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초이 Aug 05. 2020

카프카를 가진 모든 아버지에게

아버지에게 전해지지 않을 편지

아버지,

프란츠 카프카의 책을 덮으며 아버지를 수없이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 섞인, 아버지에게 절대로 전해지지 않을 우울한 편지를 쓰기 위해 준비한 종이 아래 쉽게 움직이지 않는 펜을 쥔 채 많은 날, 많은 시간 고민했습니다. 한 문장씩 빡작지근히 써 내려가는 카프카의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나 또한 이 편지가 아버지에게 영원히 닿지 않길 바랍니다.


아버지라는 사람을 생각하다 몇 시간 째 시퍼렇게 멍든 하늘이 계속 땅으로 꺼져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내게도 아버지란 존재가 왜 이렇게 까마득하게 느껴지는지를,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것만 같은 이 거리를 나는 왜 좁힐 수 없는가를 곱씹었습니다.

나에게 아버지는 경직을 주는 가장 큰 거인이셨습니다. 나에겐 아프고 시린 가족사 하나 없는데도 기억 속 아버지는 거대한 암벽이었습니다. 암벽은 부딪치면 부딪힐수록 스러질 텐데 나의 암벽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올곧은 대상이셨습니다. 우리 집안의 대장은 다른 세계와 마찬가지로 여차할 것 없이 아버지였고 그런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아이들에게 엄격하길 바라셨습니다. 가장의 임무를 수행하고자 했으며 수도 없이 짓눌리는 책임과 시달리는 압박받는 사회 속에서 그 권위를 인정받길 바라셨습니다. 

어린 시절, 퇴근 종을 울리는 자동차 시동 소리가 꺼지면 우리는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어머니에 의해 급히 각자의 자리인 책상과 의자로 앉혀졌습니다. 퇴근하신 아버지의 눈에는 멍한 아이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보이지 않고 책상에 앉아있는 우리의 모습만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에 내심 흡족해하시곤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가셨습니다. 그 멍한 아이의 가장 좋아하는 꿈은 무엇인지, 오늘은 무엇을 했는지,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는 채로. 아버지의 넓은 등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가장 아이답게 자라는 것은 학급에서 우등생이 되는 것만이며, 크게 성공해 많은 돈을 만져야 하는 것만이라고 아버지는 생각하셨는지요. 아버지는 공부하는 상태가 아니더라도 펼친 책을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공부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믿는 분이셨지요. 어머니는 대항했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습니다. 아이라는 과정은 공부할 때이며 그 상황이 가장의 임무를 수행할 때 보여야 하노라고 늘 입에 담으셨으니까요.


아버지는 기억하지 못하시겠지요. 나라는 아이를, 자식을 있는 그대로를 궁금해하거나 묻지 않으셨지요. 내가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들을 인정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으셨지요. 내가 가진 불만을 묵인해 버리셨지요. 아버지는 언니와 내가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우리 또래의 더 뛰어난 친구들과 비교하셨습니다. 우리는 미숙한 존재였지만 완벽해지고 싶었습니다. 비교하지 않을 대상이 없어질 때까지 만족하실 때까지. 하지만 만족하면 만족할수록 비교의 대상은 더욱 커졌고 고모의 자식들과도 비교당하면서 어린 나이에 아버지에 대한 경직이 생겨났습니다. 서로의 암벽은 절대로 스러지지 않을 것처럼 퇴적되어 지금의 상태에까지 이르렀는지는 기연가미연가합니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은 매우 고팠고 외로웠고 견디기 어려웠다는 것을 나는 아직 잘 모릅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 내게는 할아버지인 그분을 아주 어린 시절 여의셨지요. 홀로 아버지와 고모를 키워야 했던 할머니께서는 누구보다도 강인하고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여성이 되셨겠지요. 그때의 고픔, 쓰라린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던 고단한 시간을 잊지 못하시겠지요. 아버지의 성공만이 큰 역할극으로 다가왔겠지요. 아버지는 큰 노력을 하셨습니다. 생계를 꾸리고 가족을 보살피고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노력한 공이 매우 크셨습니다. 아버지 세대의 시기를 견뎌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궁핍에서 헤쳐 나온 그간의 여정이 얼마나 뿌듯하실지 그 고통을 겪어보지 못한 내가 감히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측은지심의 꽃가루를 아버지께서 흩날리지만 않았어도 어쩌면 이 편지는 영영 쓰이지 않았을 겁니다. 


