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04. 통제를 안하려니 다른게 보이네
'비폭력대화(nvc)를 삶으로 살아내기 2화
1. 통제할 수 없는 너
내가 키우는 네 살 아이 준이는 여름 아토피가 있다.
몇 개월 동안 이유 없이 괜찮아졌던
준이의 아토피 간지럼증이 오늘부터 갑자기.
( '갑자기'라는 말은 늘.
말하면서도 스스로 정말 그런가?
하며 의심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내 쪽에서 느끼기엔)
확~도졌다.
졸리기 시작하는 저녁때부터 팔꿈치 안쪽을 긁기 시작하더니
북~북~북~
혈관종이 있는 오른쪽 팔 안쪽이 주 타깃이다.
긁느라 정신없는 아이를 재우며
나는 다중인격자가 된다.
'자고 나면 훨씬 괜찮을 거야' 위로했다가.
'엄마손 긁고 있을게 눈감아~! 얼른!'
근엄하게 명령했다가.
' 긁지 마!
그만!
스탑!
쓰읍~~!!'
흘기고 노려보다가.
갑자기 상냥해져서.
딴 데 신경 쓰면 덜 긁을까 싶어
동화책을 평소보다 세배 정도의 성의를 담아 읽어주다가.
손바닥으로 간지럽다는 부분을 찰싹! 찰싹! 때려도 보고.
이것도 저것도 다 모르겠을 때는
한숨을 푹~ 쉬며.
긁든지 말든지 천장을 보며
눈감고 자는 척을 해본다.
긁는 걸 말리다 보면 실랑이하게 되고
그러면 더 잠드는데 오래 걸려서 더 긁는 것 같아서.
' 빨리 재우는 게 덜 긁는 길이다.'라고 되뇌며
이렇게 죽은 듯 누워있어 보기도 하는 것이다.
어젯밤 아이는
자는 척하는 엄마 옆에서
팔꿈치 오른쪽 안쪽을 긁다가~
서둘러 왼쪽 팔을 긁다가~
성급히 머리를 긁적이다가.
다시 목 뒤쪽을 긁다가.
손목 조금 긁다.
다시 팔 안쪽을..(무한반복)
정신없이 긁는 소리를 들으며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굉장한 무력감을 느꼈다.
과장 좀 보태서
나에게는 이 순간이
'잠시 자아의 죽음'을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할 수 있는 건 그냥 지켜보는 것일 뿐'
이 모드는
엄마가 되고 나서
시도 때도 없이 겪는 모드이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통제하는 게 너무나 익숙하고 편안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지켜만 보는 건 너무나 불안하고 무기력하기 때문이다.
2. 통제하고 싶은 나
나는
자는 척 눈을 감고
아이를 통제하는 것은 포기했으니.
이제 내 생각과 행동을 통제해보려 애쓴다.
내 특기이자 취미인
'분석과 진단' 엔진에 시동을 거는 것이다.
'최근 유제품을 다시 시작해서인가?
최근 여행 가서 육류 단백질을 며칠 연속 많이 먹여서인가?
최근 더워서 땀이 더 많이 나서 인가?
최근 여행 다녀와서 피곤해서 면역이 떨어져서인가?
왜지? 왜지? 왤까...
왜 왜 왜?'
계속 생각하다가.
아차!
작년에 아이 아토피가 심했을 여름 때의
내 반응 패턴이
다시 드라마 재방만큼이나 똑같이 반복되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이의 증상ㅡ> 온갖 병원. 책. 블로그. 논문 등으로 분석 ㅡ> 진단해보려 함.
왜? 원인을 알고 차단하고 싶어서 ㅡ> 결국 어떤 것도 명확하게 알 수 없음---> 짜증. 무기력. 지침. 예민해짐. 노이로제 걸릴 듯.
주요 패턴은 이랬고.
이번에도 여름 아토피가 시작되는
5월을 기점으로 이 패턴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단 알아챈 후
멈췄다.
'오늘 밤은 그만'이라며
엔진 시동을 꺼버렸다.
순간
nvc를 가르쳐주시는
모미나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알아채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라도.
아주아주 큰 일이라고.
알아채고 나면
그만할 수도 있고
계속할 수도 있다고.
알아차리지 못하면 그만할 수도 없다고.
어젯밤. 나는 적어도 알아차렸다.
