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 유혜연 기자가 파주시의 강압적이고 건물주 친화적인 용주골 폐쇄 정책으로 내몰리는 용주골 성매매 종사사들의 현실을 보도하면서, 유엔여성기구에 이러한 상황을 알린 후 그 답변을 받았다.
답변의 주된 내용으로는 “성 노동자도 인권 보호를 받아야 하며, 정책 결정 시 당사자의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 성 노동 및 성매매 정책은 반드시 해당 개인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며, 각국의 맥락을 반영하되 포괄적이고 관련 당사자 및 단체들과의 협의를 통해 마련돼야 한다...” 등이다.
https://www.kyeongin.com/article/1732445
https://www.kyeongin.com/article/1732455
글로벌 여성기구로서 견지해야 할 당연한 답변이겠지만, 용주골 투쟁에 연대하는 소수의 시민들 외 파주시의 폭압적 폐쇄 정책에 저항하는 용주골 종사자들이 어떤 지지도 받지 못하던 차라 무척 반갑고 고마웠다.
동시에 어찌 보면 원론적인 답변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 보호 입장이 어째서 한국 사회에선 전무한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파주시 성매매 여성 인권단체 쉬고를 비롯 성매매 여성들을 소외시켜온 한국의 성매매 여성 인권단체들은 유엔여성기구의 답변을 진지하게 숙고해야 한다.
나는 지난해 용주골 종사자들의 인권 침해 상황을 낱낱이 밝힌 메일을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에 보내며 간곡한 연대를 요청했다. 하지만 어떤 답변도 듣지 못했다. 이들은 성매매 문제 해결이 집결지만 없애면 이루어진다고 믿는 것일까. 성매매에 반대하면서 성매매 여성들과 연대할 수 없다면 대체 어떤 세상이 올 수 있다고 믿는 것인가. 성매매에 반대한다고 성매매로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여성들을 혐오하고 모욕하는 것이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길이라면 나는 절대 찬성할 수 없다.
아마 전국의 여성단체들은 대부분 이렇게 저렇게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에 함께 하고 있을 것이다. 성매매 문제 해결이라는 대의에 찬성하지 않을 여성인권단체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에는 모두 말하기를 주저하며 용주골 성노동자들 애기를 꺼내기만 하면 꽁무니를 빼기 일쑤다. 어떻게에 대한 다른 의견으로 ‘그래도 불법으로 내쫓는 거는 아니지 않냐’고 완곡히라도 꺼냈다간, ‘그러면 성매매에 찬성하는 거냐’는 이분법적 비난이 바로 날아들 테다.
성매매 여성이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눈 한번 질끔 감으면, 전국연대에서 팽당할 일도 가부장의 부역자라 낙인찍힐 일도 없는데 굳이 내가 왜, 이것이 여성인권단체라는 곳에서 벌어지는 게으르기 짝이 없는 행태다. 용주골 얘기만 꺼낼라치면 ‘성매매는 너무 어려운 어젠다’다 하며 회피하고, 정작 성매매 여성 당사자의 얘기는 들으려고도 않으면서 활동가네 연구자네 하며 저세상 얘기인 고담준론을 펼친다. 성매매 여성 당사자를 소외한 연구자나 활동가 담론이 이 바닥의 정론이라도 되는 양,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 줄 테니 너희는 고맙게 받아먹기나 하라는 식이다.
애초 당사자 얘기를 들을 마음도 없이, 군산 대명동 화재 참사에서 비롯된 20년도 넘은 성매매 방지법, 그때로부터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한 그 법으로 대체 어떻게 작금의 성매매 여성들을 구제한다는 것인가. 건물주 배반 불려주는 38억의 예산을 집행해 성매매 여성들을 고사시키려는 파주시의 야만이나, 당사자 입장은 소외시킨 채 구태의연한 성매매 특별법만 들이대는 관료화된 담론이나, 성매매 여성의 구조적 피해를 극복할 생각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지경이니, 파주지 성매매 여성 인권단체인 쉬고가 성매매 여성 당사자는 단 한 사람도 만나보지 않은 채, 파주시장의 ‘닥치고 폐쇄’ 포고에 깃발을 높이 쳐들고 선봉에 섰는데도, 어떤 비판의 소리가 없다.
용주골 집결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른 목소리 다른 입장은 철저히 소거되는 이 폭력적 상황이야말로 여성 해방 전사들이 민주주의의 수호자들이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파시즘적 징조이지만, 이 또한 어떤 비판에도 직면하지 않는다. 반여성적 반인권적 반사회적 반민주적 폭거가 용주골 여성들을 향해 벌어져도 누구도 야단하지 않는다. 이것이 용주골의 엄혹한 현실이며, 유엔여성기구의 경종조차도 무시될 수 있는 배경이다.
현재 용주골 여성들은 폐허 속에 있다. 파주시가 38억의 예산을 들여 사들인 건물들을 중장비를 동원해 부수고 있고, 지난해 8억여 원을 들여 이미 매입해 리모델링한 거점건물은 낮이면 관련 공무원들이 드나들고 상주하며 공공연한 압박을 가하고 있고, 밤이면 성매매 불법을 근절하겠다는 포고령이 새겨진 간판이 대낮처럼 불을 밝히고 내려다보고, 거점건물 여기저기 달린 CCTV가 전방위로 감시하고 있다. ‘이래도 안 나갈래’라며 추방의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이런 판국이니 영업이 될 리 만무하고 여성들의 형편은 날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으면 이곳을 떠나 또다시 사라질 어느 집결지로 옮아가거나 더 착취적인 성매매 산업으로 옮아갈 것이다. 그때 파주시와 용주골을 반대한다는 단체나 사람들은 내 눈앞에서 치워졌으니 우리가 이겼다고, 성매매 문제 해결이라는 과업을 완수했다고, 쌍수 들어 환영할 텐가.
애초부터 누구도 용주골 여성들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파주시장은 성매매 집결지 폐쇄라는 시장 1호 사업을 완수함으로써 재선의 교두보를 마련할 것이고, 46억이라는 방만한 용주골 폐쇄 예산을 승인한 파주시의회 의원은 파주시장의 뒷배로 시의원으로서의 영달을 얻을 것이고, 파주시 성매매 여성인권 단체 쉬고는 성매매 여성들을 추방한 자리에 성매매 여성 인권센터를 세워 든든한 호구지책을 마련할 테고, 성매매가 아니라 용주골 여성들을 증오하던 사람들은 ‘사회적 암 덩이’를 해치운 자랑스러운 해결사가 되었으니, 승리를 자축하며 환희에 찰 것이다. 이 타락한 폐허에 위태롭게 서 있는 건 오직 용주골 여성들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