아버지는 때로 제 가슴에 흉터같은 암벽으로 남아있습니다.

대학생이 되고 한껏 멋 부린 그 날, 아버지는 지나가면서 제게 ‘화냥년’ 같다고 말씀하셨지요.

그 날 화장인지 눈물인지 뭔지도 모른 채 범벅이 되었고 어머니는 아버지와 대판 싸우셨습니다. 그렇게 스친 언어들을 기억하시는지요. 아버지는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의 행실을 보실 때마다 어머니에게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켜서 애가 이 모양이냐’고 하셨지요.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두 사람 모두의 자식입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연인이셨습니다. 아버지의 세상이자 환희였습니다. 어째서 양방향의 결실을 한편으로만 치켜세우고 밀어내셨는지요. 우리의 잘못은 왜 어머니의 불찰과 교육의 부재라고 생각하시는지 아무리 돌이켜봐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없는 기억이 나에게는 고스란히 새겨졌습니다. 

가시고기나 원숭이, 사자 유의 일부 동물을 제외하고는 ‘아버지’라는 존재는 찾기 힘들다고 하던가요. 우리들의 ‘아버지’는 관습적이고 다분히 사회적일 뿐이었습니다. 


유년 시절 특출 나지도, 모나게 상처 받지 않은 기억 속에 어색한 내 아버지의 모습에 문득 현재의 아버지란 어떤 존재인가 생각합니다. 

언제까지나 그 자리, 그 권위, 그 위엄을 지켜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오늘 밤이 유난히 서슬 펐습니다. 나의 암벽은 내 세상이 끝난 후에도 변치 않아야 하는데 부식되고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습니다.

권위적인 한 집안의 가장이 돈 버는 능력을 상실할 때, 성가신 벌레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은 아닐지 걱정하다가도 이내 권위를 비웃고는 아버지를 무시했습니다. 가족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들으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능력만이 벼슬이라도 되는 양 행동한 아버지는 내가 정신적으로 필요로 했을 때 사라졌다가 가장 체념하고 있을 때에서야 나타나셨습니다.


모든 이들은 다른 환경과 인생과 성격을 가졌는데 왜 아버지라는 존재는 존중과 존경을 받고 훌륭한 아버지여야 한다는 공통된 바람을 가지는 걸까.

언젠가 모든 일을 떠나 영휴를 위해 낡음을 준비해야 하겠지요. 가진 것 없이 집 걱정하며 전전긍긍 내려놓지 못한 삶의 고된 것들은 생계라는 주름이 한 겹 생길 때마다 나는 한편으로 고민합니다. 수십 년간 그렇게 일하고 인생을 송두리째 도둑맞은 것처럼, 가정을 위해 자신을 포기한 것처럼 살며 일만 해온 아버지들을. 취미 같은 자신의 시간을 보내지 않고 돈만 버는 내 아버지는 고독에 묻혔습니다. 


나는 성스러운 골방에서 낙관주의자처럼 입술에 펜을 지그시 물고 다른 너머의 세계에 빠져있는지를 생각합니다.

나도 알고 있는 부족함을 애써 외면하고 지난날의 동상이몽은 왜 끝이 나지 않는 걸까, 괴롭습니다.

오늘도 남들의 일상은 굴레에 벗어나지 않은 궤도를 달리고 걷지만 나는 끝없이 보인 가시밭길 아래, 찔리지 않은 채 쳐다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버지는 모른 채.

아버지는 자신이 얼마나 더 일해야만 영휴를 즐길 수 있는지 알지 못한 채.


거무튀튀한 깊은 밤, 매번 돌아오는 쓸쓸한 등 너머를 언젠가 넘어서 마주 앉고 싶습니다.

오늘 밤도 멍든 하늘은 너울너울 말없이 창문만 두드리다 도망칩니다.

매일 그래 왔던 것처럼, 그것 또한 까막눈처럼 눈치채지 못한 채.

작가의 이전글 2019년을 톺아보며, 독서 결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