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드라마의 공식
<너의 장르는 뭐니>
아이가 잠든 밤, 남편과 다정하게 소파에 누워 티비를 켰다.
넷플 인기리스트에 웹툰 원작의 한국 드라마가 있다. 남자 배우와 여자 배우는 판타지 속의 상황을 연기한다. 깊은 사랑을, 본인이 의식하지 못한채 강렬하고도 운명적인 끈으로 엮인채.
남자는 언제나 화가 나있고, 여자는 늘 억울한 느낌이다. 남자는 여자를 보호하려고 하지만 여자는 벗어나려고 한다. 그러면서도 남자의 사랑을 원한다. 그가 여자의 치마를 벗길듯 벗기지 못하는 장면에서 드라마는 다음회를 예고하며 끝이 난다.
나는 상상 속에서 저 남자가 더 몰아쳐서 저 여자를 더 괴롭히고 애걸복걸하게 만들었으면 했다. 하지만 남자 주인공은 그러지 않는다. 그래도 깔끔한 하얀 슈트차림으로 이불 속에 들어가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망상을 실현하려면 좀 더 자연스러운 것이 효과적일 텐데. 침대 속의 남녀가 서로 바라보는 순간 붙인 속눈썹과 두꺼운 파운데이션 때문에 몰입이 안된다.
야동이 야동의 본질에 충실하고 뉴스가 본분에 충실하듯 한국 멜로드라마도 그 역할에 충실하다. 여성들의 연애욕구와 성적 판타지를 대리해야 한다. 나름의 형식이나 공식이 있다. 한국드라마에서 가장 식상하고도 인기 있는 연출 중 하나는 남녀가 몸을 맞대는 순간을 만들 때다. 초반엔 이루어지기 어려운 사이거나 갈등을 빚고 있던 남녀가 갑작스럽게 몸을 부딪치게 되면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설정인데, 이게 그토록 흔하게 사용된다는 게 놀랍다. 백이면 구십 구의 연애이야기에 빠지질 않는 장면이다. 보통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그런 것이라면 연애를 원하는 자 사람 많은 곳에서 접촉사고를 만들지니, 누가 더 멋있게 접촉사고를 일으키는 연습을 하느냐가 연애 성공률을 좌우할 것이다.
옛날에 만났던 남자가 내게 ‘성적 환상’에 대해 집요하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폭풍우가 치는 날 밤에 커다란 뇌우소리를 들으며 섹스하는 것.이라는 대답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 무슨 읽지도 않았던 할리퀸 소설 같은 답인지. 그 대답을 듣더니 에이, 하고 실망하던 그의 반응이 떠오른다. 나도 그땐 너무 창피해서 포장해 대답한 것이었다. 그는 그걸 간파했던 걸까? 그래도 그런 질문도 할 줄 안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있는 남자였다. ‘야함’의 순간은 예상치 못하게 사회적 규범의 옷을 벗어버리는데서 나오는 갑작스러운 돌발성에서 나온다는 걸 몰랐다.
이런 장르에서 보는 사람이 감질나도록 만들고, 서로 의심하고 오해하고 기대하게 만들다가 마침내 마음을 확인하고 키스하는 순간은 절정의 순간이다. 사랑의 황홀은 이런 거야.라고 가르쳐주며 카메라는 남녀 주인공을 가운데 두고 빙그르르 돈다. 여자는 완벽하게 촉촉한 입술과 찰랑이는 머릿결을 휘날리고, 남자는 잘생긴 얼굴, 날렵한 콧날과 완벽하게 면도가 된 뺨으로 여자와 키스한다. 너무 비슷한 그림이다. 지루하다.
그런데 여자 주인공이 어느 순간 남자를 좋아하게 되고, 아닌 척 점점 마음이 커지다가 마침내 남자에게 고백하는 순간에 이르렀을 때. 혹은 키스신이 나오면 같이 그 장면을 보던 나의 딱한 남편은 어김없이 외친다. “아니 왜 갑자기 저래?” 그는 정말로 이해를 못 하는 것이다. “저 여자가 좋아하는 거야? 대체 언제부터?”
