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눈썹달 Jan 29. 2024

누구에게나 똥멍청이의 시간이 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엄격할 때가 많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자신에 대해서는 쉽게 자기 합리화를 동원하지만 타인이 자신의 기대를 벗어나면 작은 것에도 금세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는 경향이 있다.


얼마 전 지인과 식사하면서 나눈 얘기가 있었다. 지금 지인의 상사인 분이 상사로 오기 전 다른 부서에 있을 때 하도 일 못한다는 사람들의 뒷말이 많아서 걱정했었는데, 막상 상사로서 같이 일을 해보니 부족한 면도 있지만 의외로 듣던 것보다 명석하고 잘하시는 부분이 있더라는 내용이었다. 누구나 장점과 단점이 있는 건데, 멀리 있는 이들에게는 좋은 말보다 나쁜 말들이 더 빠르고 넓게 퍼지니 겪어보기 전까지 오해를 했었다는 것이다. 누가 누구를 잘한다 못한다 거침없이 평가할 있을까? 어떤 면은 잘하고 어떤 면은 못할 있는데 말이다.


직장생활을 오래 했어도 우리는 하는 업무가 정해져 있고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없다.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새로운 일을 처음 하게 되거나 다른 분야의 일을 이해해야 하는 상황처럼, 모르는 시기를 통과해야 할 때 잠시 멍청이가 되는 나 혹은 타인을 보게 된다. 당연한 과정인데 종종 그런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 환경에 놓일 때면 똥멍청이로 전락당하고 만다.


경험이 없거나, 잘 모르는 분야의 일에 대해 어떤 결과물을 빠르게 요구당할 때가 그 '기다려주지 않는 환경'의 예다. 그런 환경에서 그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은 압박과 긴장 속에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천천히 생각하며 정리해도 모자랄 판에, 당장 현황을 가져와보라고 하고 어떻게 된 거냐, 왜 내용이 다르냐 추궁당하면 일을 하다가도 자기가 한 일을 잘 모르겠고 믿지 못하겠는 패닉에 빠진다. 사람을 멍청이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면서 그 속에서 헤매면 능력 부족의 한심스러운 사람으로 취급해 버리는 것이다.


위와 같은 상황은 보통 위에서 닦달할 때 책임자가 실무자에게 자주 저지르는 실수다(본인은 실수라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위에서 쪼더라도 제대로 된 결과물을 가져가려면 본인 선에서 최대한 시간을 벌고, 실무자를 잘 챙겨서 같이 의논하고 검토하고 만들어가야 하는데, 야박하게도 책임자가 더 닦달하며 실무자를 자기와의 싸움을 하게 만든다. 잘 모르는 업무지만 정신 줄 부여잡고 어떻게든 지시에 따라 만들어 가면 수고했다고 하기는커녕 이래갖고 앞으로 어떻게 일할래 소리로 마무리된다.


책임자의 입장이 아니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꼭 그렇게 해야만 할까? 다그치고 몰아붙인다고 좋은 결과물이 나올까? 실무자가 어려워하면 도와주고 같이 불 끌 생각을 하지는 못할 망정, 나무라기만 해서 좋은 게 뭔가 말이다. 책임자는 일을 지시하고 지적하는 사람이 아니라, 직원을 배려하며 함께 이끌어 결과를 만드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일할 때 실무자의 상황과 처지를 헤아리고 배려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바람 앞에 촛불처럼 흔들리면서도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는 멍청이들이 그 시기를 잘 건너 단단한 심지로 자리 잡을 수 있게,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회사를 밝혀갈 수 있게 말이다.



*사진출처: Image by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맷집이 강하다는 말의 실체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