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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Sep 18. 2022

#6 _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잖아요.

재능이 없다는 말로 잠재력에 찬물을 끼얹지 않기로 해요.

GRIT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TED 강연에서도 저자의 연설을 들은 적이 있고, 그릿이라는 개념에 대해 여러 콘텐츠를 통해서 접하기도 한 만큼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이번에 100쇄 기념 리커버리 에디션이 나온 것을 보고 제대로 한번 읽어봐야겠다 싶었다. 아직 책 초반이지만 재능을 중시하는 것에 대해 읽으며 내 아이에 대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예전 글에도 썼다시피 첫째는 음악에 관심이 많다. 1~2년 전부터 자신이 음악을 한다면 엄마 어떨 것 같은지를 몇 차례 묻더니 올해 초 본격적으로 음악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처음 아이가 꺼내 든 꿈은 래퍼였다. 지금은 랩을 포함해 여러 음악적인 부분에 관심을 두고 Input의 시간을 갖고 있는데, 이어서 그림 그리는 것과 3D 드로잉 등에도 관심이 간다고 한다.


아이가 래퍼를 꿈꾼다는 사실이 교실에 알려지면서 초반에 친구들의 호기심을 끌었다가, 연습이 얼마 되지 않은 상태로 학교 장기자랑에서 어설픈 랩 실력을 보이는 바람에 그 꿈이 아이들 사이에서 중2병으로 전락된 상황임을 최근에 알았다. 자신은 진지한데 친구들이 우습게 여기는 것 같아 상처가 된다고 했다. 섣부른 도전이 가져온 씁쓸한 결과를 경험한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자양분이다. 해보지 않고서는 겪지 못할 상황과 기분일 테니 말이다.


중3 2학기에 접어들어서 최근 담임선생님과 전화상담을 했다. 아이가 음악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선생님은 내게 아이가 학교에서 랩 발표를 한 적이 있다면서 조심스레 말씀하셨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잖아요. 어머니."라고. 그 말은 아이가 재능이 없는 것 같다는 뜻이었다.



내가 언뜻 듣고 봐도 아이에게 재능이라 할만한 요소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공부하기 싫다고 무기력하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오히려 다행스럽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학생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인정해 주고 싶은 마음이다. 재능이 없다고 지금 하고 있는 아이의 노력을 무의미하다 치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선생님은 초보 래퍼 지망생의 치기 어린 랩 한 번에 아이가 재능이 없는 것 같다는 말씀을 돌려서 전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은연중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 부모로서 부끄러워졌다. 이제 막 관심 갖고 시작한 아이인데 지금의 모습에 다들 '재능'이라는 잣대를 갖다 댄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시선을 받는 아이의 현실이 조금은 가혹하게 여겨졌다. 중학교 3학년, 이제 16살이다. 인생을 두고 봤을 때 이 어린 나이에 하고 싶은 거 맘껏 하지 않으면 언제 할 수 있단 말인가.


재능도 중요하지만 그릿의 관점으로 보자면 재능이 있어야만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며 공부하지만 그 아이들이 모두 재능이 있어서 공부하는 것은 아니잖나. 관심 있는 분야가 음악이라서 재능이 더 중요시되는지 모르겠지만 아이에게 재능을 강조하고 싶지 않다. 하고 싶은 것에 조금이라도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사고를 가르치고 싶지 않다. 재능을 떠나 무엇에든 도전할 수 있다는 생각, 긍정적인 마음, 생각처럼 되지 않아도 털고 다시 설 수 있는 힘을 가르치고 싶다. 아이에게 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어쩌면 학교 공부보다 더 중요한 포인트일지도 모른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학부모여서, 아이가 기본 학습은 가져가면서 하고 싶은 것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아이는 그렇게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여태 세상을 살아본 어른의 관점에서 여러 차례 이야기해도 아이에게 닿지 않는다. 하고 싶은 거 해보라는 우리의 말에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면죄부를 받은 것처럼 하고 있다. 밤을 새우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아침에 겨우 일어나 등교하니 학습 태도가 어떨지 뻔히 보인다. 잠을 안 자 짙어진 다크서클에 흐리멍덩한 모습을 볼 때 부모로서 가장 참기 힘들다. 압력솥에서 김이 치솟듯 열이 확 올라 한 번씩 혼을 내기도 하고, 건강을 해치는 생활만큼은 하지 말자고 좋게 타이르기도 하면서 지내고 있다.  


교과 공부는 하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음악을 듣고 가사를 읽고 써보며 생각을 한다. SNS에 자신의 오그라들 흑역사가 될 줄도 모르고 현재 자신의 생각과 상태를 올린다. 친구들의 비웃음을 사든 말든 지금 자신이 느끼는 그 바이브대로 표현하고 연습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는 아이가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논다는 것으로 여기지 않으려 한다. 자기 정체성을 강화하면서 무엇이든 자신의 의지대로 하고 싶어 하는 시기(다른 사람 얘기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에 자꾸 부모가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은 안전거리를 더 길게 만들 뿐이었다.


지켜보고 기다리는 것. 부모야말로 그것 외에는 특별히 할 게 없어 보이는데 그게 왜 그리 힘든 걸까.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 대한민국을 사는 학부모로서 아이를 이대로 두어도 괜찮을까 하는 걱정과 죄책감이 오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에게 확고한 뜻이 있다면 불안한 미래일지라도 스스로 부딪혀보고 결론도 스스로 내도록 해야 한다. 어차피 머리가 어느 정도 크면 부모 말보다 자신의 의지가 우선이다. 누가 봐도 인생이 망쳐지는 길로 가는 것만 아니라면 시간을 주는 것이 이 시기 부모의 역할이지 않을까. 그릿을 좀 더 공부하면서 내 아이의 그릿이 성장하도록 도와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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