섬세한 감정적 맥락을 이해하는 게 몹시 어려운 이 남자에게는 액션 영화가 더 재밌을 법 한데 신기한 건 의외로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한다는 점이다. 누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한다는 표정이나 상황의 뉘앙스를 전혀 읽을 줄 모르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 클리셰를 상투적으로 느끼지 못해서 매번 충격적으로 감동하는지도 모른다.
친한 동생이 고백했다. 자기는 결혼 10년이 넘었지만, 남편을 보면 아직도 가끔 심장이 쿵 내려앉고 설렌다고. 그 순간 일시에 그녀에게 쏟아지던 환성(?)과 부러움의 눈길을 기억한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느냐고 원인을 분석하던 그 뜨거운 현장에서 결국 아무도 자신들의 해결방법은 찾지 못했다. 이유를 찾은 들 어쩌겠는가. 그래도 결혼에는 심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훨씬 더 많다. 그래도 아주 막장 같은 최악의 선택(?)은 면했으니 가슴 두근거리는 짜릿함은 드라마나 보면서 해소해도 괜찮잖아.라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밖에.
이렇듯 K드라마의 순작용은 욕구불만의 기혼자 여성들의 잃어버린 연애세포를 일시적으로 깨워주어 순간적으로 일상의 시름을 잊게 만든다는 것이다. 과거의 로맨틱한 연애를 회상하거나 가망 없는 남편 대신 여주인공에 빙의하여 욕망을 대리 해소하는 것은 실제 실행에 옮기는데 까지 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안전하다. 게다가 일일드라마의 성공적 키스신으로 인해 감소되는 부부싸움과 바가지의 총량을 실제로 재 볼 수 있다면 틀림없이 사회적으로도 무시할 수치가 아닐 것이다. 역작용은 미혼 여성들의 교과서적인 환상의 교재역할을 하면서 실제 남자와의 연애를 요원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그런데 정말로, 내 주변에는 드라마 같은 사랑을 꿈꾸다가 짝을 놓치고 늙어가는 여자가 꽤 있다. 드라마 주인공 같은 남자를 꿈꾸기만 하면 나은데, 클리세 같은 상황에서 드라마 남주처럼 반응하지 않으면 날 사랑하지 않는가 봐.라고 하는 경우도 보았다.
어쨌거나 옛날엔 만화방 한 구석에 번역본으로 비밀스럽게 꽂혀있던 할리퀸 로맨스물이 요새는 웹툰으로, 드라마로, 웹소설로 상당히 큼지막한 양지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을 보면 복잡한 생각이 든다. ‘환생, 내가 후궁이라니’, ‘전생에 나라를 구했더니’ ‘본부장님의 여대생 키우기’ ‘내 아이와 닮은 남자’ ‘선 넘는 상사’ 등과 같이 제목만 봐도 내용이 짐작되면서도 도대체 어쨌길래 라는 궁금증을 일으키는 웹소설들이 네이버 인기순위 상단에 위치하고 있다. 그만큼 돈이 되는 장르인가 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공식이 있다면 순수문학 작가들도 다들 열심히 읽으면서 배울 필요가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실력 있는 작가들이 좀 더 완성도 있는 클리셰로 모두의 판타지를 더욱 끌어올려 좀 더 만족스런 환상을 만들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나.
“여보, 00 이는 아직도 남편을 보면 설렌대. 인생이 멜로물인 거야. 그녀는.”
부럽다는 듯 말하는 내게 남편이 말했다. 음. 우리도 그렇게 말할 수 있지.
굳이 말하자면 “로맨틱 액션 스릴러?”
그렇구나. 난 조금 안도했다. 그래도 호러 아닌 게 어디고, 다큐 아닌 게 어디냐. 그가 우리의 장르를 ‘로맨틱’이라는 단어를 넣어준 게 못내 고맙다. … 의리를 지키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