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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취생 Sep 03. 2023

통계적 확률과 인생에 관하여(2)

진인사대천명

 <통계적 확률과 인생에 관하여 (1)>에서 분명 나의 인생은 나의 것인데, 나의 일상들을 관찰하면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닌 것 같다고 주장하였다. 인생 전체로 보면 내 의지대로 살아온 것 같지만, 그 인생을 쪼개서 관찰해 보면 나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학창 시절이 그러했고, 회사 생활이 그러했으며, 카페를 그만두고 한 취준 생활이 그러했다. 이렇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을 나는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항상 우리는 그 질문의 의미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 나에게 '인생에서 겪는 모든 일들이 의미가 있는 걸까?'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아니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럼 인생에서 겪는 모든 일들은 아무 의미가 없는 걸까?'라고 물어본다면 그 또한 나는 "아니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살아보니 인생은 의미 있는 선택과 의미 없는 선택의 합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나의 생각을 동전 던지기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동전을 10번 던져본다. 정확히 앞면이 5번은 나올까? 결론적으로 나올 수도 있고 안 나올 수도 있다. 10번의 동전을 던졌을 때 5번의 앞면이 나올 확률은 10 C5 X(1/2)^5X(1/2)^5=0.2461로 약 24.6% 정도이다. 만약 누군가와 동전 10번을 던졌을 때 앞면이 나오는 횟수 맞추기 내기를 한다면 5번 앞면이 나온다에 배팅하면 이길 확률이 가장 높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확률이 높다고 꼭 이긴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우리의 사는 모습이 위의 동전 던지기의 확률을 계산하고 배팅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매일매일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그 선택은 이렇게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확률도 있지만, 과거 통계를 바탕으로 결정되는 확률도 있다. 그리고 대체로 사람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통계적 확률로 오늘의 선택을 실행한다고 생각한다. <통계적 확률과 인생에 관한 여(1) 참조>


 이렇게 나는 오늘도 무엇인가 선택하는 시간을 보내고 그 선택들은 어떤 의미 있는 현재를 만들어 냈다. 우리는 선택의 중요성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다.  이번에는 의미 있는 선택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나는 그 의미 있는 선택을 <삼국지>에서 나오는 명언이 가장 잘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같은 책이라도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경험을 얻는다. 그리고 작품이 명작일수록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다양한 경험을 선사한다. 만약 하나의 경험밖에 선사할 수 없는 작품이 있다면, 그것은 작품이라기보다 상품(사고파는 물건)에 가깝다.)  




 진인사대천명 (  : 다할 진,  : 사람 인,  : 일사,  : 기다릴 대,  : 하늘 천,  : 명령할 명)



 <삼국지>에서 제갈량은 관우가 조조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생각하는 대의를 위해 관우에게 전략을 알려주고 조조를 죽이라는 지시를 한다. 그 전략은 관우만이 성공할 수 있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관우는 조조를 포위하였지만, 그 마음의 빚 때문에 퇴로를 열어 살려준다. 이 사실로 제갈량은 관우를 처형하려 했지만, 유비의 청으로 처형을 거두며,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을 한다. 


 제갈량은 조조를 죽일 수 있는 확률을 계산했을 것이고, 그리고 그 일은 관우가 가장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관우에게 실행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조조에게 신세를 졌던 관우가 어떻게 행동할 지에 대해서는 제갈량이 통제하기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제갈량은 할 일을 다 했고, 하늘의 명령을 기다렸다. 그리고 관우도 자신의 할 일을 다했고, 하늘의 명령을 기다렸으며, 유비 또한 자신의 일을 다하고 하늘의 명령을 기다렸다고 생각한다.


 살다 보면 삼국지처럼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은 아니지만, 어떤 지시를 받고 그것을 수행해야 하는 일들은 자주 일어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진인사대천명을 실천해야 할 때가 있다. 


 며칠 전 회사에서 품질 보고를 받은 COO가 몇 가지 지시사항을 내렸다. 그리고 그 지시사항은 고객사의 도움 없이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였고, 나의 팀장은 과거 고객사에서 근무한 나의 경력 때문인지 나에게 그 지시사항을 알아보라고 이야기했다. 사실 나는 이런 지시가 참 불편하다. 과거 그들과의 관계를 빌미로 현재 나의 이익을 얻어내야 한다는 것이 마치 평소 연락이 없다가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돌리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직장인이고, 월급을 받기 위해서는 수행해야 하는 일이다. 


