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좇는 배고픈 삶에 대한 소회
2024-07-30 초고.
0.
최근 아내의 추천으로 읽고 있는 육아책에 소개된 일화이다.
"스튜어트의 아들 새뮤얼은 의욕적이고 활달한 성격에 뭐든 능숙하게 해내는 아이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연기 실력이 뛰어나서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스튜어트는 반대했다. 그는 이민 1세대로서 평생 불안정한 저임금 육체노동자로 살아온 터라 아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길 원했다.
대학에 지원할 시기가 되자 새뮤얼은 이름 있는 연극영화학과가 있는 학교를 선택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스튜어트는 아들이 경영대학에 가기를 고집했다. 두 사람은 매일 싸웠다. 급기야 스튜어트는 아들에게 연극영화학과에 가면 학비를 지원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영원히 인연을 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새뮤얼은 이것이 아버지에게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알게 되었고, 결국 아버지 뜻에 따르기로 했다. 워낙에 똑똑했던 새뮤얼은 컬럼비아대학교 경영학과에 합격했고, 졸업 후에도 성공적으로 커리어를 쌓아나갔다.
연극영화과를 포기한 것은 새뮤얼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지만, 그는 지금도 자신의 열정을 지지해주지 않았던 아버지를 원망한다. 직장을 다니면서 누리는 윤택한 생활이 무대 위에서 느꼈던 기쁨과 목적의식을 완전히 보상해주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에겐 연기가 삶의 소명이었고, 자신의 본질과 존재 자체를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주택담보대출과 학자금대출이라는 수렁에 빠져 진로를 바꿀 여유가 없었다. "
(깨어있는 부모, 셰팔리 차바리 저, p. 68~69)
나는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소명을 깨닫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으면 한다. 그 과정에서 겪을 많은 실패와 시련을 극복하면서 도전적이고 회복 탄력성이 강한 성인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이런 내 소망을 이야기할 때면 마음 한편 에서 무언가 불편한 마음이 올라온다. 아이들은 부모의 가치관과 평소 행동을 보고 자라는 것이며, 따라서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때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아이들에게 꿈을 좇고 도전하는 삶을 살라고 말할 만한 그런 삶을 살고 있을까."
1.
언제부턴가 우리 부부의 대화에서 '도전하는 삶'이 자주 화제로 등장했다. 특히 박혜윤 작가의 "숲 속의 자본주의자"를 같이 읽고 나서 이런 삶에 대한 대화가 더 많아진 것 같다. 사실 그렇다고 딱히 지금 직장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좋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것에 깊이 감사하고 있다. 직업 특성상 스트레스가 적지는 않지만 타인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라 스스로 느끼는 긍지와 보람도 큰 편이다. 경제적인 보상에 있어서도 공공 기관이라 월급이 적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직장인 보다 많은 월급을 받고 있어 우리 네 가족이 살아가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따지고 보면 "잘 먹고 잘 살면 됐지, 대체 뭐가 문제야?"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지금도 많은 부모들이 그토록 아이들을 의대에 보내려고 노력하는 마당에, 나는 의사가 되어 안정적으로 잘 살고 있으면서 대체 왜 다른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걸까.
2.
기억이 남아있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내 장래 희망은 줄곧 의사였다. 하지만 힘들게 의사가 되고 나서야 우리가 말하는 '장래 희망'이란 결국 '꿈'이 아닌 '직업'을 말하는 것임을, 그리고 '꿈=직업'의 등식이 성립하는 케이스는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나는 그런 희귀 케이스에 포함되는 사례는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삶'은 이런 것이다. 매일 아침 일하고 싶어서 눈이 번쩍 떠지고, 보상이 적거나 심지어 보상이 없더라도 그 일 자체가 재밌어서 매일이 즐거운 삶.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매일 아침 환자를 볼 생각에 가슴 두근거리면서 기쁘게 출근하지 않는다. 그리고 병원에서 월급을 주지 않아도 사명감을 가지고 무료 봉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의사의 사명감을 거론하며 비난하지 말길. 나는 의사이기 이전에 한 집안의 가장이다.)
누군 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정말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세상에 몇 이나 있겠냐? 다들 먹고 사느라 힘든 마당에 그래도 먹고살만하면 다행인 줄 알아라!"
나는 오히려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산다는 것이 나 또한 그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로 합당한가?"
