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론적으로는 끈기가 부족하지만 스타트만큼은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시작은 열심히 하는데 임계점을 넘을 때까지 끌고 가지 못하고 흐지부지 끝내는 게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뭔가 안 하던 걸 시작해야겠다 마음먹으면 희한하게 몇 번은 하게 되고, 그 몇 번을 하고 나면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쉽게 붙잡히는 내가 종종 신기한데, 그 기세가 생각보다 빨리 꺾인다는 것에 늘 아쉬웠다.
인스타 인연 중에 열심히 운동하시는 분들이 많다. 꾸준함의 산 증인들.
나도 나에게 좋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오래 해나갈 힘을 얻고 싶었다. 그만두지 않으려고 열심히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여름휴가를 마친 8월 첫 주부터 뛰어야겠다는 생각이 또다시 불쑥 들어서 한 달째 운동을 이어오고 있는데 들쑥날쑥 하지만 그래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다. 흐지부지하지 않으려면 이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습관으로 자리 잡도록 횟수를 늘리고 작지만 뇌에 각인될 정도의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야 한다.
아직 나의 달리기는 그야말로 쉬엄쉬엄 뛰는 수준이다. 뛰다가 걷다가를 반복하면서 심박수를 조금씩 올린다. 더운 날씨가 큰 몫을 하니 금세 숨이 차고 땀이 나고 피가 도는 느낌이 든다. 뛰는 시간은 30분이지만 운동 시간 전체를 보면 공원 이동, 스트레칭 합해 1시간 정도 걸린다. 일주일에 세 번만 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하면서 매일 하겠다는 강박은 내려놓았다.
2주 전쯤 러닝 10회 차일 때였다. 스스로 정한 달리기 시간 30분을 내내 뛰는 것은 힘들고 오히려 지쳐버릴 것 같아 매번 공원 트랙을 뛰다 걷다 했는데 이 날은 퇴근 후였음에도 유난히 다리가 가벼워서 '어? 좀 더 뛸 수 있겠는데? 한번 해볼까!?'싶어졌다. 저녁 러닝에 어울릴 플레이리스트를 선택하고 재생.
초저녁. 가벼운 몸으로 음악을 들으며 달리는 나. 아.. 참 오글거리지만 솔직히 조금 멋지게 느껴졌다. 이게 무슨 일이지 싶을 만큼 다른 날보다 덜 힘이 드는 게, 이 날은 모든 것이 달리기에 맞춰진 것처럼 몸이 편안했다. 그렇게 계속 뛰다 보니 결국 달리기로 30분을 채우게 되었다. 평균 페이스 8'17"/km, 평균 심박수 153 bpm. 무리 없이 해냈다.
누군가에겐 고작 30분 일지 모르지만 나는 이 완주가 정말 기뻤다. 달릴 때 머리카락이 폴짝거리는 그림자에도 신이 났고, 팔에 맺힌 땀방울들이 가로등 아래서 윤슬처럼 반짝일 때는 근사한 하루를 보냈다는 뿌듯함이 일었다. 이런 순간들이 내가 나를 믿게 하고 내일 다시 운동화를 신게 하는 것 같다. 물론 다음 11회 차 달리기에는 그 컨디션이 재생되지 않았지만 그런 반전 또한 다시 뛰게 만드는 요소가 되어준다.
마음먹은 것을 그대로 행하고 해낼 때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 같다. 운동은 떨어진 자존감을 회복하고 또 적당한 상태로 유지하는 가장 쉽고 빠른 길이라 확신한다. 내가 제일 컨트롤하기 쉬운 존재인 나를 움직여 땀을 내면 더 좋은 일이 일어난다. 애써 운동을 하고 나면 정크푸드 대신 싱싱한 채소와 닭가슴살로 샐러드를 해 먹게 되는 것처럼 나에게 좋은 일을 하면 또 다른 좋은 행동을 불러오는 것이다.
그런 선순환의 시간들이 조금씩 쌓이면 일상에서 받는 타격감이 줄어든다. 최면에 걸리듯 그냥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하면 될 거라는 단단한 마음이 자연스레 생긴다. 이번 달리기는 지속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