 제조업 회사는 효율을 높이기 위해 생산시스템을 조직한다. 그리고 조직된 시스템은 대기업으로 갈수록 세분화되어 있고, 전문화가 된다. (기능직 조직이라는 명칭이 있다) 이 말은 내가 받은 지시사항을 전 직장 동료들에게 물어보더라도 모를 확률이 높다는 말이 된다. 참고로 현재 내가 근무하는 회사의 품질 조직은 2팀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전 직장은 10팀이 넘었고, 지금은 20팀도 넘는 것 같았다. 


 역시 예상대로 나의 선배들은 내가 물어보는 질문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했다. 심지어 '야 왜 그런 걸 조사하냐.'라며 오히려 약을 올렸다. 하지만 난 출장 목표를 달성해야 했기에 전략을 세웠다. 


 1. 최대한 외면적으로 불쌍한 척을 한다.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 타인의 차이에 민감할 때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차이는 내면적 차이와 외면적 차이로 나뉘는데,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부분 내면적 차이는 둔감한 편이며, 외면적 차이에는 민감한 편이다. 왜냐하면 내면적 차이를 알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만, 외면적 차이는 짧은 시간에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나보다 얼마나 다정한지. 친절한지, 현명한지와 같은 내면적 차이보다 연봉이 얼마인지, 집이 자가인지에 대한 외면적 차이는 한 번의 질문으로 알 수가 있다. 일단 외면적 차이를 발견했을 때, 자신이 타인보다 유리하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면 대체로 두 가지 행동 중 하나를 선택했다. 이 선택은 대체로 평소 상대방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느냐가 영향을 준다. 상대방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월이라는 감정이 생겨 갑질이라는 선택을 하게 되고,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연민이라는 감정이 생겨 도와주는 것을 선택한다.


 그래서 나는 협력사의 고충을 최대한 어필하며, 내가 얼마나 힘들게 회사 생활을 하는지 전 직장 동료들에게 설명했다.


2.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에게 부탁한다.


 나는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을 잘 알아보는 편이다. 딸의 탄생은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이 인정 욕구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 인정 욕구의 그릇은 사람마다 그 크기가 다른데, 그 그릇에 애정과 관심으로 일정 량만큼 채워주지 못한 채로 성장하면 그 사람은 애정 결핍이 있는 성인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 그리고 그런 성인은 자기 스스로에게나 주변사람에게 비극을 주게 된다는 것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관련 경험은 '비극의 대물림'이라는 글 참조)


 하지만 애정 결핍이 없으면서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에게 어떤(도덕적으로 문제 되지 않는) 일을 부탁할 경우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확률이 높아진다. 그들은 타인을 도우며 스스로 만족을 얻기 때문에, 타인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할애한다. (다시 말해 타인을 돕는 것이 자신을 돕는 것이라 믿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경험상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많을수록 나의 일상을 행복하게 할 확률이 높아졌다. 그래서 나 또한 그런 구성원이 되어 주변 사람의 일상을 행복하게 할 확률을 높이려고 노력 중이다. 


 그렇게 나의 전략으로 한 명의 선배가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회사 내 여러 인맥에게 전화를 하여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알게 된 정보를 바탕으로 어제 보고서를 완료했고, 이제 회사에서 하늘인 COO의 명을 기다리고 있다.


 '진인사대천명'처럼 살아보니 인생에서 의미 있는 일이란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을 선택하는 일이고, 그에 따른 결과에 의미를 부여하는 선택은 사실 무의미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결과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결과가 중요하지 않다면, 그 결과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과정과 결과 중 무엇이 중요하냐라는 질문과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를 정할 때 과정과 결과 중 무엇이 중요햐냐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과거 나는 이런 다른 문제를 같다고 착각하여 힘들었었다. 지금도 가끔 이런 착각을 할 때가 있다. 한때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를 내가 회사를 다니는 결과에서 찾은 적이 있었다. 그렇게 되니 나 스스로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리고 나를 부정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니 내 안의 방어기제가 작동하여 나쁜 생각과 말들로 내 주변의 존재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경험상 타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의 내면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감정으로 가득 차있다. 대체로 타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을 인성의 문제라고 보지만, 어쩌면 그 들은 더 이상 자신을 부정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 타인을 부정할지도 모른다.)  


 운이 좋게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백수가 되었다. 백수가 되고 여유가 생겼다. 여유가 생기니 걸음을 잠시 멈추고 사물과 사람을 관찰하게 되었다. 꽤 오랜 시간 백수로 지내며 나 자신에 대한 부정을 많이 감소시켰다. 다시 회사를 다니게 되었고, 가끔 결과에서 의미를 찾는 실수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예전만큼 힘들지는 않다. 


 왜냐하면 의미 있는 인생은 의미 있는 일상이 합이고, 의미 있는 일상은 의미 있는 선택의 합이며, 의미 있는 선택은 내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진인사대천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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