이쯤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지금의 삶에 불만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많은 노력과 희생을 거쳐 겨우 일궈낸 지금의 안정적인 삶을 가볍게 여기는 것도 아니다.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고,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집이 있고 매 끼니를 건강하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항상 감사하고 있다. 로버트 기요사키는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에서 이런 안정 상태를 '월급에 중독되었다'라고 표현했지만, 알코올 중독도 도박 중독도 아닌 월급 중독이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단지 딱 하나, 나 스스로가 우리 아이들이 살길 바라는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은 것이 불편할 뿐이다. "나는 환자를 돌보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라고 스스로를 세뇌할 수 있다면 모두가 해피 엔딩 이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기에 나는 지금의 '만족스럽지만 어딘가 마음이 불편한,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행복하기 그지없는 삶'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우리의 아이들만은 경제적 안정을 쫓기보다 꿈을 찾아 도전하는 삶을 살길 바라고 있다.
3.
경제적인 요소를 등한시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경제적 안정 또한 중요하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도 기본적인 욕구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행복하기 어렵다. 우리 아이들이 도전하면서 살길 바라지만 불행할 정도로 극심한 경제적 불안을 겪지는 않았으면 한다. 이러한 이유로 아이들에게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한 경제 지식을 가르쳤던 적도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부모가 본이 되지 않으면서 말로만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나부터 경제적 자유를 이루어야 된다는 말인가. 이런 맙소사.
하지만 돈 공부를 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경제적 자유'란 절대적인 특정 상태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 오히려 지극히 개인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어차피 소비와 소유에 있어 인간은 절대 만족할 수 없으니 경제적 자유는 돈을 많이 버는 것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 큼의 만족을 느끼는지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물질적인 수입보다는 삶의 방식과 가치관이 더 중요한 요소라는 말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최소한의 기본적인 욕구들이 충족된다는 전제 하에 통용되는 이야기다. 극심한 경제적인 빈곤은 개인의 불행은 물론 가정의 불화 또한 너무 쉽게 초래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어쩌면 지금이 적기 일지도 모른다. 신혼 초부터 경제적 불안과 빈곤에 시달렸다면 우리 부부도 많이 삐걱거렸겠지만 지금은 힘든 시기도 무사히 잘 넘겼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가 될만한 어느 정도의 자산도 생겼다. 무엇보다 우리 부부의 가치관이 크게 바뀌었다. 소비하는 삶에서 멀어지고 읽고, 쓰고, 배우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두게 되었다.
"도전하는 삶, 어쩌면 지금은 가능하지 않을까?" 몇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만 해결된다면 말이다.
4.
현실적인 문제 1 : 대체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어떤 일을 해야 매일 아침 출근이 행복할까? 그리고 박봉에도 즐겁게 일할 수 있을까? 이는 결국 내가 무엇에 열정을 쏟고 있는가와 비슷한 의미이다. 그렇다면 요즘의 나는 무엇에 열정을 쏟고 있나. 시간이 있으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해 보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보드 게임과 독서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게임 시스템 디자인이나 보드 게임을 설명하고 리뷰하는 일을 맡긴다면 나는 매일 아침 즐겁게 출근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고 소개를 하거나 글을 쓰고 이를 바탕으로 책을 파는 일을 맡겨도 즐겁게 일할 것 같다. (책보다는 보드게임 쪽이 조금 더 즐겁다.) 문제는 그런 일자리가 현실적으로 마땅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마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한다면 '북카페'를 창업하는 정도가 되지 않을까. 아내가 빵을 굽고 커피를 내리고, 한쪽에서는 내가 책과 보드게임을 큐레이팅하는 그런 공간이 떠오른다. 내친김에 'Bakery, Bean, Book, Boardgame'의 앞 글자를 따서 '카페 4B'라고 하면 어떨까. (급조한 명칭 치고는 나름 괜찮은 것 같다.)
현실적인 문제 2 : 먹고살 수 있을까?
사실 우리 집의 생활비 지출은 그리 많지 않다. 아이들의 사교육비는 항상 0원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아내는 건강하고 안전한 식재료를 선호하기에 장 보는 비용이 조금 나가기는 하지만 외식을 거의 하지 않으니 오히려 다른 집보다 식비도 덜 든다. 따라서 지금의 생활에서 조금만 더 소비를 절약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투자 수입도 계속 들어올 것이고 얼마간의 비상금도 있다. 혹시라도 정 수입이 딸리면 다른 일을 구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보드게임을 가르치는 공부방 겸 놀이방? (신경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보드게임 학원이라고 선전하면 엄마들의 관심을 끌 수 있지 않을까.)
현실적인 문제 3 : 취미와 여가는?
