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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베에 새겨진 여성 운동가들의 삶과 투쟁

홍영인의 <다섯 극과 모놀로그> 전시를 다녀와서

by 그냥


지난주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바람에 전시 관람을 주저하고 있었다. 진즉에 갔으면 될 것을 오늘내일 미루다 꼭 낭패를 본다. 다행히 더위가 잠시 소강상태라 자칫 잃을뻔한 기회를 잡았다. 비가 오락가락했지만 폭우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 스페이스 2 에서 전시되고 있는 홍영인 작가의 <다섯 극과 모놀로그>에 관심이 간 건 남성 영웅 서사가 비가시화한 여성의 역사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전시실에 들어서니 원형으로 둘러쳐진 40 미터 길이의 삼베 직물(태피스트리)이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소재가 금속 등이었다면 위압감을 주었을 법한 규모였지만, 직물이어선지 마치 세탁 후 건조를 위해 널어놓은 이불 홑청처럼 평화롭고 정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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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피스트리를 꼼꼼히 보니, 여성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우리 사회가 기억해야 할 여성들이 정성스럽게 수놓아져 있었다. 먼저 눈길을 끈 인물은 기생 독립운동가였던 현계옥과 정칠성이다. 언어는 전부 글로벌 전시를 목적으로 해서인지 영어로 쓰여 있어 조금 아쉬웠다. 작가 홍영인은 이들의 업이었던 기생을 따로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gisaeng’이라 새겼고, 동시에 ‘political activist’라 호명했다.

이어지는 인물은 한국 최초의 고공 농성자 강주룡이었다. 작가는 1923년 평양고무 노동자로 일하다 임금 삭감을 막기 위해 을밀대에 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을밀대 기와지붕에 오롯이 앉아있는 그녀를 아우라로 둘러싸인 모습으로 돋보이게 연출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빛나는 활약은 투옥으로 이어졌고 옥고를 치르면서도 단식투쟁을 이어가느라 쇠약해졌다. 이후 출소했지만 감옥에서 얻은 병의 후유증으로 1932년 요절하고 말았는데, 이러한 그녀의 일대기가 촘촘히 수놓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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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출한 제주 해녀들의 독립 투쟁도 태피스트리에 담겨있다. 부춘화, 김옥년, 부덕량을 핵심 지도자로 기억하면서, 1932년 해녀들이 작업 도구인 호미와 비창을 들고 일제의 해산물 탈취 목적인 지정판매제 도입에 격렬하게 저항했던 역사를 담았다.


작가는 이어 해방과 전쟁 이후 시골의 소녀들이 서울로 상경해 가족의 생계부양자가 된 역사를 담았다. 지금은 잊혀졌지만 1970년대 말까지 생계 전선에서 활약했던 버스 안내양을 소환했다. 또한 ‘수출 산업 전사’로 불렸으나 허울뿐, 저임금, 형편없는 식사, 성폭력으로 고통당하면서도 삶을 이어나간 가발공장과 방직 공장의 여공들을 형상화했다. 가발공장은 부마항쟁의 도화선이 된 YH무역을 상기시켰고, 정당하게 파업 투쟁에 임했으나 동료 남자 노동자들에게 ‘똥물 투척 테러’를 당했던 동일방직 노동자들의 모습도 그려져 있다.

지난 대선 기간 중 김문수 후보의 ‘학출’ 시절 노동자 동료들이 기자회견을 한 일이 있었다. 그들은 김문수 부부가 과거 노동 운동사를 자의적으로 변형 왜곡시킴으로써 당시 함께 투쟁했던 동지들을 모욕한 것에 분노를 표명하며 성명서를 발표하기 위해 모였다. 이때 기자회견장에 등장한 초로의 여성들이 바로 태피스트리에 새겨진 노동 운동가들이었다. 원풍모방 이필남 조직부장, 동일방직 이총각 지부장, YH무역 최순영 지부장, 그리고 한일도루코에서 김문수 후보와 함께 활동했던 박용남 부지부장이 작가가 소환하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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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피복 공장에서 일하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한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삶도 그려져 있다. 아들을 잃은 후 청계피복의 수많은 여공들을 자신의 딸로 삼고 투쟁의 선봉에 섰던 그녀의 삶은 비단 전태일의 어머니로만 기억되어서는 안 된다. 그녀는 죽을 때까지 노동자들과 함께 싸웠다.


