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선물한다는 것은 살면서 몇 번 해볼 수 없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다. 이 세상에 없던 하나의 생명체를 낳아 먹이고 길러낸 끝에 하나의 인생을 선물하는 일. 어쩌면 그 선물은 나를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누구에게든 ‘선물’과 같은 일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영생을 얻고싶어 불로초를 구하고 다녔다는 진시황을 보아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이 구전심수되어 오는 우리나라를 보아도, 인간이라면 대부분 ‘산다는 것’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다른 인간을 만들어 내고 또 그 인간에게 ‘삶’을 선물하는 일, 인긴이기에 할 수 있고,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 그래서 나는 그 일이 하고싶다.
어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서핑을 배워보았다.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매우 기쁘게 했다.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파도가 밀려오면 나는 기다란 판자에 몸을 맡기고 앞으로 두둥실 떠밀렸다. 파도는 지치지도 않고 계속 밀려왔다. 가만히 앉아서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맡기기만 해도 내 인생은 이거면 충만하게 행복하다 싶었다. 사는 기쁨을 안겨준 엄마에게 고마웠다. 연이어 언젠가 내가 선물한 삶으로 살아갈 누군가가 이런 기쁨을 맛본다면 나는 그것으로 이 세상에 온 역할을 다 한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조주도, 신도 아니면서 이런 생각까지 하는 것이 우습게 느껴졌지만 파도에 몸을 맡기니 생각도 바다의 폭만큼 넓어진 기분이었다.
하루 종일 뜨거운 햇볕 아래 있다 호텔에 도착해서 거울을 보니 온 몸이 수영복 자국대로 벌겋게 익어버렸다. 원래 까만 피부여서 더 탈게 없다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여기서 더 까매질 수 있구나,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을 알아버렸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하얀 키보드에 더욱 대비된 나의 까만 손가락이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지난 날 파도를 타던 것, 서핑 보드 위에 두 발로 서있던 것, 그래서 까맣다 못해 벌겋게 익어버린 것. 살아있기에 얻을 수 있는 영광이다.
삶이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앞으로의 내 인생에도, 언젠가 내가 낳을 누군가의 인생에도, 버겁고 무거운 일이 파도처럼 쉼 없이 몰아칠지도 모른다. 태풍이 불어오면 저기 먼 곳에서부터 깨지지 않고 일정하게 밀려오는 파도를 타기 위해 보드를 들고 바닷가로 모여든다는 서퍼들처럼, 언젠가 나도 파도를 즐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사는 것이 아무리 힘들어도 서핑 보드에 누워 일렁거리는 파도를 맞이하며 충만하게 행복했던 순간을 되새김질 한다면, 버틸 만 할 것 같다. 아직도 내 몸이 파도 위에 올라탄 듯 일렁거리는 느낌이다. 그래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