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도 조팝나무 꽃이 만개를 했을 때였으니 딱 이맘때였나보다. 저녁이 되면 불어오는 바람이 선선하게 마음에 스미는, 대략 10년 전 4월의 어느 날 이야기다. 나는 엄마가 운전하는 차에 타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국도 길가로 하얗고 작은 조팝나무 꽃이 만개를 했고, 작디작은 꽃망울은 방울방울 뭉쳐있었다. 엄마는 감탄을 하다 말고 길가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내려서 꽃을 꺾기 시작했다. 불규칙하게 솟아오른 나뭇가지들을 거침없이 꺾어 금세 한다발을 만들었다. 조수석은 사람만 한 크기의 꽃다발이 자리를 차지했다.
많이 달리지도 않았다. 10분 혹은 길어야 20분 이내였다. 집에 도착해 방금 꺾어 온 조팝나무 꽃을 보았는데, 다 시들어있었다. 작은 꽃망울들은 힘을 잃고 축 늘어져 꽃이었는지도 모르게 볼품이 없었다. 사람 크기만 하던 꽃다발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고, 나뭇가지에 붙어 있던 흙먼지들만 조수석 아래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나는 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땅에 뿌리를 두고 있었더라면 이렇게 시들지 않았을텐데, 차라리 그냥 둘 걸. 한 편으로는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달리다 말고 멈춰 쌩쌩 달리는 차들이 뿜는 흙먼지를 맞으며 국도 한가운데 서서 힘들게 꺾은 꽃이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빨리 시들다니.
10년이 지나, 국도를 운전하다 말고 만개한 조팝나무 꽃을 보며 성큼 돌아온 봄에 감탄을 한다. 엄마와 함께 조팝나무를 꺾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마약성 진통제에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하고 병원 침대에 누워 끝끝내 심장이 잦아들던 엄마의 모습이 다 시들어버린 조팝나무 꽃가지에 겹쳤다. 땅에 뿌리를 두고 있던 꽃나무처럼 생생했던 때를 뒤로하고 엄마는 그렇게 순식간에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다 시들어 숨 죽어버린 엄마를 땅에 묻고 몇 번의 봄을 더 보냈지만, 아직도 그렇게 순식간에 사람의 숨이 꺼질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꿈에서는 살아있는 엄마를 찾곤 한다.
돌아보면 일상 또한 생각보다 순식간이었다. 몇 번의 봄이 오고 또 가고, 나는 언제라도 꺾인 나뭇가지처럼 마를 수도, 또 생생하게 꽃피울 수도 있는 것이었다. 살아있다는 것과 죽었다는 것, 모든 것은 찰나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