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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Nov 30. 2023

심장이 메트로놈 220 같았어

딸아이 피아노 콩쿠르대회의 경험

그저 취미로 5년째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 딸아이 덕분에, 집에서도 종종 아이의 피아노 연주를 듣는 일이 참 좋다. 평소 찾아 듣지 않는 클래식 곡을 아이가 배워 와서 연습 삼아 연주하는 걸 들으면 아름다운 선율을 타고 아이의 성장이 귀로 들리는 것 같아 마음이 뭉클해지곤 한다. 악기 한 두 개 다룰 줄 알면 삶이 한결 풍요로워진다고 믿기에 나는 학원에 당부를 했었다. 진도는 중요하지 않으니 그저 흥미 잃지 않고 즐겁게 피아노를 배울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렇게 천천히, 꾸준히 배우고 있는 아이가 기특하다. 나는 살면서 무얼 렇게 오랫동안 배운 적이 있던가. 나 또한 어린 시절 피아노 학원에 다닌 적 있었지만 틀릴 때마다 손등을 때리는 선생님이 싫어서 애초에 그만두고 피아노와 멀어지고 말았던 기억만 남아있다.


지난 8월, 피아노학원에서 콩쿠르대회에 참가한다고 알려왔다. 개인의 참가여부는 자유였다. 딸은 작년에도 잠시 고민하다 연습이 고되다는 말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했고, 본인의 의지가 중요한 일인 만큼 나도 강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배웠으니 중학교 가기 전에 큰 무대에서 한번 연주해 보는 경험도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참가할 학생은 회신을 달라는 학원의 메시지에 나는 아이에게 넌지시 권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말해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작년에 다른 아이들이 대회를 다녀온 후 실력이 급상승한 것을 목격했었다고 한다. 자신보다 늦게 시작한 아이들이었는데 대회 참가를 위해 연습하는 동안 눈에 띄는 성장을 이룬 것을 보고 다음엔 자신도 한번 해볼까 생각했었다고 말이다. 스스로도 느낀 바가 있었으니 나는 더 말하지 않고, 힘든 연습과정을 견뎌야 하는 만큼 잘 생각해 보고 참가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얼마 후 아이는 조심스럽게 도전 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참가의사를 밝히고 선생님들로부터 연주할 곡을 선정받았다. 곡명은 < 퍼스트 왈츠 >.

레벨 대비 너무 어려운 곡을 받은 것 같아 내심 걱정되었지만 선생님들이 가능성을 보고 정해준 곡을 마다할 수도 없었다. 아이가 엄청난 연습 과정을 감당해 낼 수 있을지 중도 포기하지 않을지 걱정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준비하는 3개월 동안 아이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평소 레슨과는 다른 선생님의 강도 높은 지도와 긴 연습시간. 아이는 집에 오면 한 번씩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부터 시작해서 그 이상 어떻게 더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도 하고, 학원을 그만두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지만, 하겠다고 한 이상 힘들어도 다음날 다시 연습을 이어가야 했다. 스스로 한 선택에 책임을 지고 해 나가는 것. 힘들고 하기 싫다고 중단하지 않는 것. 안 되는 부분을 집중해 연습하고 그러면서 조금씩 안정감과 나아짐을 느끼기까지. 그 금쪽같은 여정을 나는 옆에서 들어주고 다독여주며 지켜봤다.    


대회 날짜가 다가오니 긴장하면서도 자기는 실전에 강하다고 연습한 대로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자기 암시도 하면서 부담감을 이겨내려 하는 모습을 보며 어느덧 준비하는 사람의 자신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11월 18일. 드디어 대회가 진행되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들어 푹 자고, 밥도 든든히 먹고, 학원에 들러 손 풀기 연습까지 마쳤다. 대기하는 동안 손이 차가워지면 쓸 핫팩과 청심환까지 챙겨서 대회장에 도착했고, 딸과 나는 청심환을 반씩 나눠마셨다. 연주하는 건 아이인데 지켜보는 나도 떨렸다.


처음 가 본 피아노 쿵쿨대회는 심사위원 1분 30여 초 정도 연주를 듣고 평가를 다. 입장할 때와 퇴장할 때 인사도 필요 없었다. 번호가 불려지면 나와서 바로 연주하고 심사위원이 다 들었다고 종을 치면 하던 연주를 즉시 멈추고 바로 퇴장한다. 예의라고 하는 절차가 단호히 생략되고 나오자마자 본론만 말하듯 준비한 연주만 들려주는 방식으로 대회가 진행되었다. 생소했지만 많은 참가자를 단지 연주만으로 판단하기 위해 필요한 방식 같기도 했다.


아이는 6학년 중 첫 번째로 연주를 하게 되었다. 첫 번째라 더 긴장할 것 같았는데 차라리 맨 처음이 아이에겐 비교치가 없어서 더 나았던 것 같다. 다른 아이들도 모두 실력이 좋아서 나중에 했다면 더 신경 쓰느라 어려웠을지 모른다. 번호가 불리고 무대로 나오는 딸. 당차게 의자 위치를 조정하고 앉더니 숨도 고르지 않고 건반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영상을 찍으며 아이를 보았다.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없었겠지만 그동안 수없이 연습했던 대로 그저 습관처럼 흐르듯 연주하는 것이 보였다. 순간 몰입해 심사위원이 종을 칠 때까지 강약 조절 잘하며 음이탈이나 버벅거리는 실수 없이... 사실 자신이 가진 최고의 실력을 보여줬다 할 만큼 잘 마쳤다. 큰 무대에서 떨지 않고 실력을 발휘한 아이가 참으로 대견했다. 연습의 시간, 노력의 시간은 배신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는 시간이었을 거라 생각되니 값지게 여겨졌다.


연주를 마치고 나온 딸에게 박수와 포옹으로 격려해 주었다. 아이는 남다른 소감을 남겼다.


"엄마, 진짜... 심장이 220에 맞춘 메트로놈처럼 뛰었어. 근데 나 좀 잘한 것 같아. 헤헷."


이런 음악적인 소감까지! 그래, 스스로가 만족했다면 되었다. 학원선생님들도 이 곡 주고 걱정 많이 했는데 정말 잘했다고 칭찬하셨다. 집에 오는 길, "나, 다음에 또 참여할까?" 말하는 아이를 보니 이날의 만족감이 지난 고생을 씻어준 것 같다. 아이의 성장일기로 우리에게 오래도록 재생될 또 한 편의 추억과 경험이 생겨서 기쁘다. 스스로 배우기를 멈출 때까지 계속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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