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자연의 세계
주말 오후, 휴양지 컨셉의 카페엔 사람들이 많았다. 실내에는 천정에 닿도록 멋지게 큰 야자나무가 여럿 있었다. 해가 잘 들지 않는 실내에 어떻게 이렇게 큰 나무를 들일 생각을 했을까? 그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우리 가족들은 서로 아무 말 없이 동시에 나무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먼저 아빠가 일어나 나무를 두드려보더니 이거 가짜네. 라고 했다. 가짜라고? 에이, 진짠줄 알았는데? 나는 일어나 아래 나무 줄기를 만져보았다. 딱 플라스틱 느낌이었다. 어머. 진짜 조화였어!! 너무 잘만들었다. 이럴수가. 저 곰팡이 가루하며 저 잎끝 마른것 재현한 것 봐바. 불규칙해서 너무 자연스러운데, 진짜같아. 와 잘 만들었다. 대박.
그러자 엄마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야자나무 잎사귀를 뜯어보려고 했다. 동시에 나도 다시 한 번 잎사귀를 잡아당겨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다말고 우리를 째려봤다. '어머 저 사람들 좀 봐 진상들.' 이란 표정이었다.
나름대로 30년 이상 예술계에 있어 눈썰미 하나는 알아준다고 자부하는 우리를 속인 그 식물은, 결론을 말하자면 진짜처럼 잘 만들어진 가짜같은 진짜였다.
충동구매로 식물을 2개 샀다.
초록색에 핑크색 줄무늬가 ‘그려진’ 식물이다. 하나는 목판화같이 줄무늬가 새겨져있고, 하나는 수채화같은 무늬가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너무나 그림같아서 놀랍다.
이런 것이 하나도 놀랍지 않은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니 부연하자면, 평범한 잎사귀 하나를 관찰해보면 그 안에 잎맥이 있다. 그 모양은 잘 계산된 규칙성을 가지고 있다. 그 정교함은 신기하고 아름답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평소에 이런 자연을 보며 우주의 만물을 만든 신의 미감을 느낀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손에 넣은 이 식물은 달랐다. 사람이 서툴지만 정성스러운 붓질로 하나하나 그려넣은 것 같다. 잎맥이 원래 좌우 대칭이어야 하는데 대칭이 아니다. 각도나 두께나 색깔, 위치가 비슷한듯 다 다르다. 초록과 핑크라는 색 조합도 과감하고 인위적인데다 잎사귀도 종이처럼 말린 모양이 영락없이 가짜 식물같다. 심지어 물감이 툭 떨어져 흘린듯한 물방울 무늬도 있고 진짜 먼지같이 생긴 가루까지 새겨져있다.
가짜가 진짜같은 게 놀라운가, 진짜가 가짜 흉내를 내는 것이 놀라운가?
자연을 흉내낸 예술은 많아도 예술을 흉내낸 자연은 희귀하다. 난 아무래도 그게 놀라운 것 같다. 완벽한 것이 불완전한 것을 따라한다는 게 뭐랄까 희한하다. 어찌된 영문일까? 왜 넌 이렇게 생기게 된거니? 나는 말없는 식물에게 속삭여 묻는다.
신이 핑크색 물감을 묻힌 붓을 들고 잎사귀 위에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상상한다. 무늬를 가까이 들여다보니 그의 콧김이 느껴질 듯 하다. 신도 때로 완벽함이 지루해서 이렇게 삐뚤빼뚤 그림놀이를 즐기는걸까? 그거야말로 내가 참 잘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다. 신의 인간적 체취를 느낀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