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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Jun 08. 2024

‘성매매 여성’들의 무덤 위에 세워질 여성 친화 공간

용주골 행정대집행 현장에서 '이태원 참사'가 떠올랐다


숨 막혀 죽나 싶었다. 족히 80 킬로는 넘어 보이는 덩치 큰 장정들이 내 몸을 압박해 왔다. 남자들이 입고 있는 검은 옷 등판에 ‘공무 수행’이라고 가증스럽게 새겨진 부분에 내 코가 완전히 짓눌려 있었다. 땀 냄새에 함께 곤충을 가볍게 때려잡는 무심한 살기가 전해졌다.      


“숨 쉴 수 없다고” 간신히 소리를 질러도 압박은 계속되었다. 좀 직위가 높은 용역이었나, 내게 “나올래요? 그러면 꺼내줄게요”라며 내 고통을 조롱했다. 호흡의 고통이 지속되자 순간 ‘이태원의 망인들’이 떠올랐다. “이렇게 죽어갔겠구나” 참담한 역지사지와 “여기서 죽겠구나” 공포가 동시에 덮쳐왔다.           



이렇게 이상하고도 무서운 일이 벌어진 곳은 파주시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다. 어제(6월 7일) 오후 1시 50분경 50여 명의 용역들이 대오를 갖추어 철거가 예고된 업소로 밀려들고 있었다. 여자용역 없이 남자 용역들만 보이는 게, 오늘은 꼭 뜯을 기세구나 싶어 께름했다. 지난달에도 겨우 막았는데 오늘도 막을 수 있을까 두려웠다. 

     

한 업소의 일부분이 불법 증축이라며 종사자 여성들이 먹고 자고 일하는 곳을 부수겠다고 파주시청 건축디자인과 공무원들이 용역을 달고 들이닥쳤다. 철거를 방해하면 즉각 공무집행방해로 잡아간다고 으름장을 놓는 공무원에게서 열댓 발짝 거리에 경찰들이 구경하고 서 있었다. 철거 공권력을 막겠다고 유리문 앞에 서 있는 열 명 남짓의 시민은 거의 모두 여자였는데, 여자들을 겁박하려고 동원된 50여 명의 용역들은 모두 한 덩치의 남자였다. 

 

용역은 들이닥치자마자 철거 업소의 유리문을 둘러싸고 있던 여성 시민들을 압박해 왔다. 스크럼을 짜고 팔짱과 깍지를 낀 채 단단히 밀고 들어오는데, ‘니들 어디 한번 죽어봐라’고 하는 것 같았다.      



유리문 측면에 바리케이드 용도로 세워놓은 폐자재를 철거 인부들이 드릴과 전기톱을 들이대 갈아대고 있었다. 불꽃이 튀고 먼지가 뿌옇게 일었다. 인부들이 톱질을 시작하자 용역들이 유리문에 붙어 서 있던 여성 시민들을 더 바짝 밀기 시작했다. 뿌연 먼지와 쇳가루 냄새와 잔인한 소음 속에 안면 전부를 용역 등에 처박히자 숨을 쉴 수 없었다. 공무집행방해로 잡혀가기 전에 질식사할 지경이었다. 용역이 등을 앞으로 조금 수그릴 때나 겨우 한 번 숨을 쉴 수 있었다.    

  

여성 시민들은 완강하게 저항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게 압박하는 젊은 남자 용역들의 힘을 당해낼 수 없었다. 묶이지 않고도 묶여 있는 채로 울고 호소하고 소리 지르며 1시간 넘게 대치했어도, 결국 전면의 유리문 한 짝과 후면 한 쪽이 뜯겨 나갔다. 내 살점과 존엄이 뜯겨져  나간 것 같았다. 

 


철거가 있기 전 아침부터 용주골은 술렁댔다. 오전 10시 반에 파주시가 거점 건물로 매입한  건물을 파주시 의회 의원들이 둘러보는 일정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 거점 건물은 전주 선미촌 공공개발을 벤치마킹한 것이라는데 대체 무엇을 본뜬 것일까?      


