하고 정확하면서도 다양한 소식을 우리사회에 전하자는 것이었다.
의미는 있지만 나는 솔직히 조금 회의적이었다. 이런 주제의 기획을 공모에 제출한 들 선정될 가능성이 높지 않고, 내가 속한 매체의 성격과도 잘 맞지 않았다. 보건의료나 복지와도 따지고 보면 관련이 없었다. 언론 관점에서 아이템이 약했다는 표현이 적당했다.
결국 나는 손을 뗐다.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그만하자 싶었다. 수일이 지나 동일한 주제로 시민단체가 모금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 잘 진행되는 것 같진 않았다.
2023년 6월 8일 점심을 지난 시간이었는데 전날 숙취로 두통이 약간 있었다. 나는 병원 1층 카페에 앉아서 노트북을 펴 놓고 있었다. 인터뷰까지 불과 30분밖에 남겨두고 있지 않았다. 카페 유리문 밖에는 휠체어를 탄 어르신과 보호자가 가로수 옆에 서 있었고, 하늘은 구름이 가득했다. 그래 오늘 소나기가 내린다고 했었지. 머릿 속으로 ‘Nous voulons la vérité’라는 말을 곱씹고 있었다. 나는 조금 무모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딴에 생각해 낸 것은 얼룩소에 팔레스타인 여성들에 대한 글로 글값으로 프로젝트 수행에 필요한 자원을 모아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 돈으로 현지 여성들의 취재 활동을 지원하고, 그렇게 생산한 보도물은 다시 얼룩소에 독점으로 전하면 어떻겠느냐고 말이다.
계획의 성공 여부는 글값이 얼마나 모일지에 달렸는데, 그러려면 관심을 끌 글을 써야만 했다. 글값이 많이 모여 프로젝트가 성사될 지 말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은 앞으로 몇 편의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사연을 전하려 한다. 글들은 보건과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그들의 말 못할 속사정을 담은 것들이다. 첨언을 하자면 보건의료와 복지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이라 분쟁 지역에 가도 그런 것들만 눈에 밟힌다. 열악한 보건·복지 실상이야 말로 바꿀 수 없는 현지 인도주의 위기의 증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2022년 10월 9일 오전 11시를 절반 가량 넘은 시각.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나블루스 올드시티(Nablus old city)에 위치한 ‘팔레스타인 여성 트라우마 힐링센터’에 아이를 안은 여성이 찾아왔다. 하키마(36·가명)는 현지 여성들이 입는 푸른색 베일에 얼룩무늬의 히잡(Hijab)을 차림이었다. 볼에는 가로로 긴 흉터가 있었다.
나블루스 올드시티에 사는 하키마는 8년간 동안의 결혼 생활동안 가정폭력에 시달렸다. 결혼 첫 해부터 남편은 그녀를 때렸다. 남편은 알코올 사용장애로, 술만 마시면 주먹을 휘둘렀다. 하키마는 일주일에 1~2번씩 구타와 언어·성적 폭력을 당했다.
남편은 일찍 부모를 여의었고, 제대로 된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다. 무직 상태였던 남편이 간혹 일용직 근로 등으로 돈을 벌어오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식비 정도만 하키마에게 주곤 했다. 돈을 벌어오지 않을 때면 하키마는 친지의 도움으로 음식과 자녀에게 입힐 옷가지를 얻어 생활했다.
하키마가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음이 알려지게 된 것은 한밤중에 남편이 외부에서 하키마에게 발길질을 하며 구타하는 모습을 이웃들이 목격하면서다. 2년 전에도 하키마는 남편의 폭력으로 실신, 병원에 실려 간 적이 있었다. 당시 의료진은 그녀가 가정폭력 피해를 당했음을 눈치 채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경찰에 신고했다. 그 일로 남편은 한 달간 징역을 살았다.
이웃의 소개로 알게 된 팔레스타인 트라우마 힐링센터 소속 변호사는 남편에게 양육비 청구를 할 것을 조언했다. 현지법은 가정폭력 피해를 당했을 경우, 이혼 여부와 관계없이 양육비 청구를 허용하고 있었다. 그러려면 가정폭력 피해 사실을 법원이나 경찰이 접수해야 했다.
