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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옵티칼 & SPC, 여성 노동자들의 위기

by 그냥


7명 노동자 고용 승계해달라고 600일을 고공에서 싸워야 하는 나라



한국옵티칼 고공 농성자 박정혜가 오늘 내려온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아직 보도가 없어 궁금하다. 어제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구미 옵티칼 공장 옥상에서 고공 농성을 하는 그녀를 만나는 장면이 중계되었다. 정 대표 등은 그간의 투쟁을 간단히 듣고 7명의 고용 승계를 보장하라는 그녀의 요구사항을 받아 적었다.


그러면서 정 대표 등은 “내려오세요. 우리가 잘할게요”라고 위로했는데, 이후 이에 관한 유튜브 썸네일이 그녀의 투쟁보다 정대표의 “우리가 잘 할게요”에 집중되는 것을 보자니 좀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자그만치 600일을 고공에서 외롭게 싸울 동안 코빼기도 안 내밀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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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여 분 정 대표 등과 고공 면담을 하는 동안 박정혜는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을 연신 손수건으로 닦고 있었다. 땀이래도 눈물이래도 다 마음이 아프다. 말이 600일이지 사회와 단절된 채 방구석도 아니고 고공 옥상에서 추울 땐 얼마나 얼었을 것이며 지금처럼 더울 땐 또 얼마나 삶아댔겠는가.


600일 동안 구미 옵티칼의 그녀들을 응원하고자 희망버스가 두어 차례 떠났는데, 그때마다 후원금만 조금 보내고 가보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컸다. 정청래 대표의 약속이 부족하더라도 나는 그녀가 그만 내려왔으면 좋겠다. 그녀와 지지자들의 바람대로 지상에서 싸웠으면 좋겠다. 그리고 국회 통과된 ‘노란봉투법’이 그녀들의 가난한 재산에 가압류를 걸지 못하도록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생각해 보면 우리 여성들의 투지는 정말 경이롭다. 임금 삭감을 취소하라며 평양 을밀대에 오른 최초의 고공 농성자 강주룡부터, 한진 중공업의 이진숙, 그리고 600일의 박정혜까지 투쟁의 계보가 짱짱하다.


짱짱하다는 내 표현은 철저히 타자화된 시각일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하루하루가 매일 견뎌내야 하는 시간들이었을 테니 말이다. 한진중공업의 이진숙의 경우, 고공농성 당시 자신을 응원해주는 SNS 메시지와 전국 곳곳에서 지지를 보내기 위해 희망버스가 몰려드는 과정에서 고통을 넘어서는 노동자 정체성을 각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일면식도 없는 자신을 이렇게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연결감은 가슴 벅찬 경험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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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후 그녀의 삶은 정말 힘들었다. 눈엣가시가 된 그녀의 복직은 이루어지지 않다가 정년 하루를 앞두고 장난처럼 던져졌다. 근무 마지막인 복직 날 그녀가 공장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어떻게 잊겠는가. 이진숙에 대한 고용 거부를 박정혜씨가 모를 리 없을 테다. 앞선 잔인한 탄압은 그녀(들)가 내려올 수 없었고 지금도 선뜻 땅을 밟을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평택 니토텐코는 7명의 한국 옵티칼 노동자의 고용을 승계하라!”

“정청래 대표는 최선이 아니라 이들의 고용 승계가 반드시 이루어지도록 하라!”



대통령이 혼쭐내도 꼼수 부리는 SPC



7월 25일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방문해 혼쭐을 낸 ‘죽음의 빵공장’ SPC는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에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한다고 알렸다. 대통령이 무섭구나 했겠지만, 사악한 경영주가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가 없다. 야간근로 감축으로 생색을 내려는 탓에 근무, 임금 체계가 엉망이란다.


주5일 52시간 근무가 주6일 48시간 근무로 바뀐다는데, 이걸 노동자가 좋아할까? 한 SPC 노동자가, 그나마 SPC를 다니는 이유가 주 5일 근무라 참고 일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여성 입장에선 일자리 자체도 찾기가 어려운 데다 주5일 일자리는 더 구하기 힘들어서이다. 또한 개편으로 저녁 11시~아침 8까지 일하게 되는 ‘연결조’가 야간근무를 해야 하는 것은 전과 마찬가지고 임금이 오르는 것도 아니란다. 한마디로 대통령까지 납시어 야단을 쳤으니 그럴듯한 개선안을 내놓아야 하는 경영진이 직원들의 의견수렴은 일도 없이 꼼수를 쓴 것이다. 악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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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C 불매를 결정하고 빵을 먹으려면 약간의 문제가 있다. 마트에 들어오는 빵 중에 SPC 아닌 빵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이들의 독과점이 심하다. 딸애는 SPC 불매한다고 했다가 “너만 잘났냐”는 야유를 들은 적도 있다고 한다. ‘피 묻은 빵’이라도 먹어야 하는 사정이 있다면 먹어야지 어쩌겠나. 그렇다고 타인의 소신 소비까지 타박할 것은 없을 텐데, 왜들 이리 사나운지 모르겠다.


한국 옵티칼도 그렇다. 경제 좀 안다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은 노조가 너무 세서 망한다, 이번에 국회에서 통과한 ‘노란봉투법’으로 기업 다 망한다,고 하는데 당최 모를 소리다. 한국의 노조 가입률은 고작 10프로도 안되고 그나마 대기업이나 그렇다. 그러면서 꼭 비교하는 게 미국인데, 고용이 얼마나 유연하냐 그러니 혁신이 일어나는 거다, 그런다. 미국에 지금 혁신할 제조업이 남아있기나 한가.


그렇게 고용 유연화를 외치느라 자국에서 제조업 다 빼내 값싼 임금 시장이 있는 타국으로 이전해 타국의 노동자를 착취해놓고는, 이제 와서 MAGA니 MASGA니 하며 타국의 제조업을 아예 고사시키려고 거의 강도처럼 날뛰며 갈취하려는 나라의 뭘 따르자는 건가. 반도체 나가고, 이차전지 나가고, 조선업 나가고, 한국은 대체 무슨 제조업으로 노동을 창출할 것인가. 이게 노조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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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노동의 위기 노동자의 위기다. 여기서 노동자는 여전히 남성 노동자로 상정되지만, 얼마나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을 받으며 평균 남성 노동자 임금의 30 프로를 덜 받으며 일하는지 모른 채 해서는 안 된다. 얼마 전 읽은 <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를 보면 남성 노동자의 일터로만 상상되는 조선소에서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게다 남성 노동자에 비해 차등 임금을 받으면서도 자부심을 가지고 거침없이 일하고 있다. 동일노동엔 동일임금!


한국 옵티칼 7명, 특히 최장기 고공 농성을 벌인 소현숙, 박정혜씨는 과연 평택 니토덴코로 돌아갈 수 있을까. SPC 노동자는 경영진의 막무가내 근무와 임금 체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대통령이 와서 회초리를 들었는데도 더 나아진 시스템이 되지 않는다면, 다음엔 뭐가 가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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