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스파이> (김숨, 2024, 모요사) 서평 에세이
지난해 일이다. 일본행 비행기에서 옆 좌석의 한 커플이 다정하게 속삭였다. “다음에는 우리 오키나와 가자. 거기 너무 좋아.” 그렇다. 보통 사람들에게 오키나와는 관광지일 것이다.
태평양 전쟁, 한국인의 입장에선 일제 식민지가 끝난 지 어언 80년이 되어 가니, 과거 오키나와에서 벌어진 참혹한 전쟁과 피해 그리고 그곳에 버려졌고 죽임을 당했던 사람들이 먼저 기억되고 추모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 테다. 제주도를 4·3으로 떠올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내 경우 배봉기와 구중회를 알고부터는 더 이상 오키나와를 휴양지로 떠올릴 수 없게 되었다. 배봉기와 구중회 중 배봉기를 먼저 알게 되었다. 그는 고 김학순보다 16년이나 앞서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밝혔지만(1975년) 조용히 은폐되었다. 배봉기의 존재를 발굴하고 알린 것이 조선 총련의 일꾼이었기 때문이다. 분단체제는 어이없게도 한 여성의 통한의 삶조차 침묵시켰다.
이후 2019년 류큐대학교수인 오세종의 <오키나와와 조선의 틈새에서>를 통해 구중회와 ‘구메섬 조선인 학살 사건’을 알게 되었다. 충격이었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얼마나 많은 삶과 죽음과 피해와 고통이 산재해 있는 것일까.
먹고살기 위해 19살에 오키나와에 입도한 조선 청년 구중회는 51살의 나이에 오키나와 스파이가 되어 처형당했다. 그만 죽인 게 아니라 그의 오키나와 출신 아내와 다섯 명의 아이들까지 잔인하게 학살당했다. 가장 어린 다섯째는 태어난 지 고작 몇 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기였다.
그와 그의 가족들이 몰살당한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구중회가 조선인이라는 것. 조선에서 산 세월보다 더 많은 세월을 오키나와에 살며 누구에게도 해 끼치지 않고 착하게 살았지만, 그는 ‘반도(조선) 출신’이기에 패전의 원한을 대속하고 죽어 마땅했다. 조선인의 아내와 자식은 연좌로 죽임을 당했다.
오세종의 책을 읽은 충격으로부터 꽤 시간이 흘러 나는 서점에서 김숨의 <오키나와 스파이>를 발견했다. 섬뜩했다. 제목을 보자마자 나는 이 소설이 구중회와 그의 가족 몰살 사건을 다룬 것임을 직감했다. 사연을 모르는 딸애는 제목만 보고서 추리소설이냐고 해맑게 물었다. 추리소설 뺨치는 무서운 소설책을 무거운 마음으로 집었다 놨다 망설이다 사 들고 오기는 했는데, 읽기를 미루고 있었다. 고통을 직면하기 두려웠던 것 같다.
<오키나와의 스파이>의 발문을 보니 오세종 교수가 썼다.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다. 김숨 역시 2019년 오세종의 책을 읽었고 구중회 가족 몰살 사건을 접했지만, “소설화할 수 없는, 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다고 고백했다. 다루기 어려운 죽음 앞에 생기는 당연한 저항감이다. 그런데 그는 썼다. 쓸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게 맞을까. 읽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그는 어떻게고통을 견디며 썼을까.
<오키나와의 스파이>는 구중회 가족 학살이 일어나기 얼마 전, 그가 사는 구메섬 북쪽 마을의 소목장 학살 사건으로 시작한다. 9명이 참혹하게 학살당한 이 사건은 당시 오키나와가 어떤 갈등과 반목의 사회였는지를 시사한다. 미군에게 납치되었다가 풀려났다는 이유 하나로 이들은 미국의 스파이가 되어 몰살당했다. 미군과 눈만 마주쳐도 스파이로 죽을 수 있었던 서슬 퍼런 공포가 오키나와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 괴상한 스파이 공포 체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오키나와의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오키나와는 본래 류큐 왕국이라 불리던 고유한 국가로 일본 본토와 다른 민족 정체성을 가진 독립된 열도였다. 일본이 이를 강제로 병합하면서 오키나와는 일순간에 일본의 속국으로 전락해 이등 신민이 되었다.
