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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드롱 Apr 30. 2024

로또 당첨이 아니어도 좋아

행운이 필요하신가요?



스스로도 좀 신기하게 여겨지는 나만의 재능이 있다. 그것은 ‘네잎클로버’찾기다. 한 두 개가 아니라 맘먹고 한 3분만 들여다보면 최소 3-4개, 어떨 땐 20개 가까이도 찾는다. 그중에는 다섯 잎 클로버도 심심찮게 있다.



세 잎 클로버가 어떤 유전자적 변형을 일으켜 네 잎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한 놈을 찾으면 그 근처에 반드시 한 두 개가 더 있다. 줄줄이 걔네들을 발견해서 아이에게 주면 10살 아들은 우왓 신기해하며 자기도 찾고 싶어 한다. 엄마. 우리에게 무슨 행운이 오려나 봐!



올봄의 내 신기록은 네 잎 클로버 25개, 다섯 잎 클로버 4개이다. 이쯤 되면 재능라고 해도 좋을 것 같은데? 그러나 돈이 되는 것도 아니요 딱히 누가 알아줄 일 없는 재능이라 안타깝다. 아 참, 내 아들이 인정해 준다. 우리 엄마는 네 잎 클로버 찾기 킹이야. 그렇게 친구에게 자랑하는 것을 듣긴 했다.



하지만 네 잎클로버를 암만 많이 따도, 로또 번호를 맞추거나 구사일생으로 무슨 생명을 건지는 것 같은 행운은 일어난 적이 없다.



내가 이미 잠정적으로 얻은 비관적 결론에도 불구하고 클로버 다발을 손에 든 아이는 흥분해서 묻는다. 엄마, 우리 무슨 소원을 빌까? (어느새 클로버가 지니의 요정으로 변함) 엄마, 나는 우리 가족 안 죽고 오래오래 사는 거, 그리고 드래건이랑 친구가 되는 거. 글쎄. 아무리 다섯 잎 클로버라도 그렇게까지는 무리이지 않을까… 근데 또 굳이 초 치기 싫다. 동심이 예쁘고, 또 혹시 아나. 진짜로 이뤄질지? 멀티버스의 세계나, 몰라 혹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선 다음 달에 있을 나의 갑상선암 수술이 잘 끝나면 좋겠다.

그전에 친정 부모님의 이사가 무사히 잘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올해는 동생이 만드는 작품들이 빵빵 터졌으면 좋겠다.

부모님이 돈 걱정 없이 평화롭게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다.

남편의 알레르기 체질이 개선되면 좋겠다.

아들의 삔 발목이 무사히 나았으면 좋겠다.

글도 좀 가볍게 쓸 수 있으면 좋겠다.



드래건이나 영원한 생명이나 암수술이나 돈걱정 없는 삶이나

클로버 입장에선 아무래도 부담일 듯.




그렇다. 나는 크리스천이니까 기도를 할 수 있다. 네 잎 클로버에게 기대느니 신에게 비는 편이 누가 봐도 효과적일 것이다. 그런데 뭐랄까, 네 잎 클로버에게 바라는 건 소원이 아니다. 좀 다르다. 정색하고 비는 건 아니고, 그냥 좀 서프라이즈로 일어나면 좋을, 작고 앙증맞은 그런 행운? 그런 정도랄까. 딱 대놓고 바라는 건 아닌데 뭐 기분 좋은 일 좀 없을까? 그런 마음. 앙큼하기도 하지. 그런 음험한 눈길로 봄길 푸른 풀더미들을 눈으로 훑는 것이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되뇐다. 나는 지금 나를 바꿀 힘이 없어. 삶에 너무 지쳤어. 그런데 이 상황을 빠져나가고 싶어. 진짜 어떤 일이든, 어떤 변화라도 좋으니 찾아와 줘. 아무리 작은 거라도 좋으니까 제발.



그러나 어제를 되돌아보면 나는 크고 작은 수많은 행운들을 통과해 왔다. 무사히 오늘이 된 것도, 내가 지금 여기서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우리 가족이 존재하는 것도, 내 앞의 풀들이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모두 크고 작은 기적들이 누적된 덕분이다. 정신 차리고 보면 우리 모두가 어마어마하게 많은 선물을 매일 받고 있다. 그러고 보면 사랑에 겹고 호강에 겨운 거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자. 넘치도록 충분히 받고 받고 있는 이 행운들과 기적들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단지 나는 그걸 발견하기만 하면 된다. 비슷비슷하고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의 가만히 숨은 기적들을. 기쁨을.



오, 다행히 나는 그런 레어템을 발견하는 재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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