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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Mar 27. 2024

'그래, 건강하면 됐지.'

내 마음속의 급훈

  나는 화가 많은 사람이다. 내가 나를 완벽하게 안다고 정의할 순 없을지라도 남들에 비해 성격이 급하고, 화도 많은 편인 것은 사실인 듯하다. 그래서 아이들을 대할 때도 화가 자주 난다. 3교시에 있을 수행평가가 보기 싫어서 2교시에 조퇴를 하려고 할 때, 악기를 파손해놓고 아닌 척 잡아 뗄 때, 지각을 하고서도 당당할 때 등등. 치미는 화를 다스리려고 노력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아이의 태도에 따라 화가 다스려지지 않을 때가 많다. 어떨 때엔 머리 위로 뜨거운 스팀이 훅훅 끼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때때로 교직 경력 10년쯤 되는 친한 언니에게 고민 상담을 하면, 나중에 아이를 낳고 나면 그런 사소한 일엔 화도 안나게 된다는데 난 아직 멀었나보다. 


  작년에 시도해보고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올해도 어김없이 진행했던 우리 반 학급 행사를 소개하려고 한다. 바로 ‘어릴 때 사진 보고 누구인지 맞히기’ 게임이다. 우리 반에 수업 들어오시는 선생님들 사진도 구해서 섞어 놓으면 아이들이 상당히 재미있어한다. 친구들끼리 얼굴도 유심히 보고 친해질 기회를 만들고 싶어서 작년에 처음 진행했던 행사인데 반응이 너무 좋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가 너무 재미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성장이 빠른 아이들은 나보다 더 어른 같기도 하다. 남자 아이들은 이미 나보다 키가 한 뼘씩은 크다. 그 아이들의 어린 시절 사진을 쭉 모아놓고 보니 기분이 참 이상했다. 내가 낳은 것도 아닌데 언제 이렇게 커서 어른이 다 되었나 가슴이 벅차게 뿌듯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아이들 얼굴을 보면서 나는 내 안의 ‘화’가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밥 먹듯이 조퇴를 하며 학교는 자기 오고 싶을 때만 오는 아이. 그 아이 때문에 혈압 오른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는데, 희한하게도 그 아이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는 순간 ‘그래, 건강하면 됐지.’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언니가 한 말이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했다. 이래서 나중에 아이를 낳고 나면 그 모든 일이 사소한 일로 바뀐다는 것일까?     


  올해도 나는 아이들의 사진을 고이 모아 2024년 학급 경영 파일에 넣어두었다. 아이들이 나를 힘들게 할 때마다 한 번씩 돌려보며 내 안에서 타오르는 화를 잠재울 계획이다. 제발 이 마음이 1년 동안 지속되길 바랄 뿐이다.      


‘그래, 건강하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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