선미촌 해체는 민간 개발을 포기하고 공공개발로 선회한 뒤 선미촌 내 거점 건물을 마련하기까지 약 12년에 걸쳐 차근차근 진행됐다. 예술인 마을로의 도시재생을 목표로 선미촌 일대를 공공 매입해 예술인 거리를 조성하고 시민들의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고 한다.      


그 목표가 잘 달성되었는지는 논외로 하고, 파주시는 선미촌 개발 과정조차 제대로 참고하지 않은 채 닥치고 폐쇄를 강행했다. 김경일 시장의 임기 내 업적 사업을 달성하기 위해 1년 내 폐쇄를 선포하고 집결지 종사자들의 목소리를 깡그리 무시했다. 이것은 그가 그렇게 외치는 성매매 여성의 인권을 지키는 것도, 파주 시민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도, 그 무엇도 아니다.      


10시 20분경, 버스에서 내려 거점 건물에 당도한 시의원들에게 파주시 여성가족과 성매매 집결지 TF팀장이 브리핑을 시작했다. 근처에서 이를 듣고 있던 주민과 시민들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TF팀장이 시의원들에게 하는 브리핑 대부분이 거짓말이었기 때문이다.     

 

주민과 원만히 소통하며 사업을 진행하고 있냐는 질문에 천연덕스럽게 그렇다고 대답했고, 3.8 여성의 날 가림막 철거 강행으로 머리를 다쳐 뇌출혈로 입원한 종사자 여성에 대한 조치를 묻자, 조치가 잘 진행되고 있으며 입원해 있는 여성이 “손가락을 까딱”하며 의사 표현을 했다고 거짓말을 해댔다.      



집결지 이해관계자는커녕 종사자들과도 대화 한번 한 적 없고, 아직도 의식을 찾지 못해 사경을 헤매는 여성을 찾아가 보지도 않았으면서 “손가락을 까딱”했다며 시의원들을 기만하고 있으니, 내막을 알고 있는 주민과 시민들이 어떻게 반발하지 않겠는가. 위독한 여성에게 책임감을 느끼냐는 내 물음에 시 관계자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성매매 집결지 TF팀장 브리핑에 따르면, 거점 건물(대지 72평에 3층 건물)은 매입가 4억에 내부 공사비 2.5천을 합해 6.5천의 예산이 투입됐다. 나는 4억이라는 매입가가 어떻게 산정되었는지 의아했다. 지금 이 지역의 경매가로 시세를 유추하면 많이 받아야 3억 가량이기 때문이다.   

   

어떤 기준으로 산출된 매입가인지 궁금해 시에 정보공개청구를 했는데, 놀랍게도 감정평가를 하지 않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럼 매도자의 호가만 반영해 거래를 했다는 것인데, 시민의 돈을 그렇게 허술히 집행했다는데 기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파주시는 뭐가 급해 저리 서두르는 것일까. 거점 건물만 세우면 저절로 여성친화도시와 여성 인권이 성취되는가?      


집결지 전체에 대한 도시재생 밑그림도 없이 거점건물 한 채만 달랑 사들여 용주골을 시민의 문화 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시의 주장에 헛웃음이 나온다. 그들이 말하는 ‘시민’은 누구인가. 당사자 주민이 반대하고 당사자 종사자들이 거부하는 거점 건물이 어떤 ‘시민’에게 유의미한 문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건가.      



기지촌의 유산이었던 용주골 역사에 대한 일고의 성찰 없이, 무조건 집결지는 더럽고 수치스러우니 부수고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클리어링’ 단원들의 점령자 공간이 되는 것이 시민 문화 공간이란 말인가. 점령군처럼 들어선 권위주의적인 공간은 피해자를 진짜와 가짜로 구별해 탈성매매한 여성만 진정한 피해자라 미화하고, 시민과 비시민의 위계를 세워 공동체를 분할시키고 붕괴시킬 것이다. 맨 밑바닥 약자 여성들의 무덤 위에 어떤 시민의 공간이 용인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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