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타의 시간
요즘은 아들이 혼자 등교하고, 하교한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는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진보인지 몰랐다.
대충 빵이나 우유, 누룽지 김 따위로 때우기 일쑤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침은 정신없이 바쁘다. 여기에 출근까지 해야 한다면 그야말로 촌각을 다투는 전쟁일 것이다. 전업주부라고 해도 바쁘긴 마찬가지다. 할 일은 끝이 없고 그 와중에 내 옷까지 신경 쓴다는 게 보통 부담이 아니다.
1학년 학기 초에는 엄마들끼리도 서로 신경을 쓴다.
불시에 아이의 반 친구 엄마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고 그게 내 아이의 첫인상으로 연결될까 봐 조심스럽다. 그래서일까 심지어 명품으로 차려입은 엄마들도 간혹 보인다. 그렇게까진 아니라도 늘어진 티셔츠나 홈웨어에 점퍼차림은 망설여진다.
첫 아이의 첫 입학은 엄마도 긴장한다. 벌써 까마득해졌던 그 시절의 내가 아이와 오버랩되는 묘한 기분이다.
우습도록 커다란 책가방을 등에 메고 ‘학생‘의 삶을 시작한 뒷모습에 만감이 교차한다.
그래서일까, 차림새는 제각기여도 엄마들 표정들은 다 비슷하다. 유치원 아가가 언제 이렇게 커서 학교를 가나 싶은 대견함, 뿌듯함과 꼬맹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그러나 엄마 마음을 알 리없는 애들은 의외로 씩씩하다. 꼬꼬마들의 뒷모습을 촉촉한 눈으로 좇던 엄마들은, 차려입은 게 무색하게 짧은 거리를 되돌아 집으로 간다.
학기 초가 지나면 엄마들의 차림새도 급격히 느슨해진다.
고데기까지 하고 나오던 엄마들도 그냥 뒤집어쓰면 되는 넉넉한 원피스와 쌩얼을 가려 줄 모자, 립스틱 정도로 대충 맞춰진다. 나는 그나마도 진작 생략했지만.
그리고 하교시간에 맞추어 교문 앞 대기, 놀이터, 학원시간에 맞추어 아이를 보낸다. 직장맘이 아니라면 대충 이런 루틴이 반복된다. 한 시간 정도의 어정쩡한 시간들 사이에 무언가의 일을 몰두하긴 사실상 어렵다. 간식을 먹고 숙제를 챙기고 학원 시간까지 스스로 챙기게 되기까지의 시간은 꽤 길다.
그러다 2학년이 되면 드디어 대부분의 아이들이 혼자 등교할 수 있게 된다. 늦은 아이들도 마음속으로는 엄마 손을 잡고 가고 싶지만 친구들을 보며 마음을 굳게 먹는다.
엄마는 부랴부랴 씻고 옷을 챙겨 입지 않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쉽지는 않지만) 하교 후 스스로 학원가방을 챙겨 셔틀을 탈 수 있게 되면 이제 진짜 자유다.
이제 뭘 하든 온전한 시간을 꽤 확보할 수 있다.
내가 그다지 헌신적인 엄마가 아니란 걸 애를 키우면서 깨달았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최선을 다하지만 나만의 시간이 없으면 못 견딘다. 틈 날 때마다 필사적으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거나, 하다못해 낮잠을 자거나 멍하니 있더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사수했다. 남편은 그런 나를 이제 받아들인 것 같다. 자아 찾기인지 뭔지 내가 혼자 방에서 꿈지럭거리고 싶어 하면 아들과 놀아주고 설거지도 한다.
그런 나라서, 2학년이 되어 씩씩하게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를 외치고 등교하는 아들이 고맙다.
오늘은 아이의 짐이 무거워서 등굣길을 함께했다.
교문이 2개인데, 교실 가까운 교문까지 데려다준다고 하니 아이가 물었다.
“엄마, 힘들지 않아?”
“아니. 왜?”
“왜 더 먼데까지 데려다줘?”
“가방이 무거우니까 도와주고 싶어서.”
“그치, 조금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어서.”
“아, 엄마. 고마워.”
고맙다니.
모르는 줄 알았는데, 아이도 알고 있던 것이다. 하긴 모를 리 없다.
그만큼 나는 아이 앞에서 여과 없이 전전긍긍했다.
자신과의 시간을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대신 지친 얼굴로 틈만 나면 혼자 있기를 원하는 엄마를 보며 아이는 대체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래서 왜 이러나 싶게 유난히 혼자 자기를 거부했던 걸까?
그리고 옆에서 자는 것도 모자라 껴안고 얼굴을 부비며 잠들고 싶었을까?
재우는 시간이 지루해서 핸드폰을 몰래 들여다보던 내게 아이가 말했다.
“나는 엄마가 안아주는 느낌이 너-무 좋아. 근데 엄마는 잘 때 나 대신 핸드폰을 보더라? 혹시, 나를 안을 때 느낌이 안 좋아서 그래?”
특유의 능청맞은 얼굴로 넌지시 전하는 진심을 바보같이 나는 눈치채지 못했다.
해결되지 않은 내 불안이 아이의 마음속 구멍이 될까 봐 더럭 겁이 난다.
내가 어릴 때 느꼈던 불안. 같이 있어도 딴 곳을 보는 듯한 엄마만의 세상, 그 옆에서 나는 늘 좀 불안했다. 외로운 줄도 모르고 외로웠다.
씩씩한 우리 아들, 태권도 빨간 띠인 우리 아들, 학교도 혼자 가고 학원도 혼자 갈 수 있게 된 아들.
대견하다 칭찬만 했던 게 미안하다.
등교할 때 옷차림이 뭐고 첫인상이 다 뭐람. 그토록 자유시간을 챙기면서 뭐 그리 대단한 성취를 했다고.
어리석은 나는 정작 아이의 마음을 얼마나 오랫동안 놓치고 있었던 것일까.
오늘부터 더 많이 안아주고 눈을 마주치고 웃어야지. 너와 함께라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더 많이 말해야겠다.
뭣보다 오늘 밤엔 핸드폰을 절대 안보리라 다짐한다.
하. 오늘은 이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