이소선과 함께 싸웠던 청계피복의 노동자 신순애가 태피스트리의 마지막 인물로 담겼다. 그녀는 ‘불쌍한 여공’이라는 판에 박힌 여성 노동자 서사를 거부하고, 1987년 6월 항쟁에 이은 노동자 대투쟁으로 주도권을 잡은 남성 노동 운동사가 소거시킨 60-70년대의 민주노조운동의 적극적 주체였던 여성들의 노동사를 자전적 서술로 복원해 <열세 살 여공의 삶>을 펴냈다.

평화시장에서 “딱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월급을 받”으며 ‘시다’ 생활을 했던 신순애의 삶은 ‘7번 시다, 3번 미싱사, 1번 오야’로 압축된다. 가난으로 학업을 이을 수 없었던 그녀에게 노동 교실은 배움의 꿈을 이어가게 했고, 이곳에서 이소선을 만났고, 청계노조의 탄생에 함께하며 ‘노동자 신순애’가 되었다. ‘공순이’가 아닌 여성 노동자의 청계노조 투쟁은 다큐멘터리 <미싱 타는 여자들>에서도 다루어졌다. ‘내가 전태일이다’ 외치며 가열차게 투쟁했던 청계노조는 1981년 전두환 정권의 노조 탄압으로 압살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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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인의 태피스트리는 격렬히 투쟁했으나 철저히 잊혀진 여성 운동가를 호명하고 그들의 역사를 복원한다. 태피스트리의 특이한 점은 직물의 안팎이 각각의 서사를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태피스트리 외부는 여성 운동가를, 내부는 독특하게도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형상화했다. 반구대 암각화는 얼마 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반구대 암각화는 선사시대의 생활상을 담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다에서 물고기나 고래를 잡고 지상에서는 동물을 사냥했던 선사시대인들은 그들의 삶에 함께 했던 고래, 물고기, 사슴, 호랑이 등을 바위에 새겼다. 태피스트리는 여성들을 새긴 외부 면의 밑단에 각종 물고기나 고래의 형상을 다양하게 새겼다. 안으로 들어가 직물의 내부 면을 보면 암각화의 문양을 상기시키는 바람, 구름, 태양 등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무늬를 볼 수 있다.


잠깐 생각해 봤다. 작가는 왜 반구대 암각화를 여성들의 모습에 덧댔을까. 4천 년도 전인 그 시대에는 여성이라 차별하는 성의 위계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사회진화론을 신봉하는 학자들은 농경이 시작된 신석기 시대부터 가부장이 성했고 여성이 억압당했다고 단정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단일한 증거는 없다. 남성은 사냥 여성은 채집이라는 고착화된 선사시대 삶이란 없었다는 말이다. 여성 남성은 함께 수렵에 나섰고 함께 채집했다. 작가는 성차별과 억압이 없던 앞선 시대의 자유를 여성 운동가들에게 돌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꿈보다 해몽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자 태피스트리에 있던 여성들이 고래와 자유로이 유영하는 모습이 상상되었고 큰 해방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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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 한쪽 방에 설치된 <우연한 낙원> 전시실에 들어가면 매우 소란한 소리를 듣게 되는데 바로 두루미의 소리다. 작가는 DMZ 방문에서 인상 깊었던 두루미의 다양한 소리를 녹음해 영상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DMZ라는 공간에 자연과 조응하며 오롯한 두루미의 존재는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선사시대의 파괴되지 않은 삶과 자본의 폭압에도 올돌했던 여성 운동가들을 신비롭게 연결한다. 전시 제목에서 말하는 ‘다섯 극’은 즉흥 퍼포먼스라는데, 이를 관람하지 못한 것이 전시의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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