오키나와의 지리적 위치가 일본 본토의 방파 제같은 역할을 하기에 적합했기에 일본군이 대거 주둔하기 시작했다. 조선에서 끌려온 군속들뿐 아니라 오키나와인들도 일본군의 기지화에 동원되었고, 일본군과 오키나와인 조선인 사이에는 우등과 열등이라는 서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군인과 주민, 일본인/오키나와인/조선인, 남과 여, 보호받는 자와 보호받지 못하는 자, 가해와 피해의 위계가 얽히고설키며 극단적 차별과 폭력과 적대가 순식간에 자리 잡는다.
일본군은 오키나와 전쟁을 치르며 살아남아 미군에게 치욕을 당하지 말고 자결하라며 옥쇄 프로파간다를 벌였다. 그 결과 처참한 가족 간 살해가 전 섬에서 벌어졌고, 요미딴촌의 치비찌리 동굴에서 82명이 집단 자살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국가와 천황을 위한 죽음을 찬미하며 무고한 생명을 죽음으로 이끌고도 아무런 죄의식이 발동하지 않는 윤리의 극단적 소강상태였다. 집단적 광기만 남은 곳에 살인광은 나보다 약한 상대를 찾아 죽이고 또 죽였다. 오키나와에서 가장 열등한 존재인 조선인은 가장 쉬운 학살의 표적이 되었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인 1945년은 오키나와에서 일본군이 미군과 극렬한 전쟁을 치른 후 패전에 임박해 있었다. 9명이 희생당한 소목장 학살 사건은 일제 패망 불과 몇 달 전에 벌어졌고, 구중회 가족 학살 사건은 일본이 패망하고도 5일이 지난 8월 20일에 일어났다. 구중회는 일제 항복 소식을 듣고 이제 “살았다”고 환희에 찼지만 살아남지 못했다. 일본군 총대장은 패망을 알고도 학살을 지시했다. 명백한 범죄였지만, 스파이 처단의 광기에 휩싸인 공동체에는 악에 저항할 어떤 정신도 남아있지 않았다.
“우리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야. 군인은 명령을 어길 수 없어”라며 쉽게 죄의식을 털어내는 괴물의 시간이 이어졌다. 소설에서 김숨은 이 살육의 파티를 벌인 ‘인간 사냥꾼들’을 두더지, 족제비, 다람쥐 등으로 부르며 동물화했다. 온당하지 않다. 동물의 사냥 방식이 이토록 필요 이상일 리 없다.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는다.
얼마 전 본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는 유대인 절멸을 보다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즉 “태우고 식히고 채우고 비우고”를 반복해서 쉴 새 없이 가동하기 위해 화로를 고안해 낸 나치 장교가 나온다. 그는 학살의 명령을 철두철미 이행하고 ‘독일의 개척자’라 상찬 받았다. 구중회를 죽인 일본군들은 야스쿠니신사에서 호국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을 것이다. 이들 군인들은 시키는 대로 했기에 죄가 없는가?
난생처음 쪼개진 광복절 행사를 보고, 광복절에 기미가요가 KBS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들었다. 점입가경으로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는 말까지 듣고 있자면, 애국심이 충천한 국민이 아니어도 모욕감에 가까운 불쾌감이 극대화된다.
친일정권이니, 매국노니, 역사 구테타니는 들먹이지 않겠다. 다만 사도 광산에서, 간토에서, 오키나와 등에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조선인이 희생되었는지 정말 알고는 있는지 묻는다. 가해자가 사과하지 않는다고 해서 어떻게 ‘중요한 것이 가해자의 마음’이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