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의 첫날
하늘이 밀린 빨래를 하는 듯 도시가 뿌연 물속에 들어앉았다
빗물이 흐르는 우수관은 관악기가 되어 후르르르 몸을 떨고
나는 그 멜로디- 중간 광고 없는 20시간짜리 BGM을 듣는다
잎이 큰 열대식물은 마시고 남은 물기를 끌어올려 제 손가락 끝에 모았다
도로 내놓은 그 방울들은 잎맥을 거슬러 올라 낭떠러지까지 왔다
베란다 난간에 주르르 매달린 둥근 물방울들
저마다의 양이 차면 12층 아래로 추락한다.
지구의 중심을 향해 날아가는 중
누가 먼저 떨어질까, 거꾸로 세상을 담으며 잠시 숨을 고른다
투둑, 투둑
내 옆의 누구, 그 옆의 누구, 그다음은 나, 그다음은 너
대롱대롱 매달린 구슬들 속엔 하늘이 바다고 아파트가 하늘이다
퉁 퉁
추락하는 것은 물방울이 아니라 이 세계
우수관을 따라 흐르는 것은 내 땟물
중력을 거슬러 맺힌 수액은 억지로 짜낸 눈물이다
곧 말라버릴 후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