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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May 17. 2024

1등이 아니더라도

  안될 것 같으면 진작에 포기하는 식으로 살아가는 것은 삶에 뜨겁지 못한 자세다. 예를 들어 시험 공부를 못 했다고 해서 한 문제도 손대지 않고 모조리 한 번호로 찍어버린다든가 하는 행동들. 풀 줄 아는 문제라도 풀고, 헷갈리는 문제는 머리를 쥐어 짜내면서, 찍더라도 열과 성을 다해 찍는 태도가 종국엔 그 삶을 구원할 것이라 믿는다. 


  그저께 체육대회를 했다. 체육대회의 꽃, 총 8명이 연달아 달리는 이어달리기 시간이었다. 우리 팀은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선수가 넘어지는 바람에 바로 꼴찌가 되었다. 아슬아슬한 꼴찌가 아니라 아주 한 바퀴 이상 벌어지는 꼴찌였다. 뒤에 뛰는 선수들은 의욕을 잃을 법도 한데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열심히 뛰는 아이들을 보니 마음이 뭉클했다. ‘어차피 꼴찐데, 아무리 힘들게 뛰어도 소용없잖아?’라고 생각할 법도 한데, 다들 열심히 뛰었다. 


  이제 제일 마지막 주자 차례였다. 이미 앞선 네 팀은 결승선에 모두 도달했고, 1등으로 들어온 팀의 환호가 경기장을 다 채우고 난 뒤였다. 마지막에 출발한 아이는 뛰고 있는지, 아닌지도 모르게 묻혀버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 같으면 조금 챙피하기도 하고, 정말 뛰기 싫겠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마지막 주자가 출발했다.  

    

  마지막 주자는 출발하자마자 두 손을 관중 쪽으로 뻗어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면서 뛰었다. 겨우 고등학교 2학년에, 저렇게 할 수 있는 여유가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운동장을 채운 관객들이 마지막으로 뛰고 있는 그 아이를 향해 응원의 박수를 칠 때, 그 학생은 갑자기 뛰다 말고 맨바닥에서 덤블링을 두 바퀴 돌아 아이들의 호응에 대답을 했다. 관객들은 1등 결승선을 통과할 때보다 더 열광했다. 운동장의 주인공은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그 순간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어 달리기의 승리의 의미가 꼭 ‘빨리 들어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맨 마지막에, 그것도 1등과 한 바퀴 이상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도 그 아이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기를 주인공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1등이 아니더라도, 내 삶을 빛낼 수 있는 것은 결국 나다.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내가 가진 나만의 무기가, 내 삶을 구원할 것이다.


마치 1등처럼 들어오는 꼴찌의 모습ㅋㅋㅋㅋ 너무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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