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 불량주부의 힐링물
왜 우리 집 냄비들은 다 바깥쪽이 금방 더러워질까?
해결 못한 난제다.
어떤 화학작용인지 국물 같은 것이 냄비에 들러붙어 가스불에 가열되고 나면 지워지지도 않는다.
안태우면 된다고? 네... 저는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모든 꿀팁의 보고인 유튜브를 찾아본다.
철수세미, 베이킹소다, 구연산, 연마제 등의 해결책이 보인다. 따라 해본다. 바글바글 끓이고 불리고 별짓을 다해 본다. 팔은 아프고 손끝이 욱신하도록 수세미로 비벼보지만 얼룩은 나를 놀리듯 너무 고대로다. 아 그냥 새로 살까?
알고리즘이 나를 어떤 뽀샤시한 부엌으로 안내한다.
나는 홀리듯 그녀의 부엌을 감상한다. 이건 부엌이 아니다. 미술관인가? 화면의 때깔부터 다르다. 너무나 미니멀하여 비현실적인 조리대를 보라! 대체 각종 살림살이들은 다 어디에 들어가 있는가? 폭폭 삶아서 단정하게 말려놓은 행주는 얼마나 청량한가! 행주 빨기 귀찮아서 키친타월을 북북 뜯어 쓰는 나는 쓰레기…
흠잡을 데 없는 부엌을 자랑하는 저 주부 9단의 손은 어째서 저렇게 희고 가녀린가.
그녀는 자신의 냉장고를 열어 보인다. 와. 빛나는 유리그릇에 담겨 착착 진열된 반찬들은 영롱하다. 조리한 날짜까지 예쁜 타이포로 인쇄하여 붙인 반찬통은 예술이다. 저분은 반찬을 넣을 때도 가장자리에 양념 따위 묻히지 않는 걸까, 일일이 닦아내는 걸까, 그 닦아낸 행주는 바로바로 빨아서 말리는 걸까, 그사이에 닦아낼 다른 물질들이 생성되지 않는다는 건가.... 감탄에 지치면 그분의 강박증이나 연출여부를 의심해 본다. 옆에 스텝이 있는 게 틀림없어.
인위적이든 아니든 이런 영상은 그저 바라만 보아도 힐링이다.
그리고 한숨을 유발한다. 재빨리 포기하면 좋으련만 어쩌면 내 부엌도...라는 희망을 가지고 영상 속 주부님이 추천하는 반찬통을 산다. 역시 수입산이라 아무 데서나 팔지도 않고 오지게 비싸다. 그래도 음식을 오랫동안 신선하게 보관가능한 완전한 밀폐력과 물들지 않는 야무진 법랑코팅이라니 이해가 간다... 뭣보다 예쁘니까...
그리고 나는 살림력이 딸리니까 돈으로라도 그녀의 부엌 근처까지 갈 수만 있다면. 나는 최면에 걸린 좀비처럼 결제버튼을 누른다.
하여튼 이런 식으로 늘어난 살림들로 부엌은 미니멀과는 더욱 멀어진다. 힐링물이라고 넋 놓고 보던 영상은 나를 점점 나락으로 떠민다. 아 결코 닿을 수 없는 부엌의 유토피아, 천국의 부엌, 부엌의 판타지.
아주 새끈한 부엌의 이상향은 내가 몰래 쓰는 카드로는 이루기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기준을 바꾸기로 한다.
일본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그런 힐링물로 딱이다. 산골 깊은 집 낡은 부엌에서 제철 식재료를 정성껏 요리해서 먹는 내용. 그게 줄거리의 전부인 영화.
내 부엌보다 훨씬 초라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너무나 아름답다는 점에 나는 한껏 고무된다. 그러다 깨닫는다. 우리 집은 도시의 아파트 12층, 텃밭도 없고 열매를 딸 산수유나무도 없다.
무엇보다 그런 유기농 서정의 장면을 화면에 담을 사람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정신 차려…
그래서 나는 포기하기로 했다.
텃밭에서 딴 양상추만큼은 아니어도 마트에서 배달온 양상추도 꽤 싱싱하다. 그리고 ‘백종원 레시피’를 검색해 최대한 간단한 조리법으로 요리를 만들고, 나물 같은 건 사고, 맛있게 먹는다.(이것만은 자신 있다), 설거지는 좀 쌓아놓으면 남편이 와서 해줄 때도 있으니까, 그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결코 자랑스럽게 말할 수 없는 내 현실! 게으른 불량 주부.
그래도 가끔 내 부엌 경영 능력에 참을 수 없는 환멸을 느낄 땐 부엌판타지물 만한 게 없다. 새 도마나 빈티지유리컵 따위의 쇼핑욕만 조심하면 된다. 보고 나면 가슴속에 5% 정도의 의욕이 샘솟으니까. 아예 포기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그래, 나도 해보자.’
아직 나의 부엌시스템은 그 정도의 의욕으로도 여차저차 돌아간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