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드롱 Nov 10. 2023

세상 온갖 껍데기들에게

양파껍질을 벗기며


주황색 망 속에 꽉 끼어있는 양파를 하나씩 꺼낸다. 

단단하고 바삭하게 잘 마른 양파가 휴 살았다는 듯 데굴데굴 굴러나온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를 외치던 아들의 동그랗고 단단한 머리통같다. 

언제 이렇게 여물었나? 아기들은 머리뼈까지 말랑하다는 걸 애 낳고 처음 알았다. 밥풀같이 작고 투명한 손톱, 온 몸이 연한 새순같아 만지는 것도 겁이 났었지.


신나게 놀다 온 아들의 운동화처럼 양파껍질에는 흙이 좀 묻어있다. 거뭇하게 얼룩진 껍질을 벗긴다. 얇은 겉껍질은 포장지처럼 치익 소리를 내며 찢어진다. 착 붙어있던 산호색의 외피가 이제 미련없다는 듯 선선히 제 알맹이를 내놓는다.


바싹 마른 단 한겹의 얊은 껍질 아래 매끈한 알맹이는 놀랍게 싱싱하다. 엷은 연두색의 줄무늬가 경쾌하다. 

나무 도마위에 올려놓고 썬다. 

사각사각 소리가 기분좋다. 나이테처럼 겹겹이 쌓인 구조도 써는 방향에 따라 다른 모양이 되는 것도 재밌다. 고기를 구울 때는 반달, 튀김은 링모양, 된장찌개는 기왓장 모양, 미역무침에 곁들일 땐 얇게 초승달모양. 우리집 8세는 알까, 이렇게 재밌는 걸 엄마 혼자 하는걸? 

그러나 곧 눈이 매워진다. 으악. 눈물을 흘린다. 역시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








나는 젖량이 모자라 수유가 애 낳는 것 보다 더 힘들었다. 

그 날도 엄마됨의 얄짤없음을 배우고 있는데 엄마가 말했다. 



“이제 너도 배추 겉잎이 됐구나.” 



배추 겉잎...? 상처많고 억세서 제일 먼저 솎아지는 누렇게 상한 잎?


농담인가? 너무나 찰진 비유에 얻어맞은 것 같았다. 웃어야 할까?

아직 온 몸이 너덜너덜한, 회복도 안된 자기 딸에게 배추 겉잎이라니. 어쩔 줄 몰라서 그냥 웃었다. 그때 나는 정말로 다 찢어진 배춧잎 같은 기분이어서 할말이 없었다. 

심지어 시아버지도 대놓고 손자를 ‘알맹이’라 부르셨다. 아직도 그 알맹이 없이는 사진도 찍지 않으신다. 



무명의 연극배우가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고민하고 노력하며 인생작의 데뷔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자기 순서가 지나버렸다는 소리를 듣는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그를 기다리는 무대는 더이상 없댄다. 그래도 요 다음 주인공을 무대에 세운 공이 크니 고생많았다고 어깨를 두드려준다. 그때 그의 기분이 이럴까?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다.

처음 외할머니가 된 엄마, 어여쁜 손자를 보니 옛날 자신이 떠올랐고, 딸이 안되보였고, 평소 각종 채소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니 떠오른 말씀일 뿐일텐데.  근데 그 사소한 배춧잎 같은 게 탁 걸려 체한 느낌이 영 가시질 않는다. 무시하고 싶은데 실제로 컨디션이 갈수록 하향곡선이니 점점 더 반박 불가다.


그래, 그 말이 하필 엄마 입에서 나온게 문제였다.

나는 기꺼이 내 겉껍질이 되어준 사람에게 자랑스러운 알맹이고 싶었다. 근데 아직 제대로 빛나보지 못했다. 


생각하기 나름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런 인정욕구를 못채운 내 자격지심 탓이다. 

스스로가 조건없이 사랑받는 존재라는 믿음이 없는 탓이다.








자려고 누웠는데 구멍 뚫린 가슴으로 아이의 동그란 몸이 파고든다. 

들락날락 하던 바람이 멈추었다.

연약하던 아기가 어느새 토실토실 단단해졌다. 혼자 학교도 가고 학원도 갈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잘 땐 한 몸처럼 껴안아야 안심이 된다지만. 어느덧 엄마가 자신과 분리된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조짐이 보인다. 

내 옆에서 이런 속엣말들을 한다.


“나는 엄마가 안아주는 게 제일 좋아.” 


“근데 엄마 손이랑 발이 딱딱해서 부딪쳐 아플때도 있어.”(미안)


 “엄마가 배가 통통한 건 나를 낳느라 고생해서 그래.”(!) 


“엄마는 나를 제일 사랑해” “엄마는 바빠.”(미안) 


“엄마는 그림을 잘 그리고 요리도 잘해.”(과연) 


“엄마는 뒹굴뒹굴 쉬는 것을 좋아해”(헉) 


“나랑 재밌게 놀아주기랑 달리기는 못해.”(인정) 


“나는 엄마가 죽을까봐 걱정돼.” 



'더 사랑받고 더 많이 놀고싶은데 늘 힘들고 피곤한 엄마. 그래서 없어질까봐 걱정하는구나.'



여느 부모자식들 처럼 우리도 서로 미안함과 섭섭함을 주고받으며 자라겠지.

그러면서 아이는 점점 여물어 가고 나는... 

나는 또 양파껍질을 떠올린다. 


그래도 아직 시간이 있고, 내 역할도 남았다. 그리고 의외로 양파껍질에 영양소가 많다던데, 우려서 차라도 만들지 뭐. 다만 껍질이 자기의 소임을 다한 후에 알맹이 걱정을 하지않듯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양파 껍질 떨어지듯 나도 쿨하게 그럴 수 있을까. 


마음 속 준비운동을 한다. 

괜히 애틋해져서 아이를 힘주어 안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무적의 가위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