나에게 너무나 익숙한 문제 대응 방식.
즉,
분석. 진단-> 대책 수립-> 액션 등의 일련의 반응.
어떤 일도
이 알고리즘에 넣어서 해결해버리는
나의 오래된 습(습관)!
꽤나 인생 살면서 잘 먹혔는데 말이지.
그런데.
육아.
즉 인간을 상대하는 일에 분석. 진단을 쓰면
백전백패였던 것을 힘겹게 떠올렸다.
아이마다 다르다.
같은 아이여도 상황마다 다르다.
같은 아이. 같은 상황이어도
또 그때그때 다르다.
인간은
총체적이고 종합적이어서 1+1=4도 어쩔 때는 되고야 마는 놀라운 생명체이다.
통제할 수 없고
통제 자체가 안 되는 게
바로 인간이다.
나는 이 사실을
직장에서 다른 사람들 애들을 보고서 어렴풋이 알았는데
내 아이 낳고는 처절하고 절박하게
실패를 거듭하며 알게 되었다.
육아를 할 때는
내가 학교나 직장에서 평생 동안 써서 제법 잘 먹혔히고 칭찬도 받았던 류의 방식
즉,
분석. 진단. 대책 수립. 액션은
일찍이 개나 줘버려야 한다는 걸 배웠다.
그래야 나도 살고 아이도 산다.
'원래부터 통제할 수 없는 존재를
통제해보려고 용쓰지 말자'
이것이
불확실함으로 가득 찬
엄마 인생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이었다.
3. 통제를 안 하려니 다른 게 보이네
나는 그날 밤.
애를 통제하는 것도 포기.
나를 통제하는 것도 포기.
쌍방향으로 통제를 안 하려니
사실 딱히 할 짓이 없어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아.. 내가 삶을 통제하고 싶어서 이러지.
인풋이 이렇게 되면 아웃풋이 이렇게 되는.
그 예측가능성을 얻고 싶어서.
내가 거기서 심리적 안정을 얻고 싶어서 그렇지.
그냥 긁는 걸 보며 가만히 있는 건
한없이 무기력하게 느껴지는데.
뭔가 하고 있으면
그래도 뭔가 하고 있다며 나를 속일 수 있어서 나 편하려고 그러지.
내가 평안하고 안심이 되고 싶어서
나에게 가장 익숙하고 편한 방식으로 반응하는 거지.
그게 먹히든 안 먹히든 말이야'
뭐 이렇게 나를 토닥이다가
이날은 나도 아이도 잠이 든 것 같다.
그리고 그날 밤에는 몰랐는데
쓰고 보니 알겠다.
나는 아이 옆에 누워서
비폭력대화(nvc)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자기 돌봄', '응급 공감'을 한 것이다.
그리고, 신기한 게 깨달아졌다.
내가 그동안 안 한 게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이었다.
그동안
아이의 긁는 행동을 어떻게 하면 막을지에 몰두하느라
아이의 마음에 공감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마음과 몸에 여유가 없었다.
'준이야~ 간지러워서 많이 힘들지.
좀 편하게 자고 싶지~'
이런 말들...
몸이야 어쨌든,
그 순간 아이의 마음이라도 좀 더 편하게 해 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지.
아쉽고.
짠하다.
나도. 아이도.
그런데.. 어?
오늘은 왜 전혀 긁지 않고 잠들었지?
왜지?
왜?
또또또 분석하려 한다!
Stop!
나에게 외친다.
누려~!
어쨌든 오늘 너의 아이는 편안했다고!
4. 멈출 수 있는 나에게 축배를!
열심히 아토피에 대해 파고든 후
어느 책에서 기억에 남는 한 문장은 이것이었다.
- 아토피의 어원은 '알 수 없다'이다 -
이 문장은 그 어떤 문장보다 더 내게
묘한 위안을 주었다.
원래부터 알 수가 없는 것이라잖아!
알지 못해도 괜찮아.
알 수 없는 걸 왜 알려고 하니.
비폭력대화를 배우며
매 순간 통제하는 것을
몸서리치게 좋아하는 나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알아차리면 멈출 수 있다'
이 말을 떠올리면
희망이 샘솟는다.
내 안에 통제하려는 습이 아직도 한가득이지만
멈출 수 있게 된 나에게.
일단은 축배를!
생각나는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