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굿 파트너’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췌장암이 나오는 드라마는 못 봐도 불륜하고 이혼하는 드라마는 잘 본다. 내 상처가 잘 아물었다는 뜻이라 생각한다. 우리 아빠는 바로 그 드라마의 사연이나 될 법한 불륜을 저지른 장본인이다. 그리고 엄마는 결국 이혼까지 했으니, 이 드라마 완전히 내 이야기잖아?
아빠는 고등학교 동창의 아내와 바람을 피웠다. 나는 만 1세, 엄마는 임신 7개월째였다. 아, 바람이 발각된 것으로 치면 내가 두 돌, 동생은 갓난쟁이였을 때다. 아빠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은 내 기억 속엔 없다. 만 1세면 ‘기억’이라는 체계가 잡히기도 전이다. 아빠가 바람을 피운 여자도 애가 둘이었다 했다. 그 여자의 남편은 내가 겨우 두 발로 걸어 다니던 그 시기에, 자정쯤 우리 집에 찾아와 야구 방망이를 들고 쳐들어와 온갖 살림을 다 부쉈다.(고 했다. 사실 나는 기억 나는 게 전혀 없다.) 엄마는 처음에 ‘설마, 아닐거야.’ 하다가 회사까지 댕강 짤린 아빠를 보고 그제야 실감을 했단다. 상간녀의 남편이 회사의 각종 부서로 전화를 걸어 불륜을 저지른 그 사원을 당장 해고하라고 난리를 쳤기 때문이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냐만 우리 아빠는 겉으로 보기엔 참 반듯한 사람이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러닝을 하고 취미로는 공자, 맹자 같은 것을 읽고 서예를 한다. 부서에서 총무 같은 것을 맡아 매번 앞에 나가서 뭘 하곤 했는데, (자세히는 모른다. 어쨌든 부서를 대표하는 얼굴 같은 뭐 그런 거였다고 한다. 엄마는 죽었으니 물어볼 수도 없고, 아빠한텐 왠지 물어보기가 싫다. 그 시절 돌이키며 우쭐대라고 물어보는 거 아닌데 괜히 그렇게 생각할 거 같음.) 어쨌거나 다시 회사 이야기로 돌아와서, 세상 번듯하고 모범이 되는 것 같던 사람이, 아니 그런 사람이 임신한 아내를 두고 불륜이라니!! 아빠도 더는 얼굴을 들고 다니기 힘들거라 판단했는지 회사를 그만 두었다. 참 좋은 직장이었는데. 간통죄도 없어진 판국에, 아니 세상에 불륜 남녀가 그렇게도 많다는데, 철판을 깔고서라도 계속 다니지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빠가 쏘아 올린 불륜이라는 공은 고등학교 내내 열심히 공부하고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아빠의 자랑스러운 직장을 빼앗았다. 그건 이후에 있을 수 많은 불행의 첫 단계일 뿐이었다. (솔직히 나는 엄마가 췌장암으로 일찍 죽은 것도 젊은 날 아빠 때문에 마음 고생을 한 것이 영향을 미친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도대체 한 명의 불륜으로 몇 명의 인생을 망치는건지, 불륜의 위력을 실감한다.) 타의로 직장을 그만 둔 아빠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는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처와 줄줄이 딸린 자식들까지 깡시골로 들어가 살게 만들고 급기야 이혼을 당해 나와 동생을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자라게 만들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난 아빠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도 몰랐다.
우리 엄마는 브런치에서 아주 주목을 받은 작가였다. 어찌나 뜨거운지 연락 온 출판사도 여럿이었다. 책도 낼 뻔 했는데. 원고도 다 작업하고 이제 찍기만 하면 되는데. 참 영화도 그렇게 만들었다가 신파극이라고 욕먹지, 딱 그때 죽어버렸다. 엄마가 브런치에 아주 뜨겁게 데뷔를 하게 해 준 고마운 아빠. 엄마와 나는 '아빠가 바람 안폈으면 어쩔 뻔 했어?' 하는 농담도 주고받곤 했다. 엄마를 뜨겁게 떠오르는 작가로 만들어 준 <그날 밤, 야구 방망이를 든 남자가 찾아왔다>, 그 첫 글에 보면 상간녀의 남편이 우리 집에 쳐들어와 벽에 걸린 아빠의 공자 맹자 어쩌고 서예를 뜯으면서 한 말이 나온다.
‘개새끼야, 난 이런 거 몰라도 너처럼은 안 살아.’
슬프게도 아빠는 그 일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쭉 ‘너처럼은’에 해당하게 살았다.
아빠는 도무지 스스로를 돌아볼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혼의 원인을 엄마 탓으로 돌리며 공자, 맹자 같은 그럴듯한 글 몇 자로 자신을 포장하기 바빴다. 엄마는 그 모습에 질리고 질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었을 때, 아빠의 불륜 사실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나는 상당히 충격이었다. 그런 건 진짜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이야긴 줄 알았는데! 나는 바로 아빠에게 가서 물어보았다.
‘아빠, 아빠가 바람 피워서 이혼한거야?’
아빠는 아니라고 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하지도 않았다. 그냥 개소리를 했다.
‘니네 엄마가 말이 통하는 사람이냐? 말이 하도 안 통하니까 답답해서 이야기 할 친구가 필요했던 거지.’
아빠가 쏘아 올린 불륜이라는 공은 서른이 된 내 가슴에 아직 박혀있다. 물론 아빠는 아빠니까, 나의 가족이니까 사랑을 하기는 하는데 이게 참 마음이 복잡한 거다. 내가 사랑하는 엄마를 그토록 괴롭게 했다는 것을, 나를 이혼 가정에서 자라게 만들었다는 것을, 그리고 나의 아빠라는 인간이 제대로 반성할 줄도 모르는 인간이라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영원히 되새기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런 글을 쓴다고 누군가는 나에게 아빠를 욕보이는 일이라 돌을 던질지도 모른다. 불륜 피해자였던 우리 엄마는 아빠를 미워하기‘만’할 수도 있겠지만 그 자식인 나는 아빠가 불륜을, 설령 살인을 저질렀다 해도 마냥 미워하기‘만’ 할 수는 없는 거다. 그래서 괴롭다. 이렇게라도 해야 내 속이 풀리는데 어쩌겠나? 그리고 나 우리 아빠 안 사랑하는 거 아니다. 시시때때로 전화하고 농담하고 웃고 떠들고 한다. 아빠라는 사람을 두고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오랜 묵은 감정들을 이렇게라도 풀면서 정리해 보려고, 그게 이 글을 쓰는 이유다.
다 뭐 이렇게 사는 거 아닙니까? 원래 산다는 게 복잡하고 어려운 거지요. 우리 부녀 사이 좋으니 오해는 마세요!
잊으셨을까 하여 올려드립니다.
다시 보는 엄마의 명작, <그날 밤, 야구 방망이를 든 남자가 찾아왔다.>