하키마는 법원에 소송을 청구하고 싶었지만, 소송비용이 없었다. 법원 대신 경찰에 가정폭력 피해 사실을 신고했지만, 경찰은 피해를 입증할 병원 진단서 제출을 요구했다. 진단서 발급에는 100셰켈(약 4만원)이 필요했는데, 하키마는 그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결국 남편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하키마는 이혼을 하고 싶지만, 지금도 남편과 한 방에서 지내고 있다. 남편의 알코올 의존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하키마는 낮에는 아이를 돌보고, 밤에는 수공예품 제작 교육을 받으며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하키마가 가정폭력 피해의 영향으로, 또 남편과 분리된 생활을 하고 있지 않아 폭력 재발 가능성 때문에 불안 등을 느끼고 있지 않은 지 물어보았다.
“우울감을 겪고 있고 자신감이 없어졌어요. 저 같은 여성들에게 경제적인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블루스에 거주하는 마리엠(38·가명)도 그날 센터를 찾아온 여성 가운데 한 명이었다. 8명(딸 2명, 아들 6명)의 아이 엄마인 마리엠도 가정폭력을 당했다. 한번은 남편이 그녀의 머리를 가격해 그녀는 이주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집에 돌아와 보니 딸의 기색이 심상치 않았다. 이유를 묻자 딸은 삼촌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했음을 고백했다. 마리엠이 경찰에 신고하려하자 가해자는 집에 불을 질렀다.
“모든 게 다 타버렸어요.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죠.”
딸은 센터에서 심리치료를 받았는데, 상담과정에서 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한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충격을 받은 마리엠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지만, 심리상담의 도움 등으로 생각을 바꿨다. 자녀들에게는 본인 밖에 없다는 사실도 컸다. 두 살배기 막내딸에게는 엄마가 필요했다. 마리엠이 살아야 할 이유는 자녀들 뿐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자녀 외에 자살 시도를 멈추게 한, 다시 살아가게 할 또 다른 이유가 있나요?”
“아니오, 없어요.”
파티마(26·가명)도 두 명의 딸과 한 명의 아들을 둔 엄마였다. 그녀는 남편에게서 가정폭력과 학대 피해를 받고 있었으며 경제적으로도 쪼들렸다. 남편은 툭하면 물건을 집어던지고 파티마와 자녀들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참다못해 남편과 별거하기로 작정하고 집을 나왔다. 아이들은 남편과 지냈다. 자녀와 떨어져 지내자 슬픔과 우울증, 고립감이 밀려왔다. 결국 파티마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처음에는 남편과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파티마는 “남편이 바뀌었고, 더는 폭력적이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믿기 어려웠다.
“남편이 또 때리면 어떡하죠?”
“더는 불안하지 않아요. 전 강해졌어요. 그리고 직업훈련을 통해 더 강해질 거예요.”
아이린(37·가명)도 남편의 상습적인 가정폭력, 성적학대, 정신적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시댁으로부터는 살해협박까지 받았다. 아이린에 따르면, 그녀의 남편은 평소 자신감이 없었고 여러 병도 앓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이 자신을 때릴 때 편안함을 느꼈다.
“남편은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들키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자신이 더 우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제게 폭력적인 행동을 일삼았어요.”
가정폭력 말고도 아이린은 더 큰 위협에 놓여 있었다. 남편의 형은 아이린이 유산을 상속받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녀를 살해하겠다고 협박했다. 아이린은 법률 상담 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도리어 검찰에 신고할 것을 권고했다. 남편은 그녀가 검찰에 가지 말라고 위협하고, 살해 협박에 대한 증언을 거부했다. 결국 검찰 고소는 이뤄지지 못했다.
아이린은 심리 상담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감이 늘었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녀를 둘러싼 위협은 아직 남아있었다.
