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눈썹달 Aug 28. 2021

독서의 맛

아이와 함께한 '긴긴밤'


요즘 책을 읽고 후기 기록하는 재미에 빠졌다. 

읽고자 하는 욕구가 읽은 것을 기록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주로 독서와 러닝 기록을 남기다 보니 그 둘을 좋아하는 이들과 자연스레 연결되고 있는데, 독서를 사랑하고 달리기를 사랑하는 이들이 정말 어마어마하다.


각자의 개성과 관심으로 가득 찬 책과 독서, 생각이 모인 곳곳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자신만의 가치관과 인생관으로 하루하루 알차게 살아가는 이들이 그토록 많다는 사실은

나를 겸손해지게 만들고, 더 나은 모습으로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된다.   




최근에 정말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있다.

'긴긴밤'이라는 책이다. '루리'라는 작가분이 글과 그림을 모두 지었다.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 작품이라는 것은 도착한 책을 보고서야 알았지만, 좋은 후기를 많이 접하기도 했고, 표지만으로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짐작되었다.


이 책은 내가 딸아이에게 추천해서, 딸이 먼저 읽고 내가 다음으로 읽었다.

평상시 책 읽을 때 좋은 문구에 줄 긋는 내 모습을 보아서인지 자신도 책에 표시하며 읽어도 되느냐고 묻길래, 물론 된다고 했다. 소심하게 연필로 살살 줄 긋는 나와 달리, 과감한 딸은 좋아하는 연두색의 형광펜으로 쭉쭉 긋고, 별표도 해두었다. 평소 그림에 관심이 많은 아이는 책을 읽는 동안 이 분 그림 잘 그린다, 그림이 참 예쁘다는 말을 자주 했다. 글도 아름답지만 그림에도 매료되는 작품이었다.


딸아이의 밑줄


아이가 표시한 부분을 보니 어떤 뉘앙스를 좋아하고 어떤 느낌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대체로 자신의 성격처럼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문장을 좋아했다. "불가능하지 않아." "바람보다 빨리 달리고 싶다며. 나를 믿어봐." "걱정 마, 친구. 우리는 바다를 찾을 수 있을 거야." 같은.


표시하며 책을 읽도록 했더니 아이의 독서 집중도와 이해도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문장 한 두 줄에 줄을 쳤다면 뒤로 갈수록 흐름에 있어서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문단, 나름 핵심이라 생각되는 문단에 표시를 했다는 것이 보였다. 그 기특함으로 내 마음이 즐거웠다. 다 읽고 나서 아이가 표시해 둔 부분을 보며 함께 이야기 나누니, 서로의 소감과 생각을 주고받게 되어 이야기에 대한 감상이 더 깊어짐을 느꼈다. 아이의 시각과 어른의 시각을 공유하는 과정 속에 생각의 확장이 일어나는 듯했고, 아이가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부연 설명을 해주어 아이는 무심히 남겨두었던 궁금함을 해소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하나의 책을 함께 읽어본 적은 처음이었는데 참 좋은 경험이었다. 왜 부모들에게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라고 하는지, 어른들도 왜 독서모임을 하며 책을 함께 읽는지 알 것 같다.

 

아이가 이렇게 나와 같은 책을 읽고 함께 대화할 수 있다니 정말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들었고, 고맙고 뿌듯했다. 내가 책을 계속 읽으니, 엄마에게 관심 많은 딸아이도 책 읽기를 전보다 지루하지 않게, 좀 더 편하게 접하는 것 같아서 상당히 기쁘다. 이번을 계기로 앞으로 딸아이와 함께 읽을 책들이 많아질 것 같아 기대된다.




(덧) '긴긴밤' 독서기록


'데리고' 가는 게 아니라, '함께' 가는 길이다.

'함께'라는 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 못하지만,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것은 서로를 살아가게 만든다.


동물들이 주인공이지만 이야기 속에서 지독히 아프고 외로운 인간과 그 곁에 함께 하는 인간. 

서로가 힘이 되어주며 긴긴밤을 지나, 함께 살아남고 각자의 길로 걸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코뿔소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함께 순리대로 살아가는 코끼리들에게서 진정한 가족의 모습을 생각했고, 검은 반점의 알을 만나 함께 품으며, 살면서 한 번도 한 적 없던 온갖 걱정을 하게 될 때, 한쪽이 걱정하면 한쪽이 희망적인 얘기를 해주었던 치쿠와 윔보는, 부모가 되어 걱정이 밀려드는 날들 속에 일상을 잘 지켜내고 있는 부부의 모습 같았다.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 행복의 의미를 송두리째 잃어버린 아픔을 간직한 채 복수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노든에게 일어나는 일들, 만나고 그리워하게 되는 친구들. 그들과 함께 끝없이 걸어가는 이 이야기는 가슴이 시큰거리고 먹먹하고 아름다우면서 깊은 위로를 준다. 


우리도 곁에 있는 이에게 노든이 되어준다면 어떤 긴긴밤이 와도 함께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긴긴밤 표지와 노든의 눈동자와 그 안의 펭귄


매거진의 이전글 칭찬 연습이 아직 더 필요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