나의 취미는 보드게임, 독서, 그리고 바이올린이다. 보드게임은 지금처럼 나오는 신작들을 다 사지는 못하겠지만 이미 소장한 게임들만 깊게 즐겨도 아마 평생은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책은 신간이야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면 그만이고 그 와중에 큐레이팅에 필요한 책 만을 구입한다면 돈도 절약되고 독서도 더 깊어질 것 같다. 바이올린은 레슨을 계속 받으면서 정확한 피드백을 받는 것이 최종적인 포텐셜은 더 높겠지만 애초에 내가 원하는 수준이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한 번씩 연주할 정도의 실력이기에 유튜브로 독학도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아내 역시 지금처럼 빵 굽고 책 읽고 운동하는 것에 있어서 크게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다. 빵은 구워서 우리가 먹어도 되고 팔 수도 있으니 오히려 일석이조고 운동이야 크게 돈 드는 취미는 아니지 않은가.
여가에 있어서는 오히려 강점이 될 수도 있다. 그동안 병원에 묶여서 해외여행도 길게 못 가봤는데 일을 그만둔다면 오히려 장기 여행도 가능할 것 같다. 물론, 휴양지에서 호텔에 묵으면서 돈을 펑펑 쓰는 그런 여행은 어렵겠지만 대신 현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현지인들과 교류하면서 문화를 체험하는, 아내가 예전부터 말하던 '진짜 여행'이 오히려 가능하지 않을까. 애초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면 굳이 휴가라는 것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5.
어느 날 저녁 식사를 하면서 가족들에게 말을 꺼내보았다.
"꼭 그렇게 하겠다는 건 아니고, 그냥 이런 삶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어. 근데 만약 이렇게 산다면 지금보다는 소비를 덜 해야 하니 미리 몇 달 정도 절약하면서 살아보는 적응의 시간도 필요하겠지? '한 달에 100만 원으로 살아보기 프로젝트' 같은 걸 해봐도 재밌겠다."
아내는 안 그래도 요즘 내가 병원 일에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며 정 안되면 자기가 일하면 된다고 나를 지지해 줬다. 의외였던 것은 아이들의 반응. 특히 은우가 극구 반대를 하고 나섰다. 자기는 돈이 없으면 너무 불안할 것 같고 지금처럼 가끔씩 여행도 가고 외식도 하고 하는 걸 포기하기 싫다는 것이다.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예상 못한 반응에 나도 아내도 당황했다.
"은우야, 아빠 말은 다 버리고 거지로 살자는 말이 아니야. 당연히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대처가 가능한 그런 자산은 당연히 있지. 그걸 바탕으로 지금보다 덜 벌고 덜 쓰면서 거기서 나오는 시간을 우리가 누리고 인생을 좀 더 즐겁게 살면 어떨까 하는 말이었어."
아내는 나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하는 은우의 말에 섭섭함을 표했다.
"은우야, 은우 맘은 잘 아는데.. 엄마는 그래도 아빠가 일하기 힘드니까 말이라도 아빠 좀 쉬어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으면 좋았을 것 같아"
아내의 말에 은우는 '맞는 말'로 받아쳤다.
"근데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생각을 표현하는 건 내 자유잖아."
역시 은우는 강적이다.
"그래. 은우가 그렇게 말하는 것도 은우 자유지. 뭐 나쁜 말을 하거나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엄마 아빠가 요새 소비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서 은우 말이 좀 불편했던 것 같아."
"응. 근데 난 그냥 지금이 좋아. 아빠가 병원 가는 건 싫지만. 그리고 만약 엄마가 일한다고 해도 가족이 보내는 시간이 줄어드는 건 똑같잖아. 나는 그냥 지금처럼 살았으면 좋겠어."
6.
식사를 마치고 샤워를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던 중, 은우의 말이 불편했던 진짜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역시 생각 정리에는 샤워만 한 게 없다.)
"은우야, 사실 이 말을 꺼내게 된 계기가 있어. 얼마 전에 아빠가 읽은 책에 나온 일화인데, 어떤 사람이 연극배우가 되고 싶어 했는데 아버지가 반대해서 다른 일을 선택하거든. 그 사람은 경제적으로는 안정되게 살았지만 평생 삶에 대한 불만과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가지고 살았다고 하더라고. 그 이야기를 읽고 나니 아빠가 너희들한테 항상 꿈을 좇으라고 말하면서 아빠는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게 불편한 마음이 들었어.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던 건데 은우가 현실적인 대답을 하니 불편한 마음이 생긴 것 같아."
"응. 근데 나는 꿈을 좇으면서 살 거야."
"그래. 근데 만약 현실과 이상중에 선택을 하게 되면 어떨까? 은우가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고 했잖아. 은우가 천문학자가 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이 좋아지면 은우 주위에 있는 사람들 100명 중에 엄마, 아빠 빼고 98명은 은우한테 차라리 의대에 가라고 할걸?"
"할머니도?"
"응. 아마도. 아빠는 그때 은우가 경제적 안정보다는 꿈을 고수했으면 하거든."