에일리(37·가명)는 2022년 7월경 1년 반의 별거 끝에 이혼을 하였다.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가정폭력과 정신적 학대 피해를 받았다. 결혼 당시 그녀의 나이는 29세였지만 남편은 50세로 나이차가 많았다. 남편은 이미 첫 번째 부인이 있었으며 자녀도 7명이나 있었다. 나이 차이로 인한 불화와 남편의 질투도 에일리를 힘들게 만들었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남편은 아랍인 이스라엘 시민권자였다. 아랍인 이스라엘 시민권자는 국적이 이스라엘인 팔레스타인인을 뜻하는데, 이스라엘에 참정권을 갖고 있었으며, 제한된 지역이나마 이스라엘에 거주도 가능했다. 전 남편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문화적 차이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이는 에일리와의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이스라엘 형법은 중혼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를 어길 시 최대 징역 7년에 처해질 수 있었다. 물론 결혼을 관장하는 최고종교재판소가 특별한 허가를 한 경우는 예외이지만, 에일리의 경우처럼 남편처럼 아랍인이지만 이스라엘 시민권자인 경우, 공식적으로 중혼을 허락받기란 매우 어렵다. 때문에 남편은 첫째 아내가 자신의 중혼 사실을 신고할 것을 염려해 에일리를 학대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첫째 아내의 비위를 맞추려고 절 폭력적으로 대했고 결국 전 유산을 했어요.”
에일리는 별거 끝에 이혼을 결정했다. 당시 에일리는 집중력이 떨어지고 자신감이 저하된 상태로, 감정조절에도 문제를 갖고 있었다. 여기에 모친의 사망으로 그녀는 정신건강에 문제를 겪었다. 이제 에일리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전 피해자가 아니라 생존자라고 느껴요
이들의 사연에는 우리사회의 기준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포함돼 있다. 예컨데 폭력을 일삼은 남편에게 다시 돌아간 사연은 쉬이 납득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피해 여성들이 몸을 피할 쉼터 등이 사실상 전무하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여성 보호 정책이 부재한 상황, 또 가부장적인 문화가 강한 이슬람 문화 아래 피해 여성들의 현실적인 선택지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팔레스타인 여성의 젠더 기반 폭력 경험: 정신 건강 전문가의 인식과 우려’(Gender-based violence experiences among Palestinian women during the COVID-19 pandemic: mental health professionals’ perceptions and concerns) 연구는 팔레스타인 여성을 향한 폭력은 법·가족·사회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가부장제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분석한다. 또 이스라엘 점령 하의 삶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희생을 증가시킨다고 지적했다.
팔레스타인의 생존자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속에서 일어나는 직접적이거나 부수적인 피해,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무능과 부패, 웨스트 뱅크에서 횡행하는 젠더 폭력. 이 모든 것이 만들어 내는 '대환장의 현실' 속에서도 꿋꿋하게 삶을 이어가고,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팔레스타인의 생존자들을 만나보자.
저자 김양균
의학기자이다. 5·18 민주화 항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홍콩 시위 사태 등 보건의료 관점에서 국제 분쟁과 사회적 갈등을 조명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대표적으로 <5·18 시민 곁의 그들>, <팔레스타인 르포…분리된 삶, 부서진 꿈>, <감염병 공습 국경은 없다>, <2022 팔레스타인 보건인권 리포트>, <벽: 너와 나를 나누는> 등을 보도했다. 전남대병원 5·18 보도 공로상, 한국과학기자협회 과학언론상 올해의 의과학취재상, 한국인터넷신문협회 인터넷신문 대상, 민주언론시민연합 이달의 좋은 보도상 등을 수상했다.
목차
프롤로그. 팔레스타인 여성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1. 간호사도, 기자도 보호받지 못한다. 이곳은 팔레스타인
2. 빵 없는 밤, 배고픈 아이는 울고
3. 검문소에서 애 낳는 팔레스타인 여성들 사연
4. 침묵 강요받는 젠더폭력 피해 팔레스타인 여성들
에필로그. 제3의 눈
부록. 레프트 비하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