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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인도주의 지원을 가로막나

인도주의란, 인간애를 바탕으로 인종·민족·국적의 차별 없이 인류의 복지를 증진시키자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내전과 전쟁, 인종청소 등 인도주의 재앙 현장에서 대표적 인도주의 지원, 보건의료지원이 멈춰져서는 안 된다고 국제법으로 정해두고 있다.


이것은 북한에도 적용된다. 물론 대북 제재라는 특수 상황 하에서 의료지원은 여러 난관이 있다. 가령, 북한의 인플루엔자가 기승을 부릴 때, 남한은 약품 지원은 가능해도 이를 운송할 차량의 방북이 대북제재에 걸리는 기막힌 상황이 생긴다. 이와 함께 ‘북한 퍼주기’라는 프레임도 인도주의 실현에 저해요소로 작용한다. 최근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인도적 지원은 정치 및 국제상황과는 별개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남북 간 특수상황은 이를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남북미 관계가 예전만 못하지만 그럼에도 인도주의 지원은 계속되고 있다. 올해 정부는 세계보건기구(WHO)에 남북협력기금을 지원할 예정이고, WHO는 북한 모자보건분야 의료지원에 기금을 사용하게 된다. 사업 개시 시점은 상반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결정은 지난해 말 열린 제309차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서 안건으로 상정돼 의결됐다.


앞으로 WHO는 북한의 산과·소아과 병원과 의과대학을 정해 기관 평가와 의료진·교수진 교육 훈련, 교육훈련 효과 제고에 필수적인 응급·수술 장비 중심 물자 지원 등의 사업 추진을 맡는다. 지원되는 기금은 500만불(한화 59억 원)이다. 정부 당국자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직접 지원사업을 실시하면 좋겠지만,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WHO를 통한 인도주의 사업을 실시하게 됐습니다.”


사진=WHO


500만불이 불거졌다


통일부는 조심스러워했다. 5년만의 사업개시에 대해 정부 입장에서는 보도를 반길만도 한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렇지 않았다. 공여를 받는 북한의 입장을 우려하는 것 같았다. 그제야 이해가 됐다.


“정부의 기본 입장은 남북 상황과 무관하게 모자보건 분야에 집중한다는 것이죠. 대북 인도주의 사업은 우리 정부가 직접 하거나 민간 및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으로 이뤄질 수 있습니다. 이번 사업은 일련의 국제사업 중 하나인데, 보건의료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WHO가 더 효과적인 모자보건 사업을 수행할 수 있다고 판단, 공여를 결정한 겁니다.”


그런데 남북협력기금에서 500만불이 지원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때부터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북한 퍼주기’ 프레임이 작동할 조짐을 보였다. 정부 당국자의 말을 들어보자.


“마치 500만 불을 북에 주는 것으로 오해를 해 답답합니다. 이러한 보도는 북한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 매우 조심스럽죠.”


사진=WHO


일단 까고 보는 비난’은 사실 관계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무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우선, 대북사업에 소요되는 기금 지원이 국회의 승인을 득해 목적 예산으로 편성되어 있다. 대북 인도주의 지원사업은 통일부의 일상적 사업 중 하나다. 정부는 2006년부터 북에 대한 의료지원사업을 진행해왔다. 2019년 6월에도 모자보건사업의 일환으로 우리 정부는 세계식량계획(WFP)에 450만 달러를, 유니세프에 350만 달러를 공여한 일이 있었다. 정리하면, 대북 지원사업은 계속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사실 인도주의 사업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감대는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다. 아무리 국제사회가 ‘자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인도주의 지원 필요성에 대해서는 크게 이견을 달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인도주의가 정치와 종교, 체제를 초월한 인권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말고도 대북 인도주의 지원사업에 스위스 등 각국이 참여하고 있다. 남한은 여러 공여국 중 하나로 참여하고 있다.


나는 우리 보수언론이 서방국가에 대해
‘퍼주기’ 운운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500만 불 퍼주기’ 프레임은 기존 사업의 연장을 이념 대결에 갖다 붙이는 형태다. 논리는 매우 단순하고 사실 관계에도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많지만, 진영논리를 자극하기에는 효과적이다. 다음의 메시지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미사일 쏘는 북한에 왜 돈을 퍼주는가. 그 돈으로 무기 사면 어쩔 텐가.”


사진=WHO


지원 대상을 향해 ‘왜 도와주느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은 졸렬하다. 조롱을 당한 감정은 시간이 지나도 남는다. 왜냐하면...


국가도 사람처럼 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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