"아빠, 근데 천문학자도 돈 많이 벌어."
"음.. 그래? 근데 정말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천문학자를 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천문학자도 당연히 일부는 돈을 많이 벌겠지만 보편적으로는 의사에 비해서 돈을 많이 벌 확률이 높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럼 이러면 되겠다. 일단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선택해서 돈을 많이 번 다음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거야. 이름 하여 돈 많은 백수!"
"하하.. 그래.. 아빠도 그렇게 하고 싶어. 근데 사실 사람이 욕심이 끝이 없잖아. 돈을 벌고 쓰기 시작하면 버는 만큼 쓰게 되고 그만큼 또 벌어야 하니 적당한 수준에서 멈추기가 쉽지 않아. 근데 사실 소비를 할 때 일시적으로 행복할 수는 있어도 같은 만족을 계속 얻을 수는 없거든. 결국 얼마를 버는지 보다 어떻게 사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아. 부자들 중에서도 검소하게 사는 사람도 많은 거 알지? 아무튼 아빠 마음은 은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야. 그리고 지금 우리 삶의 방식을 아빠 마음대로 막 바꾸거나 하지는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7.
사실 이 이야기에는 반전이 하나 있다. 처음에 인용한 일화가 주는 교훈은 "사람은 꿈을 좇으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 일화를 통해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이에게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투사하지 말고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기 위해 책을 다시 읽으면서 나는 불현듯 소름 끼치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꿈을 좇는 삶을 살지 못했기에 아이들이 그런 삶을 살았으면 하는 것 또한 투사가 아닐까?' 결국 내 행동 또한 내가 그토록 비판했던 '내가 못 이룬 꿈을 아이들을 통해 대신 이루게 하려는 부모들'의 행동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었다.
경제적 안정을 선택하든, 꿈을 선택하든 결국 그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아이들이다. 부모로서 내가 가본 길에 대한 경험과 내가 못 가본 길에 대한 이상을 말할 수는 있지만 결국 선택은 아이들의 몫인 것이다. 내가 해야 될 일은 아이들의 선택을 믿고 힘들어할 때 지지해 주는 것이지 인생의 길을 대신 정해주는 것이 아니란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8.
인생은 앞일을 예측할 수 없기에, 그러면서도 늘 사람을 시험에 빠지게 하기에 흥미진진하다. 저녁 식사를 하며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삶에 대해 이야기했던 정확히 바로 다음날, 차량을 맡겨 놓았던 정비소에서 연락이 왔다. 중요한 부품들이 고장 났다는 설명 뒤에 이어진 수리비 견적은 입이 쩍 벌어지는 액수였다. 설상가상 수리 기간도 한 달이나 걸린다고 한다. 열흘 뒤에 차를 가지고 육지로 휴가를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심지어 냉장고도 같은 시기에 수명이 다하는 악재가 겹쳤다. 맙소사.
생각지도 못했던 큰 지출들과 차질이 생긴 휴가 일정에 우리 부부의 평정심은 알게 모르게 흔들리고 있었다. 결국 그날 저녁 식탁에서 예전 같았으면 그냥 넘어갔을 아이들의 사소한 투닥거림에 그만 예민하게 반응하고 말았다.
그날 밤, 자기 전 누워서 아내와 한참을 대화했다.
"적게 벌고 덜 소비하면서 사는 삶을 얘기하자마자 목돈이 깨지네.. 배부른 소리 해서 벌 받았나 보다."
나의 농담에 아내는 '꿈을 좇는 삶' 이라던가 '도전하는 삶' 같은 것을 말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우리가 어느 정도 안정을 이루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나도 공감한다. 우리가 지금처럼 책을 읽고 대화하며 인생관과 가치관을 바꿔나갈 수 있었던 것 또한 결국 우리가 먹고사는 문제에서 해방되어 여분의 시간이 생겼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가 뭐 대단한 사람이 되었거나 인격적으로 훌륭해서가 결코 아니다. 그 증거로 이런 사소한 트러블에도 평정심이 흐트러지지 않는가. 내 그릇이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면서 무슨 도전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한 것인지. 역시 사람은 늘 겸손해야 한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어느 배부른 자의 몽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몇 가지 교훈을 얻었다면 안정 속에서 상상하는 역경과 현실의 그것 사이에는 큰 갭이 있다는 것, 시련은 사람을 옹졸하고 약하게 만들며 그 순간에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째튼, 목돈이 들어갈 일이 생겼으니 당분간은 도전이고 꿈이고 일단 접어두고 열심히 일을 해야겠다. (기왕이면 즐겁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언젠가 도전하게 될 새로운 인생을 위해 나의 배부른 몽상 일기는 이곳에 잘 갈무리해 놓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