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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손 Mar 10. 2022

바다를 가져올수는 없잖아.

최대한 멀리, 가능한 빨리, 기왕이면 살아보고 싶었던 곳으로 가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뱉어놓고 숨통이 트이는 기분을 만끽할 때 까지는 '낭만'의 영역이었으나, 누구나 한번쯤 상상만 하던 일을 현실로 가져오는 것은 '책임'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절망감이 들거나, 포기하고싶은 마음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사실 어느정도 익숙한 기분이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에는 대부분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일반론과, 보여주고 증명하라는 힙합의 'Show and prove'가 둘 다 옳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남들이 좋다는 학교도, 안정적인 직업도 선택하지 않은 사람이었고 그 모습 그대로 지금까지 살고있으니까. 그저 하고싶은 일을 하고 살았을 뿐이지만 '그렇게밖에 살 수 없는 사람' 처럼 취급받았고, 스스로를 증명하면서부터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심지어 나 자신에게 까지도 말이다.

남들이 하지 말라는 일은 실제로 해 보면 그 이유를 바로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든 보내고 나면 끝없이 외롭지만 한없이 자유로운, 온전한 '나'로 사는 경험을 해볼 수 있다. 돈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아무나 할 수 없는 경험이라는 것을 나이먹으면서 알게되었다.


꽤 오랜시간을 '엄마 말 안듣는'인간으로 살아온 경험 상, 이런 짓(?)을 저지르려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의 시선과 어쩔수 없이 발목을 잡게 될 현실로부터 '낭만'을 어떻게든 오랫동안 잘 지켜내는 것이다.


본능적으로 깨닫게 된 것 같다. 의심할 여지 없이 나는 내 생각보다 더 계산적인 속물이고, 훨씬 뻔뻔한 거짓말쟁이다. 마음먹고 낭만적으로 진행한다한들 하나부터 열까지 요목조목 따져보지 않을 방법이 없고, 그 과정에서 맞닥뜨리게 될 크고 작은 선택에서 현실과 타협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 책임질 수 없을 정도로 무모하게 일을 저지를만큼 더 이상 어리지 않고, 이미 아슬아슬한 그 선을 넘으면 어떤 댓가가 기다리고 있을지 지나치게 잘 알고있다.


그러니 낭만과 책임중에 더 집중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낭만'이었다. 어떻게 진행하던 결국은 '세상사람들의 일' 의 영역 안에 그 결과가 있을테니까. 억지로라도 끼워넣으려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리 멀리 간다 한 들, 지금과 단 한마디도 다르지 않은 삶이 될 것이 분명했다.


대낮에 혼자 커다란잔에 커피를 시켜놓고 펜을 들고 종이를 펼쳤다. 난로옆에서 삼십분 쯤 멍청하게 앉아있다가 대뜸, 바다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바다에 살아본 적도, 그 근처에 누구 아는 사람이 사는 것도 아니지만 내킬때마다 그 커다란 물을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대한민국은 바다를 종류별로 '골라서' 갈 수 있는 훌륭한 조건의 나라였고, 기왕이면 동해와 남해 중 한곳으로 정하기로 했다. 새파랗고 새파란 바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자연스럽게 마음이 편안했던 곳 순서로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통영, 고성, 동해, 포항, 강릉, 제주'정도가 최종리스트에 남았다. 적고나니 아무 이유없이 새벽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떠올리던 목적지 순이었다.


숨어있을 '쥐구멍'이 지도에서 사라지는건 아닐까 싶어 잠깐 무서웠지만, 이내 문제없을거라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있는 이 곳이 새로운 쥐구멍이 되어줄테니까. 징그러워서 떠나고 싶은 지금 여기가 곧 그리워질게 당연했다. 사람마음은 간사하니까. 나라고 예외가 있을 리 없다. 헤어진 여자친구처럼, 오래타던 자동차처럼 속썩이던 기억은 싹 빼먹고, 행복했던 기억만 남을테니까. 진부하지만 그때가서 뻔뻔하게 '보고싶었다' 라고 표현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누가 궁금해하지도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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