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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Jan 02. 2024

나에게 글쓰기란

  나에게 글쓰기란 ‘비워내기’같은 것이다. 인생은 평생을 채우는 과정인 것 같아도 사실은 배워내기의 연속이다. 잘 비워내야 끝내 행복해질 수 있다. 나를 채우는 잡생각, 후회, 우울 그런 것들을 잘 비워내는 것에 행복이 달려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 잘 비워내기 위해 글을 쓴다. 아니 어쩌면 비워내기보다 쏟아내기 쪽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일이 바빠서, 마음 잡고 앉아 글을 쓸 시간이 안나서 몇 주, 몇 달을 글을 쓰지 못할때면 마음 한 구석에 풀지 못 한 감정들이 소복히 쌓인다. 내가 왜 우울하지? 왜 이렇게 잡 생각이 많이 들지? 하며 이유를 생각해보면 항상 같다. 글을 안 써서. 나는 글로 마음을 정리하고, 감정을 해소한다. 그렇게 인생 속에서 쌓이는 잔여물들을 비워내고 쏟아낸다.      


  사실은 엄마가 죽은 뒤로 엄마와 나눈 메신저 대화들, 엄마의 블로그, 글들을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그립고 보고 싶었지만 선뜻 들어가서 읽을 용기가 안났다. 사진, 동영상 그렇게 많았어도 한 번을 제대로 다시 훑은 적이 없다. 남들은 제대로 된 부모님 사진 한 장이라도 남겨둘걸 하고 후회한다는데, 나는 흔적들이 많아도 다 무용지물이다. 가끔씩 우연히 맞닥뜨리는 엄마의 흔적에 물 먹은 솜마냥 마음이 무거울 뿐이었다. 

     

  여행지 숙소를 예약하며 오래된 사이트의 정보를 찾으려다 쓰지 않던 페이스북 계정에 들어가게 됐다. 엄마와 2017년에 나누던 대화가 남아 있었다. 한 때는 멀쩡히 살아서 나와 메신저를 주고 받았다는 사실이 문득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엄마와 나눈 카카오톡 메시지를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0년 7월 자로 검색을 하니 엄마의 이름은 (알 수 없음)으로 떠있었다. 소소하게 주고 받았던 메신저들. 뭐해? 보고 싶어. 언제 와? 하는 대화들을 보니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20년 이후로 그렇게 많이 울어본 건 처음인 것 같다. 괜히 봤다는 생각도 들었다. 대화 내용들이 머릿속을 자꾸만 떠다녔다. 이렇게 그립고 보고 싶은 마음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막막했다. 


  울면서 다시 다짐했다. 내일은 꼭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쏟아내고 풀어낼 곳이 필요했다. 엄마가 죽은 뒤로 나에게 글쓰기는 살아내기 위한 비상구 같은 곳이다. 그리움을 다스리며 살아갈 앞으로 모든 시간 동안 나는 언제나 글을 써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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