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눈썹달 Sep 07. 2021

그럴 리가 없다면

믿음에도 연습이 필요해


이른 아침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큰 아이가 일어나서 안방으로 왔다.

어제부터 전면 등교 수업으로 바뀌어 오늘 학교 가는 두 번째 날. 제출해야 할 서류가 있는데 어제 나에게 미처 말하지 못해서, 내가 출근하기 전에 준비 부탁하려고 일찍 일어났다고 했다.


아이가 필요하다고 한 서류는 '결석계'였다.

결석? 이 녀석이 언제 결석 한 적 있던가... 집에 특별한 행사는 없었고, 얘가 아팠던 기억도 없고... 원격 수업하는 동안은 수업을 빠질만한 일이 없었는데. 뭐야.... 엄마 아빠 회사 가고 없으니 하루 그냥 땡땡이친 거야....??!!!!


잠시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온라인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아침부터 게임에 빠져있는 아들의 모습과, 무슨 일이 있었으면 부모에게 먼저 얘기를 했어야 하는데, 왜 말도 않고 결석을 했을까. 이 아침 이 순간에 나는 아이를 혼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양식을 찾아 출력하고, 반, 번호, 이름, 결석한 날짜, 학생 확인, 부모 확인.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아침에는 웬만한 일 아니고선 기분 상하는 소리 하지 않는다는 나만의 원칙에 따랐다. 이미 지나가버린 일이니 마음을 다스리며... 온라인 수업도 등교와 다름없는데 성실하게 임해야지 말도 없이 하루를 통으로 빠진 건 아주 잘못된 거라고, 다음부터 이런 일 없어야 한다고 짧게 말하며 마무리하는데, 얘기를 듣던 아이가 의아해했다.


"예~? 하루를 빠졌다고요? 아니... 1교시 못 들은 건데...? 아, 엄마. 죄송해요. 결석계가 아니라 결과계예요."



하아... 당시 상황 설명을 들어보니, 지난주 화요일 아침에 접속 오류로 인해 1교시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2교시부터 듣게 되어서, 1교시에 대한 결과계를 제출해야 하는 거였다. (접속 오류로도 결과계를 받는다는 건 오류 핑계를 대는 아이들이 많거나, 이 녀석 이번이 처음이 아닐 가능성도 시사한다.)


나도 서류를 다시 들여다보니 문서 타이틀이 (결석, 지각, 조퇴, 결과) 계.

4가지 중 하나에 해당될 때 표시하고 작성하는 확인서였다. 아이가 결석이라 말하니 4가지 중 결석만 눈에 들어왔었나 보다.




남자아이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었다.

내 기억에 결석이 없었다면 당시 상황을 한 번 더 물어보고, 서류도 다시 잘 봤으면 됐는데. 어째서 '결석계'라는 단어만 듣고 아이가 무단결석했다고 생각했을까.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왜 이럴 땐 나쁜 쪽으로 자연스레 확신하게 되는지. 부족한 믿음에서 비롯된 걸까. 믿음에도 연습이 필요함을 느낀다.


결석계를 쓸 때는 손끝에 기운이 없었는데, 결석이 아니라 1교시 결과였다고 하니 수정해서 다시 쓰는 손끝에 힘이 실렸다. 하루 결석과 1교시 수업 결과는 아주 많이 다르니까. 1교시 정도야 뭐,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지! 갑자기 쿨해져 버렸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설마 내가 작전에 말린 건 아니겠지 싶은 건 왜일까. 믿음이 부족해...!!)

매거진